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서 맴돌고 기억나지 않는 단어…치매·건망증 구분법은?

제이든 오
2024년 01월 12일 오후 5:02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9:35

대화 도중에 갑자기 단어나 사람 이름, 사물 이름을 잊어버려서 생각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재촉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가끔씩 일어나는 것은 정상이지만, 자주 발생한다면 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호주 퀸즐랜드 공과대학의 신경심리학 교수인 그레이그 드 주비까라이는 웹사이트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다음과 같이 썼다. “누구나 말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고 단어, 이름, 숫자를 많이 잊어버린다면 신경 장애의 징후일 수 있다.”

드 주비까라이 교수에 따르면 말하기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를 파악한다. 2단계, 정신적 어휘(정신적 사전, 마음속 사전)에서 올바른 단어를 선택한다. 3단계, 발음하는 방법 알기. 4단계, 마지막에 발성 기관을 사용하여 단어를 명확하게 말한다.

드 주비까라이 교수는 이러한 각 단계에서 단어 망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이 단어를 알고 있음에도 그 단어를 정신적 어휘집에서 꺼낼 수 없는 경우, 즉 올바른 단어를 기억할 수 없는 때, 언어학자들은 이를 ‘혀끝 현상’이라고 부른다.

혀끝 현상은 흔한 일이며 주로 3단계에서 발생하는 음성 오류이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말하려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H’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는 “못을 박는 도구(해머·hammer)”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혀끝 현상은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하지만, 특히 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치매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도 혀끝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의미와 발음의 연관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보다 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혀끝 현상은 연령에 관계없이 화자가 타인의 평가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쉽다는 실험실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취업 면접에서 혀끝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Alexander Grey/Pexels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어느 정도까지 주의해야 하는가?

드 주비까라이 교수의 말처럼 건망증이 자주 발생하고 단어, 이름, 숫자를 자주 잊어버린다면 심각한 문제의 징후일 수 있다.

언어학자들은 뇌졸중, 종양, 두부 외상, 치매 등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 상태를 ‘아노믹 실어증’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기억상실증은 말하기의 여러 단계의 문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임상 신경심리학자나 언어치료사는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망치와 같은 일반적인 물건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경우, 임상신경심리학자나 언어재활사는 그 물건의 용도(못을 박는 것 등)를 설명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그 물건의 사용법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그 물건의 사용법을 보여주는 예시를 보여주도록 한다. 또한 초성(망치에서 ‘ㅁ’)이나 음절(망치에서 ‘망’)과 같은 단서나 힌트를 줄 수도 있다.

건망증 환자들은 대부분 자극을 받으면 물건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3단계, 4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단어를 기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설명하거나 모양을 떠올릴 수 없고, 힌트를 주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면 원발성 진행성 실어증(PPA)과 같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미국 배우 브루스 윌리스도 언어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 증상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드 주비까라이 교수는 기억상실증에는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지만, 원발성 진행성 실어증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언어치료가 일시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이나 가족이 말을 잊어버렸다면 주치의에게 임상신경심리학자나 언어치료사를 소개받아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