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를 완성한 화가, 앵그르의 초상화들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0월 12일 오후 7:25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신고전주의의 끝과 낭만주의의 시작을 장식한 화가, 앵그르
독특한 특징이 돋보이는 초상화로 당대뿐 아니라 현대인까지 사로잡아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0)는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당시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불린 오송빌 백작부인과 알베르 드 브로이 공주의 초상화는 앵그르가 추구한 미학의 극치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1805)의 일부, 자크 루이 다비드. 루브르 박물관 | 공개 도메인

앵그르는 신고전주의 사조를 선도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제자이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예술을 모티브로 해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표현의 명확성,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을 중요시했던 예술 사조기에 앵그르의 작품에서도 선명한 인물 묘사가 눈에 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기존 신고전주의와는 차별된 독특함이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에 충실한 작품을 그려내던 그는,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 그만의 특징을 그림 속 인물에게 부여했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의 윤곽이 더욱 도드라지며, 해부학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다. 또한 배경 묘사에도 심혈을 기울여 인물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이러한 앵그르의 특징은 후기 낭만주의 사조의 밑거름이 되었다.

백작 부인의 매혹적인 초상화

1840년대 초, 앵그르는 오송빌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백작 부인은 당시 작가이자 수채화가, 음악가로 알려진 매력적이며 지적인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앵그르는 그녀를 화폭에 담는 일을 영광으로 받아들여 기꺼이 수락했다.

‘오송빌 백작 부인의 초상화에 대한 연구’(1842), 도미니크 앵그르. 아트리뉴얼센터 | 공개 도메인

초상화는 1842년부터 작업에 착수해, 3년 후 완성되었다. 앵그르는 매우 세밀하고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했기에 한 명의 인물을 담은 초상화임에도 오랜 작업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백작 부인의 얼굴과 머리, 팔, 등을 연필로 스케치하며 초상화를 위해 많은 연구를 선행했다.

‘오송빌 백작 부인의 초상’(1845), 도미니크 앵그르. 뉴욕 프릭 컬렉션 | 공개 도메인

각고의 노력과 고뇌 끝에 완성된 초상화 속 백작 부인은 해부학적으로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왼팔에 비해 오른팔이 훨씬 길게 그려졌고, 전체적인 신체 비율 또한 세로로 길게 묘사되었다. 이는 조화로운 구도 배치와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앵그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예술적 표현이었다.

백작 부인은 호화롭게 꾸며진 거실의 벽난로에 기대어 서 있다. 벽난로 위에는 오페라 안경과 화분, 화려한 꽃병 등이 놓여 있다. 하얀 의자 위에는 노란 외투가 무심하게 걸쳐져 있다. 배경이 된 가구와 사물은 백작 부인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게 묘사되었다. 특히 그림 속 모든 색상은 매끄럽고 정교한 붓질로 완성되었고, 전체적으로 파란색이 많이 쓰였지만, 따뜻한 톤의 빨강과 노란색이 조화를 이뤄 그림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은 당시 비평가들에게서 찬사를 받았으며, 백작 부인은 엄청난 만족감에 이 작품을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했다.

알베르 드 브로이 공주

백작 부인의 오빠이자 당시 프랑스 총리 알베르 드 브로이(19821~1901)는 앵그르에게 자신의 아내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알베르 드 브로이 공주의 초상’(1853), 도미니크 앵그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알베르의 부인 알베르 드 브로이 공주는 여러 권의 기독교 서적을 저술한 작가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앵그르는 그림 속 공주의 목에 걸린 기독교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통해 그녀의 신실함을 표현했다.

백작 부인의 초상화에서 나타났던 앵그르 예술세계의 특징은 공주의 초상화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파란 드레스는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녀가 기대어 서 있는 황금색 의자가 따뜻함을 더해 조화를 이룬다. 금색 자수가 새겨진 목도리, 자개 부채, 장갑, 검은 벨벳 망토 등으로 그녀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

‘알베르 드 브로이 공주의 초상’(1853)의 세부, 도미니크 앵그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그리고 이 그림 또한 한쪽 팔이 더 길게 그려져 있고, 한쪽 어깨가 훨씬 높은 곳에 위치했고, 손가락은 뼈가 없는 듯 묘사되었다. 해부학적으로는 왜곡되었지만, 그림 속 인물은 조화로우며 아름답게 그려졌다.

도자기처럼 고상한 얼굴형을 지닌 브로이 공주는 우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깊은 눈매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그림이 완성되고 몇 년 후 다섯 명의 아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폐결핵을 앓아 사망했다. 그녀를 잃은 슬픔에 남편은 차마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지 못해 그림을 천으로 덮어 보관하였다.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 중 한 명

앵그르는 그 어느 작품보다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고민과 어려움 끝에 앵그르가 완성한 두 개의 초상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그를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 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게 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