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그림 : 남자, 신화, 그리고 전설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08월 31일 오전 11:29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1

예술가의 손에 재현된 호메로스의 이야기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s)’와 ‘오디세이(Odyssey)’는 수천 년 동안 독자, 학자, 작가 및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서양 문명의 기반이 된 문학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이야기의 배경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피신하여 촉발된 ‘트로이 전쟁’이다.

일리아드는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그리고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영웅 중 한 명이자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간의 험난한 여정을 담고 있다. 호메로스(호머)는 이 두 서사시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 관계, 명예, 전투 등 희로애락의 모든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비록 호머가 실존 인물인지, 신화적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수 세기 동안 학자들에 의해 진행됐고, 또 한 사람에 의해 쓰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작가들의 창작물이 축적되어 전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작품들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호메로스의 독서’

‘호머의 독서’(1885), 로렌스 알마 타데마. 캔버스에 오일, 36.1인치x72.2인치. 필라델피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고전적 장면을 주로 그렸던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 로렌스 알마-타데마(1836~1912)의 작품 ‘호머의 독서’는 7세기 후반의 장면을 담고 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호머의 서사시를 월계관을 쓴 젊은 시인이 관객들에게 낭독하고 있다. 시인의 뒤 대리석 벽에는 호머의 이름을 의미하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고, 그들의 뒤에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호메로스의 독서’는 알마-타데마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전체적으로 밝으면서도 조화로운 색채, 완벽하게 구현된 인물의 모습, 연극적인 구성으로 더욱 극찬받았다. 그림 속 시인의 무릎 위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길게 늘어져 있고, 시인은 시 낭독에 열의를 띠며 몸을 관객들에게 가까이 기울이고 있다.

‘호머와 그의 안내자’

고대인들은 호머의 외양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졌다. ‘호메로스’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인질’을 의미하기도 했고, ‘맹인’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고대인들은 눈먼 음유시인이자 포로로 잡혀 갇힌 채 글을 쓰는 호머의 모습을 상상했다.

‘호머와 그의 안내자’(1874),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밀워키 미술관 | 공개 도메인

프랑스의 저명한 화가 윌리앙 아돌프 부게로(1825~1905)는 고전 회화와 새로운 예술 양식이 충돌하던 시기에 ‘호머와 그의 안내자’를 그려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바위 언덕 위 젊은 목동이 맹인 호머를 이끌고 있다. 호머는 리라를 등에 짊어지고 꼭 쥔 목동의 손에 의지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시대의 아름다움

호머의 서사시 속 수많은 일화는 고대 그리스의 벽화와 조각에서부터 19세기의 수많은 그림 등에까지 상상력을 부여했다.

‘헬레네’(1881), 에드워드 존 포인터. 캔버스에 오일, 36.1인치x28.1인치.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미술관 | 에드워드 포인터/CC BY-SA4.0

에드워드 존 포인터(1836~1919)의 작품 ‘헬레네’는 일리아드 속 여인 헬레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해 왕비가 된 헬레네는 파리스와 트로이로 애정의 도피를 했고, 그들을 잡기 위해 1200척에 가까운 그리스 선박이 트로이로 향했다. 이에 따라 헬레네는 ‘천 척의 배를 띄운 미모’라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헬레네는 한 건물의 기둥을 등지고 서 있다. 한 손은 가슴에 얹고, 다른 손은 불안한 듯 로브를 끌어당겨 몸을 감싸고 있다. 기둥 왼쪽에는 불타고 있는 트로이 도시가 보이고, 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흐린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액자 너머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화려하면서 독특한 두 개의 목걸이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폴리페모스를 비웃는 오디세우스

‘폴리페모스를 비웃는 오디세우스’(1829),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 캔버스에 오일, 52.1인치x80인치.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공개 도메인

오디세이에서 유명한 모험 중 하나는 오디세우스가 눈이 하나인 거신(巨神)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속여 동료들과 함께 동굴에서 탈출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인 ‘폴리페모스를 비웃는 오디세우스’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림 왼쪽의 구름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외눈박이 폴리페모스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불타는 횃불을 들고 배 위에 우뚝 서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화산의 짙은 연기가 잔뜩 낀 동굴의 입구와 대조되게 화면 오른쪽에는 아침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태양 빛을 받은 구름과 배는 더 찬란하게 빛난다. 터너는 짙은 파란색, 빨강, 분홍, 노랑 등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를 활용해 이 작품을 완성했고 이후 색과 빛에 대해 더욱 연구해 많은 수작을 탄생시켰다.

곤경에 빠진 페넬로페

‘페넬로페와 구혼자들’(1911),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오일, 51.1인치x74인치. 스코틀랜드 애버딘 미술관 | 공개 도메인

헬레네의 사촌이나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귀환길에 많은 모험과 고난을 겪는 동안 마찬가지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신화 속 괴물들에게 포위되어 고난을 겪는 오디세우스와는 다르게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에게 포위당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귀향길에 올랐지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험을 겪는 오디세우스는 사실과 다르게 고향에서는 이미 사자로 취급받았다. 그렇기에 많은 젊은 남성이 이타카의 왕좌를 탈환하기 위해 페넬로페에게 구혼의 손길을 뻗었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으며 구혼자들을 거부했다. 구혼자들의 구애를 막기 위해 그녀는 시아버지를 위한 수의 옷감 짜는 일을 끝낸 후에야 새 남편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녀는 낮에는 베틀질에 온통 시간을 할애하고, 밤에는 다른 이의 눈을 피해 종일 짜 놓은 천을 풀어내고 다시 낮에는 베틀질하기를 반복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작품 ‘페넬로페와 구혼자들’에서 페넬로페는 입에는 실을 물고 다른 손은 부지런히 북을 움직이고 있다.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등 뒤에는 네 명의 구혼자가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번잡하게 움직인다. 그들이 기대어 있는 벽 아래에는 전투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물리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통문화의 영향력

호머의 서사시는 약 30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전히 많은 독자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여러 세기의 미술 작품들은 호머가 창작한 이야기의 장면들을 화려하고도 실감 나게 묘사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영상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