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북·러 밀착과 한국의 대응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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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2023년 09월 28일 오후 1:15 업데이트: 2024년 01월 10일 오전 11:11

· 밀착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답변_우평균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고려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한국정치학회 대외협력이사를 지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및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에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3일 러시아 극동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 기지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의 정상회담이 개최된 데 이어 김정은은 17일까지 9박 10일에 걸쳐 연해주 등 극동 지역 내 무기 공장과 군부대를 잇달아 시찰하고 귀국했습니다. 두 정상이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첫 만남 후 4년 만에 열린 정상회담으로, 첫 회담보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확실하게 끌었습니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사일, 포탄과 탄약이 부족해졌고, 북한은 위성 발사 실험이 연이어 실패하는 등 첨단 위성 발사에 있어 넘기 어려운 장벽이 있다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러시아로부터 북한으로의 위성 기술 전수와 북한의 무기 및 군사 장비의 러시아 수출이 맞교환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위성 기술과 무기 교환이 빅딜(big deal)이라면, 에너지·식량 등 제공과 무기 수출은 스몰딜(small deal)에 해당합니다. 다만 러시아 당국이 밝힌 대로 ‘민감한 분야’ 협력을 논의한 회담에 대한 공식 발표문이 없었고, 김정은의 몇 군데 순방만 있었기 때문에 드러난 행적만 가지고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북·러 관계는 진전된 걸까요?

“양국이 4년 전에 비해 확실히 진전된 관계를 보여주는 몇 가지 단면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무기 거래의 측면입니다. 이미 북한의 무기 거래를 전방위적으로 봉쇄한 유엔안보리 결의 2270호가 존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고위급 무기 전문가들을 대동한 북한 대표단을 접견한 것은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정상회담의 초점이 군사 분야인 건 분명하지만, 북한은 당장 빅딜을 원하더라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양국의 빅딜은 등가성이 없으며, 러시아가 미사일과 포탄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바를 한 번에 다 들어줄 리는 없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할까요?

“위성 기술 전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러시아가 북한 입장을 수용하더라도 핵심 기술을 빠른 시간 내에 제공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냉전기와 현대를 통틀어 러시아는 첨단 군사 기술을 외국에 제공한 선례가 없습니다. 러시아가 중국에 최신 전투기 수호이 기종(SU-30)과 러시아 최고의 방공 미사일 시스템인 S400을 판매한 적은 있지만, 기술을 전수한 게 아니라 완제품을 판매했습니다. 물론 중국이 이미 러시아제 무기를 불법으로 역설계해 자체 생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 판매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도와줄 수 있다고 포괄적인 표현으로 시사함으로써, 러시아가 우려하는 바를 사전에 제어하려는 주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원하는 대로 공급받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을 통해서, 혹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북한과의 무기 제휴 표명을 통해 한국의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의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공격 무기 제공 이슈는 한국 내 여론 분열과 한·미 간 이견 노출로 러시아의 적대 세력 내부를 균열시킬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제공할 수 있는 무기는 재고 무기이며, 대부분 장약 부실과 높은 불발률로 실전에서 큰 도움이 안 됩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북한이 공장을 가동해 만들어 낸 신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북러가 협력한 역사가 있나요?

“북한과 러시아는 건설 분야에서 협력한 경험이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경기장을 포함한 프로젝트에 러시아 전역에서 고용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 제2397호에 따라 2019년 12월까지 북한으로 송환돼야 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김정은은 푸틴을 만나기 전 연해주 주지사인 올레크 코제마크와 만나 공동 사업을 논의했습니다. 2018년 전임 연해주 주지사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유엔 제재에 따른 준수 면제를 요청했지만, 러시아 연방 정부는 유엔 지침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는 더 이상 그러한 제재에 연연하지 않을 듯합니다. 따라서 항간에 나돌던 북한 예비군의 우크라이나전 투입 가능성보다는 북한 노동자의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혹은 러시아 본토로의 파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북한 예비군의 투입은 대거 탈영 등 예기치 못한 사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이번 방문 중 연해주 주지사 외에 김정은은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도 만났습니다. 러시아는 과거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 원산으로 바꿔치기해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산 석탄을 계속 거래한다면, 석탄 거래와 관련한 유엔 지침을 위반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북·러 밀착을 평가하신다면요.

