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너무 일찍 드러낸 시진핑의 오판…배후엔 책사 왕후닝

강우찬
2023년 09월 19일 오후 5:51 업데이트: 2023년 09월 19일 오후 6:30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시진핑의 결정이 책사의 잘못된 국제정세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포크타임스 중문판의 시사평론가들은 시진핑의 국정전략 수립에 있어 전제가 된 이론으로 ‘동승서강론’을 지목하며 그 근본은 반미 성향의 책사 왕후닝에게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동승서강(東昇西降)은 ‘동양(중국)은 떠오르고, 서양(미국)은 쇠퇴한다’는 의미다. 중국에서는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0년 하반기부터 언론에 “동승서강은 국제사회의 큰 추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진핑이 이러한 ‘설’에 휩쓸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를 폐기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상대로 너무 일찍 이빨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100년은 지속하라고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동승서강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된다.

중국 인민대학 중양(重陽)금융연구원 왕원(王文) 원장은 지난달 24일 기고문에서 “지난 4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연간, 분기별 경제 성장폭이 미국보다 낮은 현상이 나타났다”며 “‘동승서강’ 추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은 아니다. 앞서 작년 9월에는 국가안전부 산하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푸멍쯔(傅夢孜) 부원장이 “동승서강 추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서양이 강하고 동양이 약한 현상은 단기간에 완전히 바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공산당 기관지에서도 일부 이러한 추세를 시인했다. 이론잡지 ‘구시(求是)’는 지난달 16일 “현대화 과정에서 역사적 인내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올해 2월 시진핑 연설을 게재했다. 이는 현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나홀로 호황을 누리지만, 중국 경제는 급락을 거듭 중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 7월 청년실업률은 21.3%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아예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쏟아지며 ‘중국붕괴론’까지 거론되자 중국 정부는 발끈하는 모양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1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서방 국가들이 중국붕괴론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승서강을 처음 제시한 것은 푸단대 국제정치 전문가인 장웨이웨이(張維為·65) 교수로 알려져 있다. 장 교수는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에 강사로 나선 적도 있다. 그는 미국을 건달로, 중국을 건달이 횡행하는 난세를 다스릴 인물로 비유한 바 있다.

하지만 시사평론가 탕칭(唐青)과 리린이(李林一)는 시진핑이 동승서강론에 깊게 영향을 받은 데에는 책사 왕후닝(王滬寧·68) 중앙서기처 서기의 책임이 클 것으로 분석했다.

푸단대 법학 석사 출신의 왕후닝은 1988년부터 이듬해까지 약 반년간 미국 체류 후 쓴 책 ‘미국 대 미국(美国反对美国)’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결국 아시아 집단주의·권위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왕후닝의 민주주의 비판은 1989년 6월 톈안먼 광장 탄압으로 민주화 요구를 묵살한 공산당 지도부의 환심을 얻었고, 왕후닝은 훗날 중국 부주석에 오르는 쩡칭훙의 추천으로 1995년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팀장으로 발탁됐다.

왕후닝은 장쩌민 전 주석 재임 기간인 2002년 정책연구실 주임에 올랐고 2007년 중앙서기처 서기로 승진했다. 이 기간 장쩌민의 통치이념인 ‘3개 대표론’의 골격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왕후닝은 후진타오 정권에서도 이론가로 활동하며 후진타오의 통치철학인 ‘과학적 발전관’의 토대를 제공했고, 시진핑 정권 출범 후에도 여전히 통치철학 수립에 기여하며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거쳐 상무위원으로 당내 서열 5위에까지 올랐다.

탕칭과 리린이에 따르면, 왕후닝은 미국 쇠락론을 주장하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자, 특히 시진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시진핑 정권 이후 전랑외교, 일대일로, 시진핑 사상(중국특색 사회주의) 등 미국에 도전하는 정책이 출현함으로써 현실화됐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외교정책 분야 분석가 겸 작가로 활동하는 N.S. 라이언스 역시 2021년 기고문에서 이런 정책들은 모두 시진핑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왕후닝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전랑외교, 일대일로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있고 시진핑 사상은 중국을 마오쩌둥 시절의 극단적 분위기로 되돌리고 있다.

리린이는 “시진핑이 올해 초 집권 3기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인사를 단행했지만, 왕후닝이 여전히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근본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실효를 내지 못하는 그림의 떡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