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주한 중국대사 列傳⑦] 첫 ‘국제통’, 임기 내내 한중 갈등으로 초치…장신썬 6대 대사

최창근
2021년 9월 14일
업데이트: 2021년 9월 14일

아일랜드 대사, 외교부 최선임 국장 등 역임한 최고위직

장신썬(張鑫森)은 1953년 중국 상하이(上海) 출생이다. 베이징외국어대학(北京外國語大學) 졸업 후 1977년 중국국제여행사(中國國際旅行社) 사원으로 1년 일했다. 이듬해 국무원 외교부로 적(籍)을 옮겨 베를린의 주 도이치민주공화국(동독) 중국대사관에 근무했다. 1987~88년 도이치연방공화국(서독) 국제협력기금회 연수프로그램으로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연수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런던 중국대사관에서 일했고, 1985년 귀국하여 국무원 외교부 서유럽사 3등 서기관으로 1988년까지 대 유럽 업무를 담당했다. 1988년 부서를 옮겨 외교부 판공청(辦公廳·기획조정실 해당) 2등 서기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신화사(新華社) 홍콩분사(香港分社·홍콩지사)로 소속을 옮겼다. 신화사 홍콩분사는 관영 통신사 간판을 내걸었지만, 실체는 ‘영국령’ 홍콩 주재 중국 공산당 대표 기구였다. 당시 주 임무는 1984년 ‘중영공동성명(홍콩반환협정)’에 의하여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주권 반환이 예정된 ‘홍콩 귀속’ 업무였다.

西歐, 홍콩 근무 거친 국제통… 홍콩·마카오·대만 담당 부서 책임자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베이징으로 복귀한 장신썬은 외교부 홍콩·마카오·대만사(港澳臺司) 참찬(參贊·참사관)으로 발령 났다. 이후 1999년 홍콩·마카오·대만사 부사장(副司長·부국장), 2002년 사장(국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 장신썬은 주아일랜드 대사로 임명돼 더블린으로 부임했다. 2007년 외교부 판공청 주임(기획관리실장에 해당)이 됐고, 2010년 제6대 주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됐다. 장신썬은 역대 주한 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기록됐다. 외교부 최선임 부서인 판공청 주임 역임 후 한국 대사로 부임해서이다. 장신썬은 한국통·일본통이 번갈아 부임한 역대 주한 대사 중 유일한 ‘국제통’으로 꼽힌다.

2010년 4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제6대 주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로서 임무를 공식 시작한 장신썬은 한국 정부 인사들을 차례로 예방했다.

장신썬이 대사로 부임할 무렵,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김정일 북한 군사위원장은 5월 3일, 열차 편으로 단둥을 거쳐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를 두고 중국 정부가 북한에 ‘천안함 사건 면죄부를 준 것이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일 방중 사실은 즉각 파문을 일으켰다. 5월 3일,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장신썬을 외교부 청사로 초치(招致)하여 중국 측이 지난달 30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전 통지나 언질을 주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우리 정부의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

천안함 사건 관련 北 비호, 동석한 싱하이밍 현 대사 현인택 통일장관에게 항의, 외교 결례 논란

5월 4일, 장신썬은 신임 대사 부임 인사차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면담 자리에서 현 장관은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정세가 매우 다이내믹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천안함 사태에 직면해 있고,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는 북한이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매우 어렵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고,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인택 장관은 ‘천안함’을 ‘천안문’으로 말하기도 했다. 현 장관의 발언이 길어지자 배석했던 싱하이밍 공사참사관(현 주한중국대사)은 한국어로 “너무하시는 것 아니냐? (기자들도 있는데) 녹음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이는 외교 결례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외교부 과장급 인사가 대한민국 현직 각료를 들이받는 것이었다. 장신썬은 면담 후 기자들에게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 늘 책임 있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장신썬의 발언은 논란을 일으켰다. 5월 17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방문한 그는 천안함 사건 진상 조사에 대하여 “조사와 관련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검증받을 수 있는 증거여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 억측은 자제해야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를 보면 누구의 소행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 같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결과를 의미하며 조사과정 중에 주관적 예단이나 예측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조사와 관련해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검증받을 수 있는 증거여야 한다”고 발언했다. 천안함 침몰 책임에 무관하다는 북한의 입장을 대신 전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이다”는 잠정 결론을 내고 중국대사관 측에도 통보한 터였다.

