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잃은 아베파 해체 위기…한미일 안보협력에 악영향 주나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12월 22일 오후 5:39 업데이트: 2023년 12월 22일 오후 6:13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내부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도쿄지검은 특히 최대 계파인 ‘세이와정책연구회’, 즉 아베파를 향해 칼날을 정조준하고 있다. 다른 주요 계파인 ‘지수회’, 일명 ‘니카이파’도 19일 사무실 압수수색을 받았다. 언론은 이를 자민당 내부 파벌 문제로 취급하고 있지만, 계파 간 구도를 보면, 향후 한미일 안보협력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쿄지검 특수부, 19일 아베파와 니카이파 사무실 압수수색”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이하 닛케이) 등 현지 언론들은 19일 “도쿄지검 특수부가 오늘 아베파와 니카이파 사무소를 압수수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실태 해명에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베파와 니카이파 모두 입건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사건 내막은 이렇다. 아베파가 연례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개최하면서 모금한 돈 가운데 목표치를 초과해 모금한 돈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고 소속 의원들에게 ‘정책활동비’라는 명목으로 나눠줬으며, 의원들도 이를 정치자금으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의원들이 정치자금으로 신고하지 않고 받은 리베이트가 아베파만 5억 엔(약 45억 8000만 원)에 이른다. 니카이파 소속 의원들이 신고하지 않고 챙긴 리베이트 또한 비슷한 규모로 알려졌다. 도쿄지검은 지난 16일부터 의원과 비서들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아베파와 니카이파가 의원들에게 정치자금 신고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을 포착, 각 계파가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보고 의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다만 현지 언론들은 “니카이파는 그래도 리베이트로 의원들에게 돌려준 금액을 단체 지출로 표기했고, 의원들 또한 기부금으로 장부에 기재했다”면서 “검찰은 아베파가 더 악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일부 현지 언론은 “아베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검찰 수사에 따라 아베파가 찢어질 수 있다”는 자민당 간부의 말을 전했다.

◇자민당 독주하는 日 정치…민심 무관한 총재 선거 승리하려면 파벌 지지 필수

현재 일본 정치는 자민당 독주 체제다.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입헌민주당이 가세하면서 민주당이나 유신회, 공산당 등은 ‘도토리 키재기’식의 활동만 할 뿐 정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자민당 총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총리가 된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민심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오히려 당내 계파의 지지가 필수다.

‘세이와정책연구회’, 일명 아베파는 현재 99명의 회원을 보유한 자민당 최대 계파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당하고, 이어 통일교와의 ‘커넥션’ 의혹이 불거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베파는 과거 호소다파로 불렸다. 2021년 11월 수장이 없던 호소다파는 아베 전 총리를 수장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다시 수장을 잃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통일교와 아베파 간 ‘커넥션’ 의혹 때문에 당 요직에서 쫓겨나면서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그다음 계파가 ‘아소파’로 불리는 ‘지공회’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수장이다. 회원은 55명이다. 세 번째는 ‘헤이세이 연구회’로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이 수장이다. ‘모테기파’라고 불리는 회원은 54명이다. 네 번째는 ‘기시다파’로 알려진 ‘굉지회’로 회원은 46명이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가 수장이었다. 다섯 번째가 ‘지수회’로 회원은 41명이며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이 수장이다. ‘니카이파’로 알려져 있다.

이 5개 계파가 사실상 자민당을 움직인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기시다 후미오 후보(현 총리)는 자기 파벌 외에 아베파와 아소파, 모테기파의 지원으로 승리했다. 이후 개각 때마다 계파별로 인물을 분배했다. 즉 자민당 내부 파벌이 일본의 정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건우파’ 성향 아베파 없어지면…권력 공백 메우려 ‘반미’와 ‘친중’ 연대 가능성

아베파와 니카이파에 대한 도쿄지검 수사에 우리나라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5대 파벌 가운데 2개 파벌이 걸려 있고, 내년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아베파는 ‘일본회의’와 ‘통일교’의 지원을 받는 우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중도우파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반면 아소파는 우익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체는 반미극우이다. 평화헌법 개헌은 물론 징병에까지 관심을 보인다. 니카이파는 그 수장처럼 친중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니카이 도시히로’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의형제 사이기도 하다. 나머지 기시다파, 모테기파는 온건우파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가장 큰 아베파가 검찰 조사로 무너지거나 크게 약화될 경우 자민당 내 커다란 권력 공백이 생긴다. 파벌에 속하지 않으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민당 내부 문화로 따져 볼 때 아베파 소속 의원들이 파벌을 옮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가 아소파와 니카이파의 ‘공생’이다. 두 파벌 회원은 96명으로 현재의 아베파와 맞먹는 규모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아베파가 사라진 공백을 차지하려 다른 파벌과 손을 잡으면 일본의 안보정책이 크게 바뀔 수 있다.

반미우익인 아소파와 친중 성향의 니카이파는 일본이 자유세계의 방파제라며 동북아 안보질서에서 한국을 배제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우리나라에는 위안부·징용공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안미경중’을 앞세워 줄타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앞에서는 미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평화헌법 개헌과 무력 증강을, 뒤로는 중국 공산당과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통해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만들려고 시도할 수 있다.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만들면, 일본과 중국은 겉으로는 대립하면서 뒤로는 협력할 수 있다. 2018년 트럼프 정부의 등장 이후 아베 정권이 점점 친중화된 사실을 기억한다면, 아베파 붕괴 이후 일본의 반미친중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