홍콩 유력매체 기자, 베이징 취재 중 한 달째 연락 두절

정향매
2023년 12월 4일 오후 4:07 업데이트: 2024년 01월 5일 오후 6:21

홍콩 유력지 기자가 베이징 방문 중 실종된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신 기자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11월 30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천민리(陳敏莉)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선임 기자 실종 소식을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천씨는 10월 30~31일 열린 베이징샹산포럼(샹산포럼)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에 간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샹산포럼은 중국 당국이 주도하는 국제 국방·안보 관련 다자간 회의다. 천씨의 지인들은 교도통신에 천씨가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했다.  

천씨는 SCMP 국방·외교·정치 전문기자다. 11월 1일 샹산포럼에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중 중국의 역할이 논의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한 후 한 달 동안 새로운 기사를 업로드하지 않았다. 

12월 1일 중국 외교부 정례 기자회견에서 천씨의 연락 두절과 추후 수사 가능성에 관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SCMP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천씨는 현재 베이징에 있으며 휴가 중이라고 전했다. 천씨의 가족을 인용해 “그는 안전하지만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더 이상 공개할 정보가 없다”고 설명했다.

SCMP는 “기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천씨의 가족과 계속 연락하고 소통하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며 밝혔다. 또 “이번 사건은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CMP 중국판 책임자는 천씨 사건에 관한 후속 조치를 위해 지난주 베이징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기자협회는 취재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후 실종된 천씨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인들도 천씨의 안위를 우려했다. 야이타 아키오(矢板明夫) 일본 산케이신문 타이베이 지국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중국 주재 외신 기자들은 대체로 천씨가 중국 공안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야이타 지국장은 ‘준(準) 관영 언론’ SCMP 기자가 실종된 점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천씨는 앞서 홍콩 빈과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 SCMP로 옮긴 후 중국 국방, 외교, 정치 관련 보도를 담당한 중국 섹션 선임 기자로 활동해 왔다.  

야이타 지국장은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 마윈이 2015년 SCMP를 인수했다. 그때부터 해당 매체는 중국 정부 비판 보도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2019년 반중 시위 당시에는 ‘홍콩 엘리트 경찰, 과격한 시위대 추격’과 같은 헤드라인을 사용하기도 했다. SCMP는 중국 공산당의 대변인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천씨도 당연히 중국 당국의 편”이라면서도 “천씨는 취재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레드라인을 밟았거나 공산당 내부 정치 투쟁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국에서 다수 사람이 실종됐지만 조명받지 못했다. 천씨는 비교적 유명하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중국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고, 중앙과 지방 정부 법 집행 기관의 무단 체포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체포된 사람들은 오랫동안 실종 상태에 처해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언론인 청샹(程翔)은 RFA에 “천씨의 실종과 관련해 과도한 추측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중국의 취재 환경이 나날이 위험해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간첩죄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서 취재 활동을 하는 언론인이 연이어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민감한 정보의 범위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가 안보, 금융, 문화, 종교, 환경 관련 정보도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며 중국 정부는 시민 제보를 공식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취재 활동은 더 어려워졌고 언론인들이 직면한 위험도 커졌다”고 말했다.

청샹은 시진핑 집권 이후 사회의 모든 일이 국가 안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증가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국가안전부로부터 조사받을 수도 있다. 

청샹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정보 요원을 배치해 모든 외국 기자를 감시한다. 외국 기자가 중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국가안전부에 노출된다. 이처럼 중국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에 처해 있다. 

청샹은 자신이 중국에서 체포됐을 당시 홍콩 각계의 연대와 국제사회의 관심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지금 홍콩의 환경은 당시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때와 같은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