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의대 입학 정원 1000명 증원,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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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2023년 11월 8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4년 01월 10일 오전 11:11

의대 입학 정원 1000명 증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변_박종훈 한반도선진화재단 보건의료정책연구회장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부터 고려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의료원 대외협력실장, 의무기획처장, 안암병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의대 입학 정원 1000명 확대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분이 여기에 찬성이냐 반대냐 물어보시는데 찬반으로만 답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에 참 난감합니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 수를 단박에 늘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하니 우려에 앞서 두려움이 앞서는 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으로는 또 다른 더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대 정원이 이슈화된 배경을 설명해 주세요.

“2020년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의 정부안이 전공의 파업 등 거센 의료계의 저항으로 인해 보류된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2020년 의료대란’입니다. 당시 정부의 논지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 이용 증가와 의사 수 부족으로 불거진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의 기반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 수 증가가 필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전공의 파업으로 전국의 모든 대형 병원의 진료가 올스톱되는 난리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료대란 후에도 제대로 된 담론 과정이나 대안 마련 없이 봉합해 버린 게 참 아쉽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겁니까?

“또다시 고민과 대화의 중간 과정 없이 의사 수 확대라는 이슈를 갑자기 끄집어냈습니다. 문제는 의사 수 증원에 대한 합의 과정이 생략됐다는 점입니다. 현재 불거진 의료 문제, 즉 ‘필수 의료 인력의 절대적인 감소, 지역 의료의 붕괴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은 의사 수 부족 국가일까?’라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미래 의료 체계에 대한 청사진이 먼저 마련되고 증원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청사진이 없으니 우왕좌왕하게 되고 정책 실패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부족한가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의사 수는 부족합니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에 불과한데, OECD 가입국 전체 평균이 3.7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전체 의사 수가 적고 매년 새로 배출되는 의사 수도 OECD 최하위권입니다.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7.26명으로 OECD 39개국 중 38위입니다. 한편, 18년째 동결된 한국의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인데 반해, 인구가 우리의 절반 수준인 호주는 3845명, 인구가 8317만 명인 독일은 9458명이고 우리와 비교해 인구가 2.5배 정도인 일본은 9330명에 달합니다. 즉 인구 대비 의과대학 입학 정원만으로 보면 우리는 의사 수가 적은 국가임은 분명합니다.”

-적은 의사 수가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시되는 걸까요?

“사실 객관적인 자료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수의 적절성 여부는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과 국민의 의료 활용도 등 문화적 측면을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의료를 선택하는 국가의 경우 의료를 기본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의료 시스템이 많은 의사 수에 기반을 둡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국가에서 국민의 의료 만족도가 높을까요? 매우 낮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의사가 관료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인구 대비 의사 수를 본다면 북한은 초선진국에 해당할 겁니다. 이렇게 적은 수의 의사 수로도 그동안 한국 의료에 대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이 그 어느 나라에 비해 좋았던 것은 우리의 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의사에게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한 명의 의사가 일당 10명의 환자만 진료해도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10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죠. 이런 제도 때문에 비교 대상 국가의 1/2 또는 1/3의 의사 수로도 그동안 국민은 불편함을 못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문제가 되는 필수 의료 인력의 부족, 지방 의료의 붕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저는 의사 수 부족보다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우선한다고 봅니다.”

-건강보험제도부터 살펴봐야 하는 건가요.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1960년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후반에 기본 틀이 갖춰졌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으로 오기까지 조합 방식을 거쳐 2000년에 통합 건강보험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제도 도입 초기부터 우리의 건강보험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본 철학과 지속 가능한 건전한 의료 정책의 설계가 없기는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세히 보면 모순적인 부분들이 요소요소에 산재하는데, 한 마디로 사회보험의 기본 개념조차 없는 이상한 제도로 지금껏 끌어온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보험의 성격에서는 의료 서비스 제공의 포괄성과 최소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 말은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서비스를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만일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지향하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마어마한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하므로 사회보험의 성격에는 부적합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건강보험을 유지할 만한 충분한 재원의 여건 없이 대중영합주의 도입으로 공급자인 의료인의 협조(?)를 단서로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게 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영리 추구가 가능한 비급여 진료의 출구를 열어준 것입니다. 즉 지표상의 수가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선에서 결정하고는 의료인들에게는 이를 보상할 수 있는 탈출구를 열어주었으니 애당초 우리 의료가 결국 언젠가는 영리 추구와 비급여, 과잉 진료로 갈 수밖에 없는 제도로 설계됐습니다.”

