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中 탈출한 ‘백지운동’ 참가자…“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증언

메리 훙
2023년 11월 15일 오후 9:51 업데이트: 2023년 11월 16일 오후 3:23

중국 광저우에서 정보 기술자로 일했던 평범한 시민, 황궈안 씨는 지난해 11월 백지운동에 동참한 이후 중국 공안의 표적이 됐다.

중국 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한 황 씨는 고국을 탈출, 지난여름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최근 황 씨는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황 씨는 백지운동에 동참했다가 체포된 후 도주하기까지 자신의 여정을 들려주었다.

황 씨에 따르면, 황 씨가 뉴질랜드에 도착한 뒤에도 중국 공산당 정권의 협박은 여전히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황 씨의 은행 계좌를 막았으며 중국 공안은 황 씨 휴대전화로 소환장을 발부했다.

그렇다면 황 씨가 이 모든 고초를 겪게 된 백지운동은 애초 왜 일어났던 것일까? 황 씨는 “배고픔”이라고 대답했다.

백지운동

백지운동은 지난해 11월 중국 신장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화재 당시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소방차 접근이 지연되면서 심각한 인명 피해가 났고, 이는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백지를 들고 항의하는 ‘백지운동’을 촉발했다.

백지운동은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으며 광범위한 민중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황 씨가 거주하던 광저우에서도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적극적으로 벌였다. 주민들은 “시진핑 물러가라” “공산당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황 씨도 이런 물결에 합류했다. 그는 “공안이 머리를 심하게 때려 앞쪽에 있던 여러 명이 현장에서 쓰러졌다. 뒤쪽에 있던 사람들도 폭행으로 부상을 입고 피를 흘렸다. 전기 충격봉에 맞아 무력화된 후 체포된 사람도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백지운동에 참여한 이유로 100명이 넘는 중국인이 체포됐다.

지난 2022년 11월 27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Thomas Peter/Reuters/연합뉴스

굶주림

황 씨가 백지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겪은 굶주림 때문이었다.

황 씨는 좋은 직장에서 연봉 30만 위안(한화 약 5400만원)을 받던 엘리트였다.

그런 황 씨는 백지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한 달 내내 아파트에 갇혀 지냈다. 봉쇄 조치 때문이었다. 황 씨가 가지고 있던 식량은 쌀 반 포대, 고작 며칠 분의 고기와 채소 몇 가지뿐이었다. 황 씨가 살았던 광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번영한 대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전까지 황 씨는 식량을 비축해 본 적이 없었다.

황 씨는 쌀을 아끼기 위해 미음을 끓여 먹으며 간신히 버텼다.

“사람들이 왜 건물에서 뛰어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굶주리게 되자,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황 씨에 따르면, 봉쇄 시기 광저우에서 꽤 많은 사람이 자살했다. 황 씨는 “공안이 시신을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했다”고 회상했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시신을 치우고 현장을 청소하는 데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 황 씨 역시 시신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황 씨는 “시신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한 공안은 그곳에 있던 모든 행인의 휴대전화를 확인해 사진을 남김없이 삭제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먹을 것도 없이 집에 갇혀 있었다. 가정폭력이 매우 심각했다. 불화로 인해 가족들이 해체됐다.”

보복

황 씨는 “올해 1월부터 백지운동 참가자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보복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백지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중국 대학생이 체포됐다. 시위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이 하나둘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그냥 사라졌다.”

황 씨는 온라인상에서 백지운동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 공안은 이처럼 거리에 나가지 않은 시위자들도 추적했다.

중국 정권의 보복은 실제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음 달인 2월, 황 씨는 여행사를 통해 비자를 발급받을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이와 함께 온라인상에서 활동했던 기록을 삭제했다.

하지만 5월 20일, 중국 공안은 황 씨의 자택에서 황 씨를 체포했다. 끌려간 황 씨는 공안이 자신이 삭제한 기록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작은 방에 갇힌 황 씨의 몸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수갑 때문에 황 씨는 제대로 앉기는커녕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 반쯤 쪼그리고 앉거나 반쯤 서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하루 24시간 동안 딱 한 번만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황 씨는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 후추 스프레이 고문 등 여러 가지 고문을 당했다.

황 씨가 지낸 방의 옆 감방에는 황 씨보다 먼저 들어와 5개월째 갇혀 있던 남성이 있었다. 공안은 남성을 구타하고, 발로 차고, 입에서 거품이 날 때까지 전기 고문을 가했다고 황 씨는 회상했다.

황 씨는 “(내가 있던 구치소 식당이) 300여 명의 사람들로 꽉 찼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백지운동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고 설명했다.

잔인하고 혹독한 심문을 견딘 황 씨는 15일 후 풀려났다.

지난 2022년 11월 27일(현지 시간) 중국 상하이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남성이 체포되고 있다.|Hector Retamal/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중국 탈출

회사는 곧바로 황 씨를 해고했다. 황 씨도 곧바로 중국을 떠나고 싶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약 한 달가량 지난 뒤인 지난 7월 25일, 황 씨는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이 지난 7월 31일, 황 씨가 살던 광저우 아파트 집주인은 “공안이 당신을 찾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감시카메라 영상을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 후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다.

8월 초에는 디지털 결제 서비스가 중단됐다. 중국 은행은 황 씨가 국제 통신 및 사기 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됐다며 은행 잔고 38만위안(약 7000만원)을 찾으려면 직접 방문하라고 통보했다.

같은 달 중순, 중국 공안은 황 씨의 소환 명령서를 첨부한 문자를 보냈다. 공안은 황 씨가 뉴질랜드에 있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며 “반동 발언을 삭제하고 즉시 귀국해 자수하라”고 경고했다. 황 씨는 중국에 남아있는 자신의 가족도 자신의 사건에 연좌될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러나 황 씨는 중국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자유의 땅에서 죽겠다는 입장이다.

“중국공산당은 사악하다. 그들은 적법한 절차 없이 사람들을 처형한다. 마음대로 죽인다. 그들은 사악하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