“북러 간 군사적 밀착은 비대칭적인 교환 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어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장기적으로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극대치보다 현 상황에서 연대의 과시를 통해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치중한 ‘보여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안보는 1%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절체절명의 국가 생존이 달려있기에 최대한 보수적인 대비 태세를 갖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준비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비해야 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지난 9월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하면서, 정상회담 경과와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첨단 군사 기술과 무기의 수준을 보다 명확하게 설정해 러시아와 북한이 선을 넘지 않도록 사전에 강력하게 경고해야 합니다. ICBM을 비롯한 미사일 기술, 북한 보유 MIG-29 전투기 수명 연장, SU-30 이상의 전투기 기종 도입, 2000년대에 러시아가 개발한 첨단 다목적 전투기, 원자력 잠수함 이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한반도 안보의 지형을 바꾸면서 중차대한 전력 균형을 위태롭게 하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에 한국 안보를 위한 한계선을 분명하게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푸틴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 등에 가해져 온 다자 군수 기술 제제 체제의 종식을 선언적으로 표명했고,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했습니다. 다만 러시아가 중국과 더불어 대북 추가 제재를 차단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에 편승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기에 무기 거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원론적인 반대 의사 표명에 더해 선제적으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북·중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북러 간 협력 진행에 이어 북한이 중국과도 관계를 진전시켜 북·중·러 3각 협력 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북·러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에 러시아처럼 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북·중 관계가 북·러 밀착처럼 진행되리라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을 불신해 온 북한이 중국을 현 시기에 얼마만큼 가까이할지는 북·중·러 3각 협력이 북한에 가져다줄 이득과 관련됩니다. 어쨌든 3국은 표면적으로나마 협력을 강화해 미국과 서구에 맞서는 구도를 유지할 것입니다.”

“미국은 곧 있을 대선 캠페인과 도널드 트럼프의 재당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북 문제 및 대러시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당분간 내려놓고 국내 문제에 집중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미·일은 동북아 안보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확고한 제도적 틀과 실행 과제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다시 말해 미국에서 정권 교체가 있거나, 트럼프가 재당선되더라도 대통령 개인이 임의로 바꿀 수 없는 제도 협력의 기제를 확보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024년 봄 푸틴이 러시아에서 재당선되고,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기다리면서 전쟁을 계속 끌고 간다면 예측 불가의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우려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소모전 끝에 승리한다거나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에서 그대로 전쟁이 종식된다면 북·러 관계가 계속 밀착되고 한국 안보에 위협이 가중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한국은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자유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인정한 만큼 이 같은 가치에 시종일관 의지와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대러 외교정책은 무엇일까요?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면 러시아도 북한과 군사협력을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북·러 정상회담 내용을 한국에게만 공개할 수 있다’ 등의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한국을 의식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척도를 보여줍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은 러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을 회유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드러낸 발언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적어도 푸틴 집권기 러시아가 약속을 지키는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정치인들과 러시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놀란 점 중 하나는 러시아의 최고지도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크림반도에 군대가 진입했지만 러시아는 관련이 없다고 했고, 크림반도의 주요 기관을 접수한 후에도 러시아는 점령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전쟁 준비를 마쳐 놓고도 러시아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며, 협상을 통해 타개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 정상과 정보 관계자들은 아무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려는 준비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예측 실패의 원인은 득보다 실이 많은데, 러시아가 설마 전쟁할 리가 있겠나 하는 합리적 판단이었습니다. 심리전에 능한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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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 한선브리프 통권2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