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 통제 나선 홍콩 당국…지원금 중단·공연 취소 잇따라

대니 탕
2024년 02월 20일 오후 6:33 업데이트: 2024년 02월 20일 오후 6:33

홍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술공연이 취소되거나 공연단에 대한 후원사의 지원금이 중단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홍콩 당국이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예술계를 통제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청각장애인 무용수이자 홍콩 최초의 청각장애인 무용단 ‘펀 포레스트’를 창단한 제이슨 웡은 지난 15일 “내가 연출한 공연 ‘펄스 오브 유니티’가 취소됐다”고 알렸다. 이 공연은 다음 달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펀 포레스트 측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스크린샷에 따르면, 이 공연의 후원사가 갑작스럽게 지원을 중단함에 따라 공연이 열리지 못하게 됐다.

제이슨 웡이 과거 ‘글로리 투 홍콩(Glory to Hong Kong)’의 수화 통역 교육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리 투 홍콩’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제작된 반정부 시위가(歌)다.

그는 “내 행동이나 발언 때문에 공연이 취소된 데 큰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를 지지했던 모든 분께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 공연을 주관한 홍콩청소년예술재단은 공연 취소와 관련해 “제작 일정 변경에 따른 결정”이라고만 설명했다.

과거 제이슨 웡은 ‘장애예술가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무용 기술을 연마했다. 그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청각장애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지역사회에 수화를 알리는 데 헌신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에는 시민 기자회견에서 수화 통역을 맡았다.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에 시위 상황 및 관련 정보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2019년 9월 12일, 홍콩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에서 시위대가 ‘글로리 투 홍콩(Glory to Hong Kong)’을 부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 Carl Court/Getty Images

예술계 타격

이번 사건은 홍콩 당국이 자국 예술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벌어진 것이다.

홍콩의 공연예술단 ‘홍콩 아트 페스티벌’은 지난달 “예기치 못한 사유로 연극 ‘죄와 벌’의 제작에 차질이 생겼다. 공연을 2025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이 연극의 내용이 ‘레드라인’을 넘어 홍콩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연극 ‘죄와 벌’은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도덕적 죄책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선과 악’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최근 홍콩 샹강연예대학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희곡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각색하고 연출한 졸업 작품의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학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 일정이 변경돼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힐 뿐, 구체적인 취소 사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케빈 영 홍콩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6일 “학교 내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희곡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196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 경찰이 좌파 인사 수십 명을 체포해 조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공연을 연출한 학생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학 측의 일방적인 결정에 분노를 표출했다. “이 결정으로 약 5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를 계속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공연이 취소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