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지지 않고 빛나는 꽃의 황홀함…얀 반 하위쉼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4년 01월 17일 오전 10:47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7

네덜란드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화가 얀 반 하위쉼(1682~1749)은 이탈리아풍의 풍경화와 꽃을 주로 그린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풍부한 색감과 화려함, 섬세한 질감 묘사와 사실적 표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얀 반 하위쉼의 초상’(1720), 아널드 보오넨. 캔버스에 오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공개 도메인

하위쉼은 캔버스에 얇은 유약을 겹겹이 발라 완성하는 등 작품 완성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조색 기법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린 탓에 조수이자 딸인 프란시나 마가레타 반 하위쉼(1707~1789) 외에는 제자를 두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은둔 예술가로 부르기도 했다. 하위쉼만의 독특한 예술 기법은 그의 사후 아들들에 의해 전해져 18세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네덜란드 정물화의 발전에도 일조했다.

꽃의 화려함을 묘사하다

하위쉼은 화가이자 미술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특히 생화를 관찰해 화폭에 담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나고 자란 네덜란드는 원예산업이 활발했다. 그가 살았던 암스테르담은 당시 네덜란드 예술, 과학,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는 원예장을 자주 찾아 다양한 꽃을 구입해 정원에서 가꾸고 면밀히 연구했다.

그림 속에 다양한 계절의 꽃을 모아 그리는 것은 하위쉼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추상적 이미지가 아닌 실제 꽃을 모델 삼아 그리기를 고집했던 그는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집요한 노력과 탁월한 표현력으로 완성한 그의 화려한 작품들은 폴란드와 프로이센의 국왕, 많은 귀족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고가에 팔렸던 그림 덕에 하위쉼은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하위쉼 미술 세계의 예술적 특징

미술사학자들은 꽃과 과일을 배열해 그리는 정물화에 있어 하위쉼의 기술, 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한다.

‘꽃병’(1722), 얀 반 하위쉼.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하위쉼의 작품 ‘꽃병’은 그만의 예술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작품 속에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만개한 꽃, 시든 꽃 등 다양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모여있다. 아네모네, 카네이션, 히아신스, 나팔꽃, 수선화, 모란, 장미, 튤립 등은 저마다 개화 시기가 다르다. 꽃과 나뭇잎들은 꽃병 밖으로 넘쳐 나올 듯 담겨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나비와 벌이 꽃 사이로 날아들고, 꽃잎에는 이슬이 맺혀있다.

‘꽃병’(1722)의 세부, 얀 반 하위쉼.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꽃병’(1722)의 세부, 얀 반 하위쉼.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가로 61cm, 세로 80.3cm의 이 작품은 보는 순간 화려한 색채와 풍성한 묘사로 관객을 압도한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각 나뭇잎의 맥, 작은 꽃잎 하나하나가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구현돼 있다. 꽃잎의 질감까지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하단 석판에 그려진 그의 서명은 마치 새긴 것처럼 사실적이다.

하위쉼은 꽃다발의 안팎에 공간적 사실감을 주기 위해 극적인 조명 효과를 사용했다. 빛이 닿은 곳과 어두운 곳의 대비로 꽃의 풍성함이 한층 돋보인다.

그는 고대 신과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새겨넣은 주황빛 테라코타(양질의 점토로 구워낸 토기류) 꽃병을 작품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 자연 속 아름다운 꽃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아한 꽃병의 조화를 통해 신비로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과일 조각’

‘과일 조각’(1722), 얀 반 하위쉼. 패널에 유채.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꽃병’과 같은 해에 그려진 작품인 ‘과일 조각’에는 포도, 멜론, 복숭아, 자두, 석류 등의 과일과 꽃이 어우러져 있다. 화면 가운데를 아우르는 화려한 덩굴 식물이 꽃과 과일의 조화를 더한다. 이 작품을 두고 평론가들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빛나는 사실주의와 18세기 특유의 밝은 색채가 결합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과일 조각’(1722)의 세부, 얀 반 하위쉼.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탐스럽게 익은 과일의 달콤한 향에 취해 개미와 벌, 나비가 모여든다. 터진 석류 속으로 벌레가 기어든다. 과일과 꽃 뒤로 ‘꽃병’ 작품과 마찬가지로 주황빛 테라코타 항아리가 놓여있다. 하위쉼은 작품에 재치를 더하기 위해 포도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항아리에 새겨넣었다.

‘과일 조각’(1722)의 세부, 얀 반 하위쉼. 미국 게티 박물관 | 공개 도메인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하위쉼이 정물화 속 배경을 정적인 공간이 아닌 개방적이며 공간감이 있는 곳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배경에는 아르카디아(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지역명.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사에 자주 등장해 풍요로운 대자연의 유토피아로 묘사됨) 풍의 숲이 우거져 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안개 속을 거니는 두 사람과 고전풍의 조각상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하위쉼의 작품은 세밀하게 살펴볼수록 새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네덜란드 정물화의 정점

얀 반 하위쉼의 작품은 네덜란드 정물화 계보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불사의 꽃의 화가(The phoenix of flower-painters)’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구도를 개척하고 새로운 안료를 사용해 숨 막히게 빛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아름답고 풍부한 꽃을 화폭에 생생히 표현해 자연과 삶의 덧없음에 대한 감상을 풀어냈다. 결국 꽃은 시들어 사라지고, 과일도 변질된다. 그러나 하위쉼의 작품은 생기를 잃지 않고 빛나 우리에게 끊임없이 감동을 준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