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전 美 국무장관 별세…향년 100세

케이든 피어슨
2023년 11월 30일 오후 1:40 업데이트: 2023년 11월 30일 오후 8:40

미국 외교계의 거목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29일(이하 현지 시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9일 키신저 전 장관의 국제외교정치 컨설팅사 ‘키신저 어소시어츠’는 “헨리 키신저가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1923년 독일 태생의 키신저 전 장관은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키신저 전 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이후 1969년 국가안보보좌관에, 1973년 미 국무장관에 임명됐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여러 중요한 세계사적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중국 간 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으며, 미국과 구소련 간의 데탕트(긴장완화) 조성과 베트남전 종식에도 기여했다.

1977년 국무장관에서 퇴임한 키신저 전 장관은 이후에도 강력한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했으며 이날 타계하기 전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올해 5월 백악관 회의에 참석,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한편 7월에는 중국 베이징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대화했다.

그러나 ‘키신저 외교’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베트남전 종식을 위해 북베트남 정부와 체결한 휴전협정은 결국 공산당 정권이 베트남을 점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남미 칠레의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키신저 전 장관을 ‘전범’으로 분류,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마오쩌둥 초대 중국 국가주석부터 현 시진핑 주석까지 중국 지도자들과 직접 교류, 미·중 관계의 가교로서 활동했는데, 점차 중국의 위협이 증대하면서 키신저 전 장관의 친(親)중 행보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지난해 발간된 ‘아메리카 세컨드: 어떻게 미국 엘리트들이 중국을 강하게 만들었나’의 저자 아이작 스톤 피쉬는 “키신저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 기업들과 중국 정부를 연결해 주며 ‘중국의 영향력 공작원’ 같은 존재가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키신저 전 장관과 함께 행정부를 꾸렸던 제럴드 포드 전 미 대통령은 키신저 전 장관을 “슈퍼 국무장관”이라 부르며 좋게 평가했으나, 비판자들이 “편집증” “이기주의”라고 꼬집었던 키신저 전 장관의 성격을 인정하는 발언을 남겼다. 포드 전 대통령은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해 “내가 아는 어떤 공인보다도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일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과 세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면서 “(내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키신저가 베풀어 준 품위 있는 조언과 도움에 항상 감사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