“건강보험이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는 지역 조합 방식이었고 당시만 해도 진료권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지금처럼 전국 어디서나 아무런 제재 없이 그 어떤 의료 기관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치마저 없어지고 때마침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인해 전국이 실질적인 일일생활권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중병 환자는 물론 중병도 아닌데 진료를 위해 서울로 향합니다. 이런 국가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텍사스 환자가 더 나은 진료를 위해 뉴욕으로 온다?’ ‘오사카 주민이 진료를 위해 도쿄로 온다?’ 이는 매우 예외적 현상으로, 우리나라처럼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만 유독 이럴까요? 유독 남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는 국민성까지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의료의 수요와 공급을 그냥 방치한 탓이 근원이라고 봅니다.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에 던져두고 방치하면 끝 간 데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특히나 우리처럼 저수가를 기본으로 한 상황에서는 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2000년도 이후 의료계에는 의과대학의 전통은 무시되고 규모가 병원의 서열을 결정짓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불과 40명의 입학생을 가진 신생 의과대학 병원(엄밀하게는 협력병원)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의과대학 병원을 제치고 부동의 병원 서열 1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미국의 경우 서열 1위의 병원 메이오 클리닉(Mayo Clinic)도 어느 의과대학 소속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격적인 규모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에 수도권 대형병원들은 전국 환자를 쌍끌이 어선처럼 쓸어 담기 시작했고, 환자가 수도권으로 향하다 보니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가속화됐습니다.”

“더구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전공의 특별법’이라는 제도하에 전공의 근무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서 쏠림 현상을 더 부추겼습니다. 대형 병원이 유지될 수 있었던 근간이 저렴한 노동력의 전공의 인력이었는데 이 인력이 어느 날 갑자기 반 토막 나고 그로 인해 근무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도미노처럼 의료 인력이 취약한 병원들에서부터 빠져나갔습니다. 가뜩이나 저수가에 지쳐있던 필수 중증 의료 분야는 아예 젊은 의사들의 관심 밖이 된 것이죠.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견은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 단 한 번도 지속 가능한 의료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나 정책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의료 수요자인 환자를 대변해서 기금을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이라도 의료의 필요도를 계산하고 공급을 조율하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은 수수방관했는데, 이는 건강보험공단의 잘못이 아니라 건강보험이 의료제도 자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가 공단에 자발적인 역할을 기대하거나 허락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한 요인입니다.”

-결국 규모의 경쟁이 만든 결과라고 볼 수 있겠네요.

“국민은 어떠한 제약 없이 마음껏 의료를 이용하는 현재의 제도에 익숙해 있습니다. 가벼운 진단을 받아도 바로 다음 날 서울의 최상위 병원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정해진 저수가의 틀 안에서만 죽어라 고생하면서 진료하던 의사는 비급여 진료를 기반으로 한 과잉 진료에 친숙합니다. 의료 환경이 변했습니다. ‘어려움을 참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으로 남들이 안 하는 중증 필수 의료에 매진하라고?’, ‘남들 수도권에 살 때 지역에 남아서 보람찬 의사 생활을 하라고?’, ‘환자가 외면하는 지역 의료를 지키라고?’ (이런 인식을 가진) MZ 세대에게 모든 국민이 ‘수도권, 서울로 서울로’ 하는 문화 속에 환자도 외면하는 지방에 남아서 사명감으로 필수 의료를 사수하라고 요구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면 도움이 될까요?

“지역에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수도권으로 오는 게 아니라, 환자가 수도권으로 몰리기 때문에 의사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외면한 채 의사 수를 왕창 늘려서 그중에 요행으로 낙수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죠.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건강한 의료에 대한 정교한 설계 없이, 왜곡될 대로 왜곡된 현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방책으로 의사 수를 늘린다면 효과는 의문시됩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큽니다. 설계가 부실한데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가뜩이나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한데 느닷없이 입학 정원을 늘리면 과연 이 나라 이공계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지도 우려됩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의사들은 우리가 외면하는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 열기가 여전히 높습니다. 미국 의사가 유독 사명감이 높은 것일까요? 미국 의료 시스템도 문제는 많지만, 분명한 사실은 보상(reward)이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미국 의사의 연봉 상위는 우리나라 의사들이 꺼리는 전공 분야입니다.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거기서 존경심과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겠죠.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보상 제도가 매우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대형병원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중증 입원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2차 지역 종합 병원들을 회생시키고 환자들의 무분별한 의료 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한다는 전제 아래 우리에게 필요한 의사 수를 계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이며 바람직한 의료제도의 설계가 우선이고, 의사 수 문제는 차후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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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 한선브리프 통권2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