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 그린 日 맥도날드 광고, PC주의 지친 미국인에게 충격

한동훈
2023년 09월 29일 오전 10:33 업데이트: 2023년 09월 29일 오후 1:15

일본 맥도날드가 내놓은 애니메이션 광고가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PC)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뜻밖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0일 일본 맥도날드는 엑스(X·구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특별하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한 편의 애니메이션 광고를 게재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그린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다. 일상에 문득 찾아오는 행복한 순간을 포착한 잔잔하고 훈훈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광고 링크).

따뜻한 색조에 일본의 유명 동요인 ‘고추잠자리’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광고에 사용된 그림은 X에 팔로워 20만 명을 보유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제작했다. 평소 인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자신만의 독특한 터치로 그려서 올리는 작가다.

일주일 만에 조회수가 1억 2천만 회를 넘어서고 10만 회 이상 리트윗됐으며, 64만 개 이상의 ‘좋아요’와 7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흥미로운 점은 맥도날드 일본 계정인데도 댓글의 절반 이상이 영어권 사용자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광고를 칭찬하는 동시에 미국의 현 상황을 걱정하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일본인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이었다면 ‘부모와 아이’가 아니라 ‘레즈비언 두 명과 개 한 마리’가 됐을 것”, “평범한 광고에 비범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몇몇 나라에서는 평범한 가족이 보기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일까.”

“매번 LGBTQ+(성소수자)가 나오는 광고 대신에 건전한 가족이 등장하는 광고가 나왔으면 좋겠다”, “미국 맥도날드가 이런 광고를 내보낸다면 매일이라도 먹으러 갈 것 같다.”

“서양에서는 이런 맥도날드 광고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90년대나 그 이후인 것 같다”, “이 광고에 미국 전역의 트위터 사용자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일본 맥도날드는 일본인을 겨냥해서 만든 것뿐인데.”

미국에서는 대체로 이런 유(類)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어 댓글도 “멋지다”, “힐링이 된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등 찬사가 많지만, 영어권 사용자들의 반응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을 휩쓰는 ‘워크’ 문화…‘평범한 가족’ 묘사가 차별적?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광고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의 맥도날드 광고를 비교한 게시물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엔드 워크니스(End Wokeness·워크 문화를 끝장내자)’라는 아이디를 쓰는 X 유저가 ‘일본 맥도날드 vs 미국 맥도날드, 이 차이를 알 수 있을까?”라며 일본과 미국 버전의 광고를 나란히 게시했다.

미국판 광고에서는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태생 남성)이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전하고 싶은 아주 간단한 메시지”라며 “우리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게시물에는 “아니, 도대체 누가 흑인 트랜스젠더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거냐”, “서구 사회는 망했다”, “이건 일본의 승리다”라는 등의 영어 댓글이 달렸다.

왜 햄버거를 판매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맥도날드가 자사 광고에 상품과 전혀 무관한, LGBTQ+단체 같은 메시지를 발신하게 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워크(woke) 문화’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워크는 ‘깨어 있다(wake)’에서 파생된 단어로 차별 문제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의식이 높은 사람들’을 뜻한다. 한국으로 치면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에 해당한다.

워크란 용어 자체가 일종의 선민의식을 담고 있다. ‘깨어 있는 우리’가 이끄는 워크 문화를 통해 깨어 있지 못한 당신들을 일깨워주겠다는 식이다.

영화 ‘스타워즈’ 제작사가 월트 디즈니에 인수된 후 시작된 ‘스타워즈’ 새 시리즈에 PC주의 요소가 대거 포함되고, 이 과정에서 주요 설정들이 부인되거나 기존 주인공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미국 TV 광고에는 백인 커플이 나오는 경우가 적고 다른 인종 간 커플이 대세를 이룬다. 스포츠웨어 광고에는 ‘빅 사이즈’ 모델, 속옷 광고에는 트렌스젠더 모델을 기용하는 일이 트렌드가 됐다.

그 외에도 가사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던 일을 남성이 하고, 반면 전통적으로 남성이 하던 일을 여성이 하는 성역할 역전·파괴의 광고도 있다.

이처럼 “차별 철폐”를 내세워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는 듯한 움직임에 대해 적잖은 소비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에게 얼굴 사진을 넣은 특별제작 캔 맥주를 협찬한 맥주회사 ‘앤하이저 부쉬’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역풍을 맞았고, 20년 이상 미국 맥주시장 1위였던 브랜드 버드라이트의 매출은 20% 이상 급감하며 2위로 내려앉았다.

5월에는 대형 유통업체 타깃(Target)이 LGBTQ+ 상징으로 쓰이는 무지개 깃발로 매장 곳곳을 장식하고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타깃은 관련 장식과 상품들을 철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타깃 매장. | Scott Olson/Getty Images

특히 관련 상품에는 LGBTQ+ 패션 브랜드 ‘압프랄렌(Abprallen)’ 제품도 포함돼 소비자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이 브랜드는 오각형과 뿔 달린 두개골 등 악마숭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 ‘사탄은 대명사를 존중한다’고 쓴 디셔츠를 출시한 바 있다.

일본 맥도날드 광고에서 그려진 ‘평범한 가족’에 미국인들이 충격을 받은 배경에는 이러한 미국의 사회적 문화가 있다. 미국인들은 지나친 워크 문화에 지쳐가고 있다.

광고를 비난한 소수도 있었다. 일부 영어권 사용자들은 이 광고에 대해 “‘올바른 가족상’을 강요하고 있다”며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한 사용자는 “일본의 인종적 동일성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이상향”이라며 “많은 사람이 일본에서 연상하는 가족 지향적 광고는 서구 사회에 부족한 전통적 공동체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면서 해당 광고가 인종적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많은 영어권 사용자들은 “가족의 행복과 기쁨을 광고로 표현하면 클레임으로 이어지는 불쾌한 시대”, “이 광고의 어떤 부분이 불쾌하기에 화를 내는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평범한 가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외 다른 가족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공격이 거리낌 없이 가해지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그사이 국민적 분열도 더 심화하고 있다.

미국 매체 BPR은 이 광고를 소개하며 “일본 맥도날드의 새로운 광고가 전통적인 핵가족을 홍보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X에 게재했다.

핵가족은 부부만으로 구성됐거나 부부와 그들의 독신 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가리킨다. 소가족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핵가족이 드물고 결혼한 형제와 그 가족들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다. 이제는 핵가족이 ‘전통적인 가족’으로 거론되며, 핵가족보다 더 쪼개진 1인 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BPR 기사에는 “이 광고를 10시간 동안 반복해서 틀어주는 유튜브 영상을 누가 만들어 주면 안 될까?”라는 영어 댓글이 달렸다.

대가족에 이어 ‘전통적인’ 핵가족마저도 점차 보기 어려워지는 미디어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에 대한 그리움이 번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서 가족의 가치나 인간적인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는 한국 드라마들이 서구권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현상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조나단 웡은 “이 광고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그것이 우리 서양인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라며 “인간다움의 본질에 관한 메시지를 생산하는 일이 서구권에서는 이제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