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사회주의 정권 득세’ 라틴아메리카, 테러조직 보금자리 되다

마르코스 쇼트게스(Marcos Schotgues)
2023년 11월 21일 오후 8:13 업데이트: 2023년 11월 21일 오후 9:46

최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좌파 정부가 득세하면서 테러조직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보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려는 테러조직들의 목표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사회주의 정책이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전 미 국무부 관리이자 현 미국 육군전쟁대학 전략연구소의 라틴아메리카 연구 교수인 에반 엘리스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의 영향력과 네트워크가 항상 일정 수준 이상 존재해 왔다”고 진단했다.

엘리스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영향력과 네트워크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전 에콰도르 대통령 등 주로 지난 2000년대 중반의 좌파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이란과 관계를 쌓으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미국은 아르헨티나에 “아르헨티나에 착륙하는 항공기 한 대를 나포할 것”을 요청했다. 이 항공기에는 이란 국적자 5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파라과이 관리 등에 따르면 이들 5명은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쿠드스군과 연계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은 포퓰리즘 세력들이 라틴아메리카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발생했다.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방문하고 있다.|STR/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엘리스 교수는 “지난 몇 달 동안 이란은 석유 거래를 논의하기 위해 니카라과와 관계를 형성해 왔다. 얼마 전에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장관들과 함께 니카라과는 물론 베네수엘라, 쿠바를 방문하는 순방에 나섰다. 각국마다 여러 건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이란과의 연관성은 더욱더 분명해졌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 시간) 좌파 정권이 장악한 칠레와 콜롬비아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판했다. 같은 날 볼리비아는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중단했다. 볼리비아는 앞서 지난 7월 이란과 국방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이란 국방부 장관은 “중남미 국가들이 이란의 전략적 전망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어 이달 8일 브라질에서는 공격을 계획한 혐의로 헤즈볼라 요원 2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경우 허점이 많은 미국 남부 국경과 관련, 테러 위협에 대한 경고가 증가했다.

에포크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한 볼리비아 전 국방부 장관 카를로스 베르자인은 현재 사회주의자들이 볼리비아를 장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베르자인 전 장관은 “오늘날 볼리비아는 독재 국가이며, 외교 정책이 이를 보여준다. 이란, 러시아, 중국과 같은 다른 독재 정권들에 봉사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이런 국가들과 전통적 또는 합법적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국가들은 부패, 마약이 판치는 사회, 테러와 같은 범죄들을 ‘반제국주의’라는 수사로 옹호하는 분위기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에마누엘레 오톨렌기 선임 연구원은 “(최근) 테러리스트 네트워크가 성장했다”고 밝혔다.

오톨렌기 연구원은 언론 기고문을 통해 “헤즈볼라와 이란 전선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동정적인 정부 덕분에 브라질에서 관계부처의 감시를 거의 받지 않고 조직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가 견고한 칠레에서는 헤즈볼라와 이란 네트워크가 정부, 언론, 학계에 침투해 있으며 이들은 불법 금융 네트워크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톨렌기 연구원은 “헤즈볼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글로벌 네트워크망을 구축해 불법적인 금융 활동에 관여해 왔으며, 라틴아메리카 내 범죄조직과 광범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이러한 관계성은 이민, 세관 및 입국 관계부처에 근무하는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렇듯 헤즈볼라를 비롯한 이란과 그 연계 조직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활동해 온 가운데, 이들에 우호적인 라틴아메리카 정치 환경에 대한 우려는 더욱더 커지고 있다.

오톨렌기 연구원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이 헤즈볼라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내 헤즈볼라의 활동을 감시하고 규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헤즈볼라 등 이란과 그 연계 조직의 활동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대체로 방해받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4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한 거리에 그려진 이란 군부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과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벽화 앞을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FEDERICO PARRA/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공모와 밀접한 관계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불법 활동 지원 및 직접적인 범죄 연루 의혹은 광범위한 규모로 보고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테러단체 조직원들에게 가짜 여권을 제공함으로써 초국가적 테러 활동을 조장한다는 혐의를 받는다. 실제 지난 2013년 미국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매튜 레빗 당시 미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대테러 및 정보 책임자는 “헤즈볼라 요원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짜 여권 같은 위조 서류를 쉽게 확보해 이러한 여권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7년 미사엘 로페즈 전 이라크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 직원은 베네수엘라 대사관을 기반으로 한 여권 및 비자 판매 계획을 폭로했다. 로페즈 전 직원은 해당 계획이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로페즈 전 직원은 타렉 엘 아이사미 전 베네수엘라 부통령이 중동 국적자들에게 발급한 베네수엘라 여권 및 신분증 173개와 관련된 기밀정보 문서 관련 조사에도 협조했으며, 조사 결과 여기에는 헤즈볼라와 연계된 인물들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2021년 이스라엘 매체 하욤신문은 현 베네수엘라 정권이 마약 및 무기 밀매, 돈세탁 등에 연루된 헤즈볼라 요원들을 숨겨주는 한편 테러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베네수엘라 군사방첩국의 기밀정보를 해킹, 보도했다.

