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랜 친구” 인사말에 덫 숨긴 시진핑…용케 피한 바이든

탕징위안(唐靖遠)
2021년 11월 21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21일

뉴스분석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화상으로 열린 이 회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어떤 대화가 오갔고, 누가 기선을 잡았을까? 시진핑은 세 가지 원칙을 강조했고, 바이든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이례적으로 협력을 제안했다.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맞춰 ‘축포 2발’…국내정치에 이용

지난 15일(현지시간)은 중국 공산당(중공)에 특별한 날이었다. 그들이 특별히 선택한 이날 큰 사건이 세 개나 발생했다.

첫 번째 사건은 당연히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이다. 다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면서도 어떤 말을 주고받을지 궁금해했다. 이번 회담에서 언급한 말 한마디가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건은 6중전회에서 채택한 역사결의 전문(全文)을 공개한 것이다. 3만6000자에 달하는 이 결의 속에는 시진핑이 많은 복선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분석할 것이 많다.

세 번째 사건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바로 베이징증권거래소가 개장한 일이다.

중공은 왜 이날 세 가지 사건을 한꺼번에 터뜨렸을까? 시진핑이 정치·외교·경제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부각하고, 미·중 간 긴장 완화 분위기를 이용해 새로 개장한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것은 중공의 일관된 사고방식이자 수십 년 동안 즐겨 취한 행동 패턴이다. 미국 측은 회담 후 성명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어떤 의제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양국은 솔직하고, 건설적이고, 실질적이고, 생산적이었다”며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중공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대화를 ‘생산적이었다’고 높이 평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지난 7월 중국 톈진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중공이 미국에 전달한 ‘시정(是正) 리스트’에 있는 조항을 적절히 충족함으로써 대결 분야에서는 갈등을 적절히 해소하고, 협력 가능한 분야에서는 더 가까워지려 했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분석한 것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미국은 경쟁과 대결이 필요한 분야, 특히 중요한 분야에서 중공이 미국을 따라잡고 추월하는 것을 방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정부가 상대국 언론인을 상대로 한 사실상의 추방 조치를 완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난해 2월 상대국 기자들을 추방하고 비자를 제한하면서 시작된 언론전이 마무리됐다.

이 합의에 따르면 미·중 양국은 언론인들에게 비자를 대등하게 개방해 상대국을 정상적으로 오가면서 비교적 장기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중이 정상회담에서 영사관 재개, 비자 발급 등의 문제를 합의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중공과의 경쟁에서 전통적인 군사·과학기술·경제무역 분야에 치중하고, 비전통적 이데올로기 침투와 중공이 장기(長技)인 정보전·심리전은 상대적으로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분야야말로 중공이 확실히 우위를 점하는 비대칭 전력이다. 미국은 선전부가 없는 데다 주류 언론이 대부분 좌편향돼 있고, 좌파 이데올로기는 사실 공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은 실리 차원에서 볼 때 대체로 비겼고, 누구도 실질적인 양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는 시진핑이 여론전의 우위를 이용해 체면을 세웠다는 점에서 약간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바이든에 “오랜 친구”란 인사말로 함정

시진핑은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바이든을 ‘오랜 친구’라고 불렀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유일하게 바이든이 체면을 세운 행동이다. 그리고 정상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가진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젠 사키 대변인도 기자들의 질문에 “그(바이든)는 그(시진핑)를 오랜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오랜 친구’란 표현은 이번 정상회의가 국제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주류 언론들도 이에 대해 보도했다.

사실 중공 지도자의 화법은 서양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표현의 함의는 다양하다. 진정한 오랜 친구를 가리킬 수도 없고, 단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 반대 의미인 오랜 라이벌을 가리킬 수도 있다. 중국에는 “싸우지 않고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될 수 없다(不打不相識)”는 옛말이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이렇게 표현한 이면에는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어투를 서양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중국인들은 중공 당국의 선전에서 항상 볼 수 있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중공의 이런 화법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이런 표현의 이면에는 종종 깊은 뜻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은 중공이 생각하는 미·중 관계의 3가지 원칙은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상생’이라고 강조하면서 “지구는 중·미가 함께 발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고 했다.

시사(時事)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 일찍이 오바마 대통령 시기에 시진핑은 “태평양은 중미 양국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고 말 한 바 있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흠잡을 데가 없다. 평화롭게 공존하자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말속에 말이 있다. 그의 말의 진정한 의미는 미·중 양국은 일인자와 이인자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공은 이때부터 미국의 리더십을 인정할 수 없다며 태평양을 양분하고 나중에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공은 이미 미국과 양분할 지역을 태평양으로 국한하지 않고 그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했다. 이는 시진핑이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 중공이 줄곧 추진해 온 전략이다. 중공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부터 3단계 전략을 기획했다. ▲1단계에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으로 실력을 기르고 ▲2단계에는 일부 지역의 지도권을 양보하도록 미국을 압박해 천하를 양분하고 ▲3단계에는 미국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제패한다는 전략이다.

중공은 지금 2단계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시진핑은 이 요구를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미국에 제기하고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이미 설정해 놓은 목표이며, 자신이 연임한 후 총력을 기울일 방향이며, 이 목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양국이 언론인의 비자 제한을 완화하는 데 합의한 사실을 언급할 때도 한결같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바이든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고려 중”

그렇다면 미국은 이런 중공의 의도를 알아차렸을까? 적어도 몇 사람은 이해했다고 봐야 한다.

정상회담 직후 뉴욕타임스(NYT)는 논평을 실었다. 논평의 요지는 미국이 코로나19 사태, 인종 갈등,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의 문제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중공이 이를 틈타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고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러시아·이란·쿠바 등과 연대해 ‘반(反)서방연맹’을 설립하려 한다는 것이다.

논평은 특히 시진핑이 전 세계를 제패하려면 먼저 동아시아를 제패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뇌관이 바로 중공이 자나깨나 취하려는 대만이라고 했다.

중공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을 먼저 제패하고, 아시아태평양을 제패하기 위해 대만을 먼저 병탄한다’는 것이다.

만만찮은 백악관…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검토로 맞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16일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는 방안을 곧 승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단은 보내되 관행적으로 해왔던 정부나 정치권 인사들로 꾸려진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외교적 보이콧은 미국 선수단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중공의 인권 침해에 대응하는 조치이며,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에 이 같은 결정을 통보할 뿐, 이를 따를지는 동맹국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평론은 전했다.

정상회담 당일(15일) 일본을 방문 중인 지나 러몬드(Gina Raimondo) 미 상무장관은 미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할 계획이 없으며 “전통적인 FTA보다 강력한 경제 틀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중국 정부의 산업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미·일 통상 협력 틀’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7일 중국 측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화상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에게 미중 양국이 함께 비축유를 방출해 치솟는 원유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이는 좀 이상한 논리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자국 석유업계를 압박해 미국-캐나다 송유관 건설을 중단시켰다. 지금은 오히려 전략 비축유를 풀어 기름값을 안정시키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직면한 객관적인 현실이다. 즉 미국은 거세게 몰아붙이는 중공의 야망 앞에서 경쟁을 늦추지 않고 있지만,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형식적으로나마 중공에 일부 발언권을 양보하기 시작했다. 중공은 이것을 중공의 국제적 지위가 상승했다고 선전하는 밑천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 정부 내부에 중공의 술수를 간파한 인사들이 존재는 하지만, 행정부 전반적으로는 시진핑의 의도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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