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몸부림 끝에 중국 돌아온 마윈, 마음도 귀국했을까?

왕허(王赫)
2023년 04월 5일 오전 11:26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08

공산당 치하에서 ‘성공한 기업가’에게 일어나는 일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馬雲)이 귀국한 것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마윈의 개인적 운명이 시진핑 당국의 정책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마윈은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마윈의 귀국으로 중국 기업가들이 정책 소양춘(小陽春·봄날같이 따뜻한 늦가을 날씨)을 맞이할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에 깨진 마윈이 귀국해봤자 기업 신뢰도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등 나름대로 일리 있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필자는 이를 중국 공산당의 민간 기업가 ‘길들이기’ 전략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모두가 마윈이 귀국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윈은 언제 출국했을까? 그의 출국을 보도한 언론은 없는 것 같다. 2020년 말부터 출국 금지설이 돌았는데 마윈은 어떻게 대륙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마윈이 2021년 출국해 해외를 떠돌았다는 것은 중국 당국과 합의를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당국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윈이 ‘공개적으로 귀국’하는 시점은 당국이 필요에 따라 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리창(李強) 총리가 지난해 10월 20차 당대회에서 2인자가 됐다. 리창이 기존의 국면을 타개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마윈에게 귀국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해지는데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마윈은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의 심경은 “외국에 머물고 있는 마윈이 자신은 이미 알리바바에서 은퇴했고 앞으로는 농업기술 연구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블룸버그통신 3월 26일 자 보도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27일 중국에 나타났다.

왜 갑자기 상황이 반전됐을까? ‘중국이 시장 친화적이다’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당국이 그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마윈 회귀’를 추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8~2020 회사를 살리려던 마윈의 몸부림

2014년 9월 20일,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이듬해 1월 23일 국가공상총국(工商總局)은 알리바바 산하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왕(淘寶網)의 정품률이 37.25%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타오바오는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공상총국이 ‘편파 판정’을 했다고 비난했다. 공상총국은 한발 물러나 장마오(張茅) 공상총국장이 30일 마윈을 만났다. 이때 마윈은 득의만면했다.

그러나 이때 중국 정세는 이미 급변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터진 ‘증시폭락’ 사태는 ‘금융 쿠데타’로 여겨졌고, 당국은 신속하고 매서운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진핑이 2016년 새로운 형태의 정부와 기업의 ‘친(親)·칭(淸) 관계’를 제안하면서 중국의 기업계 거물, 금융계 거물들이 잇따라 숙청됐다.

‘친칭 관계’란 서로 돕는 밀접한 관계인 ‘친(親)’과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하지 않고 서로 청렴결백한 관계인 ‘칭(淸)’이 합쳐진 뜻으로, 투명한 기업 경영의 바탕에서 정부와 기업 간 상호 윈윈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이 홍콩에서 체포됐고, 우샤오후이(吳小暉)앙방보험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왕젠(王健) 하이항(海航·HNA)그룹 회장이 프랑스 관광지에서 의문의 추락 사고로 숨진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윈은 2018년 9월 10일 1년 후에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윈은 비록 어쩔 수 없이 물러났지만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다. 예를 들면, 해외 신탁기금을 설립해 재산권을 확보하고, 알리바바 그룹 내의 특수 ‘파트너 제도’를 통해 통제권을 확보한 것 등이다.

당국의 눈에는 마윈의 이 같은 행보가 당국을 농락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2019년 마윈이 알리바바 그룹 이사회 회장에서 물러났을 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이른바 마윈 시대란 없다. 시대의 일부분일 뿐이다”라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마윈은 은퇴한 후에도 알리바바 금융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상장을 추진했고  당국으로부터 사상 최고속으로 승인을 받았다. 2020년 7월 20일, 앤트그룹은 상하이거래소 커촹반과 홍콩거래소 동시 상장을 추진했다. 10월 26일 앤트그룹은 A주와 H주의 발행 가격을 발표했고, 목표 조달액으로 350억 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중국은 물론 세계 역대 최대 IPO 수준이다.

사진은 알리바바 항저우 본사 모습. | Noel Celis/AFP

마윈도 이때 위기를 직감했지만 마지막 한 판 승부를 결심했다. 2020년 10월 24일, 마윈은 상하이에서 열린 제2차 와이탄 금융(外灘) 정상회의에서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로 인해 알리바바 그룹 전반은 중국 당국이 추진한 ‘고강도 빅테크 규제’의 핵심 표적이 됐고, 앤트그룹 상장도 성사 일보 직전에 전격 중단됐다. 마윈은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이것은 아마 마윈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비밀일 것이다.

마윈 귀국…中 당국의 기업가 ‘길들이기’ 강화 신호탄

리창이 지난해 말부터 마윈에게 귀국을 요청해왔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확인했다. 그렇다면 마윈을 귀국시킨 것은 리창 신임 총리의 성과인 셈이다.

마윈이 귀국한 후 앤트그룹과 알리바바가 보인 큰 움직임을 살펴보자.

첫째, 1월 7일 앤트그룹은 홈페이지에 마윈의 지배권 상실을 핵심으로 하는 지분 구조조정 결과를 발표했다.

앤트그룹에 따르면 마윈 및 그와 행동을 같이하는 이들이 공동으로 행사하던 지분 의결권이 그룹 경영진과 사원 대표, 마윈을 포함한 자연인 10명이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마윈의 앤트그룹 의결권은 53.46%에서 6.2%로 축소됐다. 마윈과 앤트그룹이 분리되고 마윈은 ‘상징적’ 부호로만 남은 것이다.

둘째, 마윈이 항저우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음 날인 3월 28일 알리바바 창사 24년 이래 최대의 조직 정비로 회사를 6개 사업부로 나누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주회사인 알리바바 그룹과 6개 독자 사업 그룹, 미래의 개별 사업 회사 등 ‘1+6+N’ 체제로 개편한 것이다.

6개 사업 부문은 ▲클라우드 인텔리전스 그룹(클라우드) ▲타오바오·티몰(전자 상거래) ▲지역 서비스(배달 등) ▲차이냐오(菜鳥) 스마트 물류 그룹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 그룹 ▲디지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 등이다.

알리바바는 6개 그룹이 독자 이사회를 설치하고 CEO 책임제를 시행하며, 개별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자금 조달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는 알리바바가 ‘탈(脫)마윈화’ 임무를 완수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마윈은 이미 역사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범 케이스’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민간 기업가 ‘길들이기’ 정책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59세의 마윈은 엄청난 재능과 포부를 가진 인물로, 사업적으로 대성공을 이룸으로써 비즈니스계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눈에는 그 모든 성공은 공산당이 베푼 것이고, 그는 반드시 공산당에 감지덕지하고 절대 복종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마윈은 정상적인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글로벌 엘리트 친구들도 많고 시야도 넓다. 그런 그가 변태적일 만큼 자신을 괴롭히던 중국 공산당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물론 마윈 역시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다. 당원으로서의 자신과 이성적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심각하게 갈등할 것이다.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소동파(蘇東坡)는 “이 마음 편한 곳이 내 고향이다(此心安處是吾鄉)”라고 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마윈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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