이렇게 은밀히 관계를 형성한 것 외에도 베네수엘라에 미친 이란의 영향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한 학술센터의 명칭은 가셈 솔라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이름에서 따 왔는데, 솔라이마니는 2020년 1월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테러리스트다. 이는 이란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016년 8월 17일(현지 시간) 볼리비아 후안 호세 토레스 반제국주의 특공대 학교 개교식에서 볼리비아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서 있다.|AIZAR RALDES/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베르자인 전 볼리비아 장관은 볼리비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한다.

베르자인 전 장관은 “(사회주의 노선인) 루이스 아르세 현 볼리비아 대통령은 볼리비아를 라틴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테러 플랫폼으로 만드는 군사 협정에 서명했다”며 “이란인들이 볼리비아 여권으로 신분을 속인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으며, 오늘날 이란인들의 활동은 활발하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베르자인 전 장관이 볼리비아와 같은 상황이라고 꼽은 국가로는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이 있다. 베르자인 전 장관은 모두 좌파 대통령이 집권한 해당 국가들을 향해 이란과 같은 독재 정권과 협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에르네스토 아라우호 브라질 전 외교장관 역시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국가가 ‘마약-사회주의’라는 사회주의를 택할 때마다 그 국가는 즉시 이란의 긴밀한 파트너가 된다”며 현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를 예로 들었다.

지난 2009년 11월 19일(현지 시간) 브라질에서 좌파 성향이 짙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EVARISTO SA/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브라질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좌파 성향인 룰라 대통령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이란의 주요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던 라바니가 브라질을 찾았다. 이에 브라질에서는 라바니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이 계획됐으나 실패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브라질 연방 경찰이 작전을 승인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라바니가 도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소식통을 인용,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현지 매체에 따르면 당시 라바니는 베네수엘라에서 국영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로 입국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제공받은 위조 서류를 소지한 채였다. 매체는 체포 작전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체포의 정치적 편의성에 관한 복잡한 논의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2021년, 브라질의 좌파 성향 국회의원 20명은 하마스를 지지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브라질 의원들은 팔레스타인의 해방 대의를 향한 지지와 연대라고 주장했다.

당장 이달 10일 브라질에서 테러 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 조사를 받던 용의자는 헤즈볼라에 포섭됐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그러나 해당 용의자는 구금에서 풀려났다.

이런 가운데 아라우호 전 장관은 “이란은 범죄에 우호적인 정부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범죄조직과의 연계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지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0월 29일(현지 시간) 콜롬비아에서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소속 게릴라 병사들이 2016년 체결한 평화협정 준수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JOAQUIN SARMIENTO/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상파울루 포럼

지난 1990년 브라질에서 중남미 사회주의 좌파 세력의 결집을 위해 조직된 상파울루 포럼은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을 포함한 마약 테러조직들까지 통합한 포럼이다.

지금은 삭제된, 지난 2007년 상파울루 포럼에 보낸 서한에서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이 포럼은 공산주의 대의를 위한 ‘생명줄’이자 ‘강력한 제안'”이라고 표현했다.

상파울루 포럼은 현재도 해마다 장소를 옮겨가며 열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수백 개의 좌파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아라우호 전 장관은 “상파울루 포럼에 속한 정권들은 자금 세탁, 미국 인근 물류 기지, 위조 여권 유통과 인력 유통 및 헤즈볼라에 필요한 기타 자원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란을 위한 외교적 지지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11일(현지 시간) 이란의 한 시민이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체결된 이란-사우디아라비아 관계 회복을 위한 중국 중개의 협상을 보도한 현지 신문을 들고 있다.|ATTA KENARE/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중국의 게임

상파울루 포럼 연구원인 파울로 엔리케 아라우호는 에포크타임스에 “이란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선봉장 역할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지난 2021년 중국과 25년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데, 이는 이란의 석유에 대한 국제 제재를 위반하는 내용이다. 일례로 미국은 지난 9월 중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고 추정된 이란산 원유 약 100만 배럴을 압수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란의 주요 거점으로 지목되는 베네수엘라에 수십억 달러를 빌려주었다.

지난 2020년 미국 법무부는 베네수엘라 전현직 지도자 15명에 대해 “미국에 마약을 범람시키려는 마약 테러 음모 혐의를 받는다”며 기소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범죄 행위를 지원해 혼란을 조성하고 미국 당국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의 대(對)라틴아메리카 전략 중 일부였다고 파악됐다.

2021년 크레이그 팰러 당시 미군 남부사령관은 미 의회에 출석해 “중국, 러시아, 이란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해당 지역의 자원, 미국과의 근접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발언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0월 미 항공전투사령부는 “중국공산당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민주주의 주권과 미국의 안보 이익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긴 기고문을 발행했다.

지난 2021년 4월 6일(현지 시간) 유럽연합(EU)과 중국, 러시아, 이란 간 회담이 예정된 비엔나 한 호텔 근처를 시위대와 경찰이 함께 지나가고 있다.|OE KLAMAR/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그뿐만 아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행정부들과 협력해 다자기구를 비합법화하고 자신들의 조직으로 대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미주협력기구(OAS)다. 미주협력기구는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로, 미주 대륙 35개국 전체가 회원인 조직이다. 미주기구를 무효화하고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로 대체하는 게 중국, 러시아, 이란의 목적이다.

미국 주도의 미주협력기구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이남에 있는 사실상 모든 국가를 회원국(33개국)으로 둔 공동협의체다. 이는 상파울루 포럼 당사국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창설됐다.

2021년 멕시코에서 열린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 회의에는 중국이 주빈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