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과 믿음으로 고난 이겨내…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에릭 베스(Eric Bess)
2023년 09월 3일 오전 11:13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1

우리 선조들이 그려낸 수많은 서화, 건축물 그리고 서양의 조각상, 그림 등과 같은 고전 전통 예술에는 지혜가 가득하다. 고전 작품들에서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있으며, 문화사의 교훈 또한 얻을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킨 이야기로 가득하며, 그중 우리에게 친숙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1475~1564)의 이야기와 예술은 더 각별한 교훈과 지혜를 담고 있다.

율리우스 2세와 시스티나 성당

16세기는 로마가 서구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급부상하던 시기였다. 당시 33세였던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 명성을 떨쳐왔기에 천장화를 그리라는 요구에 “회화는 내 분야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미켈란젤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예술가는 그의 천재성과 명성을 질투했다. 그들은 미켈란젤로를 총애하는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를 이간하는 말을 속삭였고, 이 간언(間言)에 넘어가 변심한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렇기에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프레스코화를 그리라고 명했고,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제대로 그리지 못해 좌절하며 명성이 바닥으로 추락하기를 바랐다.

‘피에타’(1498), 미켈란젤로. 대리석,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시국 | 공개 도메인

당시 미켈란젤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 노력했다. 피에타상(1498), 다비드상(1504)을 탄생시킨 천재 조각가인 그는 1508년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데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낯선 프레스코화의 기법을 배우며 각고의 노력을 펼친 그를 고난에 빠지게 만든 요소는 더 있었다. 가족 간의 문제, 그를 시기하는 예술가들, 정치적 문제 등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가 당시 작성한 일지에는 ‘나는 큰 불안과 육체적 피로 속에 살고 있다. 음식을 먹을 여유도, 친구도, 숨을 돌릴 시간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리비아 시빌에 대한 연구’(시스티나 천장화에 대한 연구), 미켈란젤로. 종이에 분필 및 목탄, 11인치x8인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리비아 시빌’(시스티나 천장화의 일부), 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 공개 도메인

그러나 그는 고난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각도로 고통을 주는 시련을 신에 대한 시각적 찬양으로 승화시켰다. 인체를 연구해 신과 인간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십이사도를 그릴 예정이었던 그림 구성을 변경해 300명이 넘는 인물을 그려 넣었다.

‘신’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다

더불어 그는 기독교만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유대교, 이교도의 인물도 그림 속 주제로 삼았다. 단순히 창세기의 이야기가 아닌 ‘창조’의 모든 것을 담았다. 신이 기독교만을 창조한 것이 아닌 세상과 전체를 창조했음을 묘사했고 천장화에 모든 피조물을 구현하려 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전체, 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 공개 도메인

미켈란젤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시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그림 속에 ‘신’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는 신은 실체를 보이지 않거나 단순히 손이나 다른 상징적인 물체로 대체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신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대담한 일이었고, 미켈란젤로가 탄생시킨 신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의 모습을 전달하는 ‘표준적 기준’이 되었다.

‘아담의 창조’의 세부 묘사(시스티나 천장화의 일부), 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 공개 도메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일부인 ‘아담의 창조’는 미술에 문외한이더라도 이미 알고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이 창조주를 만나는 순간을 그렸다. 아담은 신의 눈을 간절히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에게 닿는다. 신은 자신이 설계한 아담의 모습에 만족한 표정으로 힘차게 손을 뻗어 아담과 교감한다.

대작의 완성과 대가의 지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전경, 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 공개 도메인

미켈란젤로는 150개가 넘는 작은 작품을 시스티나 천장에 그려냈고,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Solemnity of all Saints)에 공개되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1508~1512) 전경, 미켈란젤로.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 공개 도메인

결국 대작을 완성해 낸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에는 지혜가 담겨있다. 그는 직면한 고난들을 타개하기 위해 큰 노력과 끈기를 발휘했다. 해보지 않은 새로운 작업과 세간의 질투,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는 신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믿음으로 고난을 견뎌냈고, 기대치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인간의 형상을 통해 신성을 표현하려는 그의 새로운 발상과 노력은 작품이 완성된 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며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에릭 베스는 시각 예술 박사 과정 연구소(IDSVA)의 박사 과정 후보자이자 뉴욕 주 미들타운에 있는 페이티안 대학의 조교수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