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조각가 도나텔로와 두 개의 다윗상

로레인 페리에(Lorraine Ferrier)
2023년 10월 4일 오전 11:01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1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도나텔로(1386~1466)는 르네상스 태동기에 활동한 조각가이다. 인본주의적 표현의 선구자였던 그는 이후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서양 조각가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당대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운 인물이다.

도나텔로의 손에서 탄생한 조각상은 모두 생기가 넘친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고대 로마의 고전적 조각상들을 참고해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 사실적인 몸짓과 표정이 담겨있다. 도나텔로 이전에는 이처럼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개의 다윗

도나텔로는 30년가량의 간격을 두고 다윗(다비드) 조각상 두 개를 제작했다. 두 조각상은 이상적 신체 비율로 제작되었고, 당시에 유행하던 고딕 양식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양식을 도입한 도나텔로의 변화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다윗의 승리’라는 동명의 두 조각상은 성서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을 어떻게 한 젊은이가 믿음과 용기로 성취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의 장면을 묘사한 두 작품은 나이가 든 성인이자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른 다윗이 아닌 젊은 목동 시절 다윗의 모습을 구현했다. 도나텔로 이전의 예술가들은 다윗을 예술 속에 표현할 때 성인의 모습으로 묘사했기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 위에 서 있다.  1435년에 제작된 ‘다윗의 승리’ 속 다윗은 골리앗의 검을 든 채 비스듬히 서 있다.

대리석과 청동의 다윗

‘다윗의 승리’(1408~1416), 도나텔로. 대리석 | 이탈리아 바르젤로 국립박물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다윗상은 그가 20대 일때 제작되었다. 피렌체 대성당 천장의 돔 위를 장식할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원근법을 적용해 건물 아래에서 조각을 바라봤을 때 비율이 왜곡되지 않도록 계산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돔 위에 올려지지 못했고, 피렌체 대성당 내부를 장식하게 되었다.

‘다윗의 승리’(1435~40년경), 도나텔로. 부분적으로 도금된 청동 | 엘라 비알코브스카

청동으로 제작된 다윗상은 그의 대표작이다. 고대 이후 대부분의 청동상은 건축물을 장식하는 용도로 제작되었으나 도나텔로는 단독 청동 조각상을 제작했다. 이 조각상은 메디치 가문이 의뢰해 제작되었으며, 피렌체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두 다윗상은 모두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유래한 콘트라포스토(무게를 한쪽 발에 집중하고 다른 쪽 발은 편안하게 놓는 구도) 자세를 취하고 있어 대칭적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

대리석 다윗상은 고딕 양식에 따라 제작되어 소매와 목 부분이 길게 늘어진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청동 다윗상은 역동적이며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 있다. 당대 예술가들이 도덕성을 묘사할 때만 인물을 나체로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도나텔로는 다른 목적을 위해 인물을 나체로 묘사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이전에 목동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건강미가 돋보이도록 했다. 또한 청동 다윗상의 한 손에는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 사용했던 돌을 쥐고 있다. 이는 폭정에 맞서 싸운 인내와 신념의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선의 승리

대리석으로 제작된 다윗상의 받침대에는 다윗과 관련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자에게 신은 가장 끔찍한 적들에 맞서도록 도움을 베푼다.” 많은 고난과 시련에도 결국엔 선이 악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조각상은 지금까지도 약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강자에게는 권선징악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레인 페리에는 영국 런던 교외에 거주하며 에포크타임스에 미술과 장인 정신에 대한 글을 씁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