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일 보고 듣는 것들이 우리의 관념을 형성한다

친근함, 재미, 무료로 포장된 빅테크의 세뇌술
석산(石山·스산)
2022년 07월 12일 오전 9:47 업데이트: 2022년 07월 12일 오전 9:47

최근 미국에서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이 미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는 보도가 다수 나오고 있다. 이 보도는 대부분 데이터 안보에 주목하고 있다. 틱톡이 보유한 미국인들의 방대한 개인 정보가 적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과학기술과 산업을 선도할 인공지능(AI) 기술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빅데이터의 보안은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틱톡은 수집된 미국인의 데이터를 베이징으로 전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분명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모기업인 바이트댄스가 데이터를 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틱톡이 재조명된 것도 바이트댄스가 이 데이터를 임의로 사용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누구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베이징 당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디디추싱 등 빅테크 기업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빅데이터에 따른 장기적 위협뿐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일례로 틱톡은 미국 사회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아가 이를 통해 미국의 선거 등 사회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틱톡은 중국 바이트댄스가 2017년 출시한 숏폼 콘텐츠 SNS로, 15초~3분가량의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며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도 유명하다.

틱톡은 2019년과 2020년 미국 사회의 대격변기에 이용자 취향에 따라 특정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회를 그룹화하고 그들의 관념을 극단화하는 데 일조했다.

예를 들면 한 젊은이가 미국의 인종 문제에 관한 영상을 많이 보면 틱톡은 그에게 인종 갈등을 반영하는 영상을 더 많이 추천하는 식이다. 이 과정은 인공지능(AI)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운영되는 것으로, 더 많은 트래픽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트래픽은 광고 수익을 올리는 핵심 요소다.

틱톡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2년간 미국 사회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선호도를 강화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비슷한 소속 그룹을 찾게 되고, 소속 그룹에서 그들이 선호하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관념이 끊임없이 강화된다. 그 결과 그들 그룹의 관념은 점점 극단화됐다.

이는 마이크와 스피커의 관계와 유사하다. 마이크가 입수한 소리를 스피커가 증폭해 내보내고, 증폭된 음량을 다시 마이크가 받아들이고, 스피커가 이를 다시 증폭해 내보내는 긍정적 피드백 순환이 이루어진다. 물론 결과는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을 방출해 듣는 이에게 고통을 안긴다.

미국 연구자들은 틱톡이 만들어 낸 이 같은 효과에 주목했고, 중국 공산당이 미국 사회에 개입하는 하나의 사례로 여기기 시작했다.

틱톡이 실제로 중국 공산당 대외 선전 기구의 지시를 받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사회를 그룹화하고 극단화하는 데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모든 거대 소셜미디어가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 빅테크 기업들이 끊임없이 발전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미국 온라인을 장악한 대형 기술기업의 로고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트위터, 페이스북, 틱톡, 스냅챗, 구글, 인스타그램 | Denis Charlet/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그래서 우리는 사회가 분열되는 현실을 목격하게 됐다. 좌우 양대 진영은 서로 이해도 타협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서로 상대방을 우매하고 불순하며 악의로 가득 차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류 사회 전체나 미국의 미래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좌파가 과거 중도좌파였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보수우파라는 딱지를 붙인 것도 이런 영향 중 하나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려 하자 주류 좌파 언론들로부터 집단 공격을 받았고, 트위터 내부에서까지 반발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머스크는 현재 트위터 인수를 잠시 보류한 상태다.

이렇게 사회가 양 진영으로 찢어지는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도 이 같은 극한 대립이 형성됐다.

필자의 한 친구는 과거에 필자와 가깝게 지냈고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특히 전쟁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부분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필자는 러시아가 곤경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친구는 러시아가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러시아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고, 친구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침공할 준비를 한 것처럼 강대국은 안보를 침해당할 경우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친구에게 내가 본 기사와 동영상을 보냈고, 친구는 필자에게 그가 본 기사와 각종 언론 보도를 보냈다.

친구가 보낸 콘텐츠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경계하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우리의 관점, 나아가 입장을 통제하고 있는가?

유튜브와 트위터가 필자에게 추천한 콘텐츠는 모두 필자가 보고 싶어 하는 내용이고, 틱톡과 텐센트가 추천한 콘텐츠는 그가 보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피동적으로 받아들인 콘텐츠들은 우리의 최초의 관점을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증거 사슬’을 형성했다.

필자는 친구가 보내온 영상을 보고난 다음 영상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좋아요’였고, 마찬가지로 일종의 집단적인 사회 여론을 형성했다. 누구든 이 콘텐츠를 떠나지 않는 한 이런 여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가 1944년에 출판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이 떠올랐다. 하이에크는 ‘단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의 노예이며, 우리는 이런 위험을 똑똑히 인식해야 이를 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념의 노예이며,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나 자신의 ‘관념’의 주인일까? 나와 나의 ‘관념’은 하나일까? 누가 나의 ‘관념’ 형성에 개입했을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좀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빅데이터 시대에 일부 기관들은 AI를 이용해 우리 머릿속의 관념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감화하는 방식 또는 중국 공산당과 같은 저급한 강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거나 심지어 우리의 사고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인류가 사회관계를 통해 일종의 ‘자아’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이 ‘자아’는 진짜 ‘나’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가치관의 인격 설정이고, 우리는 이 설정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이다.

프롬과 하이에크는 인류 자유의 본질에 관심을 가진 고전적 자유주의의 대가였다. 우리 대부분이 생각하는 ‘자아’는 사실 일종의 가상에 불과하다.

프롬은 이런 가상은 때로는 매우 위험하며, 인류를 기꺼이 전체주의 지배의 옛길로 돌아가게 만들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은 집단의 다중적 제약에서 벗어나 많은 자유를 갖게 됐지만, 억압적 권위 조직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 이런 소극적 자유는 자유의 신장과 개성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고독과 불안이라는 짐도 인간에게 함께 부여한다고 했다. 이럴 때 사람들은 고독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에서 피해 권위주의에 굴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굴복은 분명 그의 자유를 양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과정이다.

필자의 한 대학 동창이 1980년대에 졸업한 뒤 정부 당국에서 정해준 기관에 취직하지 않고 스스로 직업을 택했다. 그 대가 중 하나는 호적이 없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호적은 정부 문서 자료에서 분실된 것이다. 그는 나중에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호적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동창은 사회비평가로서 항상 호적제도는 현대 노예제도의 ‘쇠사슬’이라고 주장하며 현대사회의 자유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돈으로 관료를 매수해 호적을 만들었다.

그는 호적을 만든 후 나에게 “스스로 쇠사슬을 찼다”고 했다. 필자는 이 말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프롬은 일찍이 이런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인간은 자유를 얻고도 뒤따르는 고독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자유를 포기하거나 자유의 일부를 양도해 전체주의 제도를 선택하고 ‘위대한’ 독재자를 따라 이 세상에서 다시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고독감을 정면으로 마주할 충분한 결의와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이 점을 인식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재(大自在)’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것이다. ‘심경(心經)’에서는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걸림이 없음으로 해서 두려움이 없기에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고 했다.

다시 현실 사회로 돌아가보면, 우리 마음속의 자아는 우리의 관념에 기초하지만 우리의 관념은 환경과 집단에 의해 좌우된다. 현대 정보사회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관념은 종종 소셜미디어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좌우되고, 빅테크 매체의 AI 알고리즘에 의해 은연중에 변화한다. 이 과정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전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기점, 기본 원칙을 지킬 용기가 없으면 언제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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