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신비로움에 취하다… 한여름 밤의 꿈과 요정들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09월 1일 오전 12:18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요정에 관한 민담은 오래전부터 유래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영국에서 요정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와 예술품이 탄생했다. 당시 요정을 주제로 한 그림은 고유한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과학적 발전, 산업화와 맞물려 사람들은 영적인 영역과 자연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정’이라는 소재는 화려하면서 자연이 가득한 신비로운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탁월했다. 특히, 영국의 가장 유명한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모티브로 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한여름 밤의 꿈’

19세기 영국에서는 ‘한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린 공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해 사랑, 결혼, 질서, 무질서, 현실을 주제로 한 다층적인 고찰을 내포한 작품이기에 많은 계층으로부터 사랑을받았다.

‘한여름 밤의 꿈’(1870), 존 시먼스. 캔버스에 수채화, 36인치x29인치 | 공개 도메인

완성도 높은 초상화를 그려내기로 유명한 영국의 화가 존 시먼스(1823~1876)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헤르미아와 라이샌더, ‘한여름 밤의 꿈’’을 그려냈다. 매우 세밀한 사실주의적 표현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요소들이 병치되어 작품의 완성도와 독창성이 돋보인다. 작품 속에는 원작의 2막 2장에 해당하는 내용인 숲속에서 길을 잃고 도망치는 금지된 연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밤이 되자 두 사람은 주변에 요정과 마법의 생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줄 모르고 잠을 청하기로 한다.

존 시먼스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요정의 세부 모습

작품에는 요정들이 다양하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 작품은 요정이 실존한다고 믿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진다.

시먼스는 이 작품에서 수채화 기법을 능숙히 사용해 어스름하고 푸른 달빛이 비치는 숲의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저마다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하며 반짝이고 있는 요정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묘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밤의 영혼’

빅토리아 시대의 수많은 요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외에 다른 것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존 앳킨슨 그림쇼(1836~1893)는 빛의 효과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로 요정과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 ‘밤의 영혼’은 프리즘을 활용한 색광(色光) 실험을 통해 연구한 무지개 빛깔에 대한 이해를 묘사한 작품이다.

‘밤의 영혼’(1879), 존 앳킨슨 그림쇼. 캔버스에 오일, 32.5인치x48인치 | 공개 도메인

그림 속 요정은 부드럽고 투명한 베일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 요정은 달빛이 비치는 하늘 아래 바닷가 마을 위를 맴돌고 있다. 바다에 닿은 은은한 달빛은 요정을 감싼 베일과 날개에 투영되어 무지갯빛으로 반짝인다. 마치 가을 같은 색채의 흐릿한 마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가볍게 하늘을 날고 있는 요정은 뚜렷한 선으로 그려져 보는 이에게 큰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의 작품 ‘밤에게’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다.

‘밤에게

회색 외투로 그대 몸을 감싸라,
별을 수놓은!
그대 머리칼로 낮의 눈을 멀게 하고,
그녀가 나른해질 때까지 키스하라.
그러곤 도시와 바다와 육지를 떠돌며,
그대 몽환의 지팡이로 모든 것을 매혹하라 –
오라, 오래도록 기다리던 밤이여!’

신비로운 초상화

19세기 영국의 여류화가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인 소피 젠젬브르 앤더슨(1823~1903)은 아이들과 요정을 주제로 한 매력적인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그녀의 작품들은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취하고, 나비, 꽃, 보석이 함께 부드럽게 매달려 당신의 요정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만들어졌다’(19세기), 소피 젠젬브르 앤더슨.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요정을 상징하는 우아한 채도의 녹색을 활용해 그려진 작품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취하고, 나비, 꽃, 보석이 함께 부드럽게 매달려 당신의 요정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만들어졌다’는 요정처럼 꾸민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담았다.

다채롭고 화려한 빛깔이 눈부신 나비로 이뤄진 왕관을 쓰고 요정의 날개를 단 소녀는 풍성하게 물결치는 머릿결과 하얀 피부와 대조되게 상기된 붉은 뺨이 마치 켈트족의 공주처럼 보인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녹색 주머니는 요정의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낭만을 통해 물질주의적 고뇌를 벗어나다

‘한여름의 이브’(1851), 에드워드 로버트 휴즈. 수채화, 45인치x30인치 | 공개 도메인

문명의 발전으로 격동의 시대를 보냈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요정을 통해 낭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했다. 당대 사람들은 창의적이면서 예술적 기교가 돋보이는 매혹적인 요정의 그림들을 보며 현실의 일상에서 벗어나 그림 속의 초자연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세계에 몰입했다. 낭만을 추구했던 빅토리아 사람들의 요정은 지금 우리에게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