그해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유관 보도에 주의하고 있으며 사태 전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11월 27일 한-중 외교부 장관 회담을 위해 방한 예정이던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도 방문 36시간 전에 방한 취소를 일방 통보했다. 이도 외교적 결례에 해당했다.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전통적 혈맹을 내세워온 북한과의 관계 사이에서 북한을 두둔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장신썬도 12월 6일부터 한 달간 휴가를 명목으로 한국을 비워 ‘책임 회피’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듬해에도 장신썬은 불미스러운 일로 외교부 청사로 초치 당해야 했다. 2011년 11월 12일, 서해 소청도 남서방 47마일 해상에서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인천해경 3005함 소속 이청호 경사(순직 시 경장)가 중국 어선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장기 손상 및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 조업 中 어선 단속 중 韓 해경 피살

사건 발생 당일, 박석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장신썬을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이번 해경 대원 사망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가 사과해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가 불법 조업에 대해 철저히 단속해주고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해 달라”며 강력 유감을 표명했다. 장신썬은 “사망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이다. 정확한 보고를 위해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답했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상황을 알아보고 있다. 한국과 밀접하게 협조해 타당하게 처리하고자 한다. 한국 측이 중국 어민에게 합법적 권익 보장과 더불어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

서해 상에서 중국어선 나포작전 도중 해양경찰관이 중국 선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과 관련, 12일 오전 외교통상부로 초치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가 박석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의 항의를 받은 뒤 외교통상부를 나서 승용차에 오르고 있다. 2011.12.12 | 연합뉴스

해경 피살 사건 다음날인 12월 13일, 베이징(北京) 소재 주중한국대사관에 새총이나 공기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직경 7mm 안팎의 은색 쇠구슬이 날아들어 대형 강화 유리창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를 본 곳은 대사관 내부 경제동(棟) 1층 남쪽 코너에 있는 직원 휴게실로 약 5mm 두께의 대형 강화 유리창에 작은 동전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 발생한 한국공관 피격 사건이었다. 당시 악화된 한-중관계와 중국 내 반한감정이 표출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듬해에도 한-중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2012년 3월 3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류츠구이(劉賜貴) 중국 국가해양국장은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의 해양권익을 지키고 법을 집행하는 체제를 마련했다”며 감시선·항공기를 통한 정기순찰 범위에 포함되는 해양권역을 밝혔다. 류츠구이는 이 권역이 북쪽으로 압록강 하구, 동쪽으로는 오키나와 해구, 남쪽으로는 난사군도 제임스사주(중국명 정무안사·曾母暗沙)에 이르며,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漁島)와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蘇巖礁)도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도를 중국의 순찰권역에 포함시켰다는 중국 당국자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뒤 한·중 간 외교적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이어도 문제 등 한-중 갈등 연이어 발생

3월 12일, 김재신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장신썬을 불러 “이어도는 영토 문제가 아니고 해양경계 획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한-중 회담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신썬은 “이어도가 영토 문제는 아니지만 한-중간 중첩되는 해역에 있다”고 답했다. 한국과 중국은 1996년부터 2008년 11월까지 이어도 관할권을 두고 14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2년은 한-중 수교 20주년이었다. 9월, 수교 2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그는 “수교 이래 양국 우호 협력 관계의 발전이 양국의 장기적인 발전과 지역의 평화·안정에 도움이 됐고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에 맞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다. 역사적으로 정확한 선택이었다. 주한 중국대사로서 양국 관계의 발전에 직접 참여하고 노력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 밝혔다.

장신썬의 말과는 달리 한-중 관계 파열음은 지속됐다. 그해 10월, 서해상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단속 과정에서 중국 어민이 해경이 쓴 고무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를 만난 장신썬은 사건 철저 조사, 책임자 처벌, 인도적 배상, 무기사용 자제 등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임기 내내 한-중 간 민감한 외교 마찰로 외교부 청사로 초치 당하는 일이 잦았던 장신썬은 2013년 12월, 4년간 임기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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