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충실한 서양 미술…귀도 레니의 ‘원죄없는 잉태’

로레인 페리에(Lorraine Ferrier)
2023년 09월 27일 오후 9:00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이탈리아 볼로냐파 화가 귀도 레니(1575~1642)의 작품 ‘무염시태(無染始胎·원죄 없는 잉태, 1614)’ 속 성모 마리아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경건함이 드러난다. 신성한 아름다움과 순수함, 밝은 빛이 느껴진다. 성모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 신을 바라보며 공손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구름 사이로 천사들의 찬미하는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무염시태(1627)’, 귀도 레니.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그림 속에는 햇빛을 숭고하게 묘사한 듯 황금빛이 가득하다. 성모는 아기 천사들이 놓아준 초승달 위에 가볍고 우아한 자태로 서 있고, 머리 위에는 왕관처럼 보이는 12개 별의 후광이 떠 있다. 12개의 별은 십이사도를 상징한다. 작품을 그린 레니는 해와 달, 후광을 성경 요한계시록 12 1절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차용했다.

레니의 그림은 그가 전통 예술의 규범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성모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자세인 ‘콘트라포스토(대칭적 조화를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작품 속 이상적이고 우아한 인물 배치는 고대 예술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전통의 아름다움

‘오로라(1614)’, 귀도 레니. 프레스코화 | 공개 도메인

9세 무렵부터 미술을 시작한 레니는 20세가 되었을 때 이탈리아 볼로냐 최고의 예술학교인 카라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로마에서 약 13년간 활동하며 그의 걸작 중 하나인 프레스코 천장화 ‘오로라(1614)’를 완성했다. 역동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아폴론이 탄 전차를 이끌고 태양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레니의 역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인물을 이상적으로 묘사하고, 연한 파스텔톤의 색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염시태’에서는 황금빛 배경에 분홍색과 파란색을 인물 묘사에 사용해 성모를 돋보이게 한다. 특히 성모가 입은 옷의 파란색은 성모의 ‘순결함’을 상징함과 동시에 고결함을 강조한다.

그러나오로라는 그의 기존 작품들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한동안 키아로스쿠로(명암) 기법을 사용해 인물을 강렬하게 묘사하고 극단적인 명암을 표현하는 등 카라바조처럼 그렸다하지만 이후 레니는 고전적이며 우아한 작품 스타일로 돌아가 왕성한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해 예술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파세리는 그의 저서 ‘로마에서 활동한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들의 생애’에서 “레니가 가장 고귀하며 장엄한 화가임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동의하는 사실”이라며 그를 칭송했다.

레니의 유산

장엄하고 고귀한 작품세계를 펼친 화가, 귀도 레니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엘 에스코리알의 무결점(1665)’,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 공개 도메인

스페인의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1591~1652),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도 레니의 영향을 받은 화가다. 바르톨로메의 작품 ‘엘 에스코리알의 무염시태’는 레니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아 많은 부분이 유사하게 그려졌다. 루이 14세의 궁정화가였던 샤를 르 브륑(1619~1690)과 많은 예술가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아 색채와 빛, 인물을 전통 기법에 따라 묘사했다.

18세기와 19세기 초 미술 평론가들은 레니를 ‘아테네 학당’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를 잇는 대가이며 이탈리아 역사상 두 번째로 위대한 화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요아킴 빈켈만은 “레니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와 비견될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레니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다른 어떤 화가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니의 예술세계를 통해 고대부터 르네상스, 19세기를 거쳐 현대의 표현주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 전통의 흐름을 따라가며 전통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로레인 페리에는 영국 런던 교외에 거주하며 에포크타임스에 미술과 장인 정신에 대한 글을 씁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