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경이로움이 필요한 이유…문화의 회복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3년 09월 21일 오후 6:00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경이로움, 철학, 그리고 운명

‘경이(驚異)’는 놀랍고 신기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이는 사실 모든 철학과 문화의 기초이자 문명 발전의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경이가 필요할까?

미국 로렌스 캔자스대학 영문학과 교수 데니스 퀸은 그의 저서 ‘아이리스 추방: 경이의 공관(共觀) 역사(Iris Exiled : A Synoptic History of Wonder)’를 통해 경이로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를 비롯한 고대인들은 경이를 열정과 두려움의 한 종류로 분류했다. 데니스는 “경이는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을 알게 하고 무지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기 때문에 두려움을 수반한다.”고 설명했다.

‘경이롭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함께 느껴지는 것 중 하나인 기쁨은 이러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얻는 기쁨을 두려움이 강화하기 때문이다. 바다의 거대한 파도 같은 장엄한 신비를 처음 마주할 때, 우리는 그 현상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인식과 함께 장엄함에 대한 경외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 현상의 원인에 무엇이 작용하는지 알게 될수록 경이로움 또한 깊어지고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데니스는 경이에 대해 “무지의 상태에 있을 때는 경이가 불쾌감에서 발생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상을 이해하고 알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기쁨을 유발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경이는 무지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과 불쾌감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혹자는 경이를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경건한 두려움’이라고 정의한다.

‘공상(Phantasy)’(1896), 윌리엄 새비지 쿠퍼 | 공개 도메인

클리어 크릭 수도원의 프란시스 베델 신부는 경이가 사랑의 일종이라 말한다. 그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마주할 때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낮추게 된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매료하는 놀랍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희망과 열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경이로움이 사랑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장엄하고 감동적인 음악을 듣거나 거대한 산을 처음 본 순간의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고요해지며 평화로운 갈망에 휩싸여 경이의 대상에 이끌리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경이는 두려운 감정에서 시작해 기쁨과 사랑,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 낸다.

경이로움과 지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경이로움은 모든 철학의 발원지, 곧 ‘지혜의 시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식’(1851), 벵트 노르덴버그. 캔버스에 오일 |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사람은 ‘경이’를 통해 철학을 시작한다. 경이를 통해 얻은 두려움과 불쾌감을, 알려는 의지를 통해 해소하며 점진적으로 더 깊이 있고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달과 태양의 변화, 별과 우주의 기원 등 경이를 느낀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철학을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경이가 유발하는 겸손과 갈망 없이는 심도 높은 철학적 연구는 이뤄질 수 없다.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룬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통찰과 겸손을 통해 경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외 많은 철학자가 세상의 신비와 위대함에 경이를 느끼고 탐구했기에 지금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전해준 것이다.

경이의 부재

경이를 느끼고 파생된 활동이 진정한 지혜를 찾는 전제조건이라면, 그 반대로 경이가 결여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막달렌 리버 예술대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임 중인 앤서니 에솔렌은 경이가 결여된 사람은 도덕적 기준마저 쉽게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겸손과 경외심, 그리고 경이에서 비롯되는 ‘나를 낮추는 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쾌락, 돈, 권력과 같은 이기적인 추구만 갈구하게 될 수 있다. 자연과 주변 대상에 대한 경이가 사라지면 존중은 사라지고 원초적 목적과 쾌락의 성취에 눈이 멀어 비도덕적인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이와 문명

‘마을 사람들의 춤’(1630), 피터 파울 루벤스. 패널에 오일 | 마드리드 파르도 미술관

20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한 철학자 요제프 피퍼는 그의 저서 ‘여가 : 문화의 기초(Leisure : the Basis of Culture)’에서 문화를 예술, 음악, 춤 그리고 종교를 통한 세상의 성대한 잔치이자 축제라고 정의했다. 이는 문화는 한 사회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 즉 세상에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피퍼는 “축제를 개최한다는 것(문화)은 우주의 기본적 의미를 알고 우주와의 일체감을 느끼고 그 일원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축제를 할 때 인간은 일상과는 다른 측면에서 세계를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이처럼 경이로움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경건한 두려움과 사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경이를 느끼고 기쁨을 통해 감사하고 축하하면서 문화를 가꾸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의 정신과 문화는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아름다워진다.

안타깝게도 현대 문명은 수 세기에 걸쳐 증가한 회의주의, 의심과 과거 부정을 통해 ‘경이’의 능력을 많이 상실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경이로부터 얻는 도덕적, 문화적 자정 능력은 사라지고 도덕성 타락 현상이 만연해 있다. 회의주의는 경이의 반대어이자 철학과 문화, 도덕성을 쇠퇴하게 만든다. 문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이를 되찾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 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