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스라엘로 탈출한 팔레스타인 청년…“팔레스타인 전체가 테러범”

오렌 살롬(Oren Shalom)
2023년 11월 13일 오후 9:26 업데이트: 2024년 01월 24일 오후 9:27

도르 샤차는 가자지구 남부 마을 칸 유니스에서 자랐다. 다섯 식구로 구성된 무슬림 가정이었다. 일곱 살 때, 샤차는 학교에서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고 배웠다. 열두 살 때, 샤차는 가출을 감행했고 이스라엘로 향했다.

최근 샤차는 에포크타임스 이스라엘 지사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샤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 첫 학기의 한 달 정도는 아랍어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한 달이 지나자 유대인을 죽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유대인이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 유대인을 죽이는 것이 사명이며,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싸워서 그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땅은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 이스라엘 전역을 포함한다고 선생님들은 설명했다.”

“학교에서는 유대인이 다리가 세 개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살상을 저지르는 민족이라고 가르쳤다. 모든 학생은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이슬람의 무함마드의 이름으로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외쳐야 했다.”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칸 유니스에 있는 시장을 방문하는 유대인들을 알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평화로운 시기였다. 나는 정말 몸이 좋지 않았고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뺨을 때리고 교장실로 데려갔다. 교장 선생님은 고무호스로 내 등을 때렸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버지와 같이 등교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 학교에 오셨다. 약 10분 정도 지나 아버지가 교실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나를 때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내 아버지는 이스라엘에서 27년 동안 일했다. 그곳에서 돈을 벌었지만 유대인 학살을 지지하셨다.”

지난 2002년 8월 15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자동소총 모형을 들고 유대인 정착촌 모의 공격 훈련을 하고 있다.|JAAFAR ASHTIYEH/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1987년, 12세의 나이에 부친과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했다고 들었다.

“일요일에 여행을 떠나 목요일에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내내 이스라엘에서 지낸 뒤 가자지구로 돌아갔다.”

-여행이 있고 나서 3개월 뒤에 이스라엘로 도망쳤는가.

“그렇다. 이스라엘에서 탈출할 곳을 찾았고 그렇게 건설현장의 야간 경비 일을 하게 됐다.”

-가출한 후 아무도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랐는가.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았단 뜻인가.

“바로 그 지점이 중요하다. 가족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자지구에서 아이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유대인 아이들과는 다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아이들을 낳는다. 그들의 인구 전체가 테러리스트에 속한다. 전 국민이 유대인들을 죽이기를 원한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가자지구의 파괴된 건물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RIS MESSINIS/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아이들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테러리스트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들도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으며 부모보다 더 위험한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이스라엘 내부 등에서 전개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운동)에서 그들은 돌을 던졌다. 그리고 총을 쐈다. 그 후 폭발 테러를 시작했다. 오늘날 새로운 세대는 미사일을 발사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제 그들은 사람들을 도륙하고, 강간하고, 산 채로 불태우고 있다. 하마스와 지하드 같은 조직들만이 아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있던 10월 7일(이하 현지 시간)의 영상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한 그룹은 녹색 머리띠를 두른 하마스였으며, 다른 그룹은 검은 머리띠를 두른 지하드였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은 머리띠를 두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슬리퍼와 샌들을 신은 가자지구 주민들이었다. 민간인들이었다.”

“같은 날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공개한 대화 내용에 따르면, 유대인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의 부친은 아들에게 “유대인 10명을 죽였냐”고 물으며 이슬람의 알라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모친 또한 “뿌리부터 제거해야 한다”며 아들의 살인 행위를 칭찬하고 기뻐했다.”

도르 샤차|Alex Gurevich/Epoch Magazine Israel

-당신은 가출한 후 어떻게 살아왔는가.

“(앞서 언급했듯) 가출 후 이스라엘로 건너가 경비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건설 현장에서 몇 년간 일했다. 내가 일하던 곳은 건설 막바지 단계인 빌라 단지였다. 어느 날, 한 유대인 남성이 다가왔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남성은 내게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남성은 자신의 집에 가서 따뜻한 수프, 옷, 게임기, 노래 카세트를 가지고 돌아왔다. 남성은 내 양아버지가 됐다.”

“그러다 유월절(유대교의 명절) 전에 양아버지는 내가 일하던 빌라 근처로 이사를 왔다. 양아버지는 나를 유월절 기념으로 초대했지만 나는 처음에 유월절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뒤에 나는 양아버지에게 ‘유대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양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아랍인은 아랍인대로, 종교는 바꿀 수 없으며 그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식’이라고 대답했다.”

“양아버지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유대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하고 랍비를 찾아갔다고 했는데.

“랍비를 찾아가자 랍비는 내게 ‘개종을 위해서는 칸 유니스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개종 허락 편지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당시 나는 16세였다. 나는 랍비에게 ‘가족에게 연락하면 가족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내게 (성인이 되는) 18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17세가 되던 해, 한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소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내에서 일하는 모든 아랍인을 가자지구의 고향으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내가 불법체류자가 됐다는 사실을 뜻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경찰이 올 때마다 체포되지 않기 위해서 도망쳤다. 그리고 18세가 된 이듬해 랍비를 다시 찾아갔다. 랍비는 ‘이제 새로운 법이 생겨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데, 승인 허가가 나는 사람도 40세 이상이기 때문에 40세 이하인 사람은 도와줄 수가 없다’며 내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

“19세가 됐을 때 나는 경찰서에 가서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자수했다. 나는 체포됐고 법정에 섰다. 법정에서 나는 ‘이 나라에 온 지 7년이 됐고 개종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아버지는 내가 진정으로 개종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250명의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판사는 내게 징역 45일에 가석방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을 받는 동안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내 귓가에 ‘우리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두고 봐라’라며 속삭였다.”

“나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았다. 그들의 목표는 유대인을 죽이는 데 있었다. 교도소에서 나는 유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 출소 후에는 가자지구로 추방됐다.”

“나는 팔레스타인 경찰에게 인도됐다.”

지난 2006년 11월 5일(현지 시간) 이슬람 지하드 운동의 조직원이 이스라엘군의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남성에게 두건을 씌운 채 끌고 가고 있다.|MOHAMMED ABED/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거기서는 무슨 일을 겪었나.

“팔레스타인 경찰은 나를 심문하면서 지난 7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나는 ‘일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심문관들은 나를 거꾸로 들어 다리를 천장에 묶은 채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부으며 전기고문을 가했다. 주먹이나 발로 때리기도 했고 도구를 써서 구타하기도 했다. 약 반년 동안 매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기절하면 기다렸다가 또다시 계속해서 고문을 반복했다.”

“그들은 내가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나는 팔레스타인인이고 그게 자랑스럽다’고 거짓으로 부인했다. 그들은 나를 칸 유니스에 있는 고향집에 가택연금시키기로 결론 내렸다.”

-7년 만에 가족을 만난 셈이다.

“그렇다. 가족들은 내게 ‘넌 가문에 수치심을 안겨주었다’면서 ‘가문을 생각했다면 유대인 몇 명을 죽였어야 했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경찰을 따랐기 때문에 나를 받아주었다. 그들은 나를 지붕에서 자게 했고, 나는 한 달 동안 옥상에서 지냈다.”

-당신의 모친도 그렇게 말한 건가.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성과 대화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지난 2022년 10월 1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북부 메론산에서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들이 모여 있다.|JALAA MAREY/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모친이 그 자리에 함께 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어머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한 달이 지나자 그들은 나를 집에서 쫓아냈다. 나는 칸 유니스 거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 얼마 후 나는 가자지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돈을 모았고, 이스라엘로 탈출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나는 또다시 체포됐고 다시 한번 법정으로 끌려갔다. 나는 판사에게 내 인생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판사는 석방 판결을 내렸다. 양아버지가 보석금을 내주면서 나는 마침내 석방됐다.”

“그 뒤로도 이스라엘 정부 및 대법원으로부터 전향 승인을 받는 데에는 7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다. 나는 안식일을 지키고 유대교 계명을 지키는 유대인이 됐다.”

지난 2006년 12월 14일(현지 시간) 가자지구에서 열린 하마스 창설 19주년 기념 집회에서 하마스 소속 조직원들이 복면을 쓴 채 행진하고 있다.|SAID KHATIB/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앞서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고 발언했다. 정말 그런가.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없는 게 확실한가.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약 150년 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을 살해하고 여성들을 강간했다. 그 후 그들은 이슬람 지하드, 하마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왜 하마스만 이야기하는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본질은 똑같다. 모두 유대인을 죽였다.”

-다른 각도에서 질문해 보겠다. 내일 하마스가 제거된다고 가정해 보자. 가자지구에 남겨질 시민들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이슬람 지하드다. 이름은 다르지만 목표(유대인 학살)는 동일하다.”

-해결책이 있다면.

“모든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온 나라가 함께 애도한다. 모두가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내 아들은 영웅이다’라고 생각한다. 차이점이 보이는가?”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