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신성한 성유물(聖遺物)과 유물함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0월 19일 오후 11:20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중세 유럽에서는 성유물(聖遺物)을 매우 신성시했다. 유물함도 종교적 존경심을 담아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했다.

성인의 유해나 유품의 원형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옷 조각처럼 성인의 신체에 닿은 것은 모두 성유물로 취급했다. 예수나 그리스도교 성인의 힘과 신성함이 깃든 성유물을 사람과 신을 직접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여겨 귀하게 모신 것이다. 각종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해 성유물 유물함을 만든 것은 그런 기운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반영된 유물함은 세계 각지에 보존되어 있다. 그중 12~ 14세기까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세 작품 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두 점, 런던 대영 박물관에 한 점이 보존되어 있다.

행렬 십자가

‘행렬 십자가’(1150~1175년경)의 뒷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행렬 십자가’는 12세기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제작했다. 금박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십자가는 예술적 가치와 영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녔다.

전통 기독교 예배 행사에 등장하는 ‘행렬 십자가’는 행렬 가운데 자리 잡아 군중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십자가는 평소 제단 위에 매달아 성도들이 보게 함으로써 유물함과 십자가의 기능을 병행했다.

‘행렬 십자가’ 앞면은 왕관을 쓴 승리한 예수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예수의 머리 위에 박힌 암석 수정 조각은 유물함 입구를 가리고 있다.

‘행렬 십자가’ 유물함의 팔 상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십자가 뒷면은 나뭇잎과 덩굴을 아름답게 새겨 균형을 잡고 있다. 가운데는 어린 양이 있고, 십자가 네 개의 팔에는 각각 마가복음의 성인을 상징하는 사자, 요한복음의 독수리, 누가복음의 소, 마태복음의 천사 등 복음 전도자들의 상징을 금으로 섬세하게 새겨넣었다. 상징물 아래에는 ‘거룩한 구세주를 기리며’라는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행렬 십자가 유물함은 그 속에 담긴 성유물의 주인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상징과 비문으로 성유물의 주인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표했다.

팔 모양 유물함

‘팔 유물함’(1230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중세 시대의 대표적 유물함 중 다른 하나는 13세기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팔 유물함’이다.

참나무 받침대 위 금동으로 만든 손과 은으로 만든 팔로 구성된 이 유물함은 순금, 보석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팔 부분에는 기하학적 패턴과 성 베드로, 바울 등 성인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유물함의 제작 시기는 중세 초기로 추정된다. 유물함은 당시 기독교 행사의 행렬 가운데에서 함께 행진하며 성도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며 신앙심을 고취했다. 특히 유물함의 손은 축복을 비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신성한 기운을 증대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팔 유물함에는 성유물을 넣어 보관하는 구멍이 두 개 있다. 원래는 그 입구가 행렬 십자가처럼 보석으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보석과 유물은 모두 소실된 상태이다.

성스러운 가시 유물 펜던트

‘성스러운 가시 유물 펜던트’(1340년경). 금, 가시, 자수정, 에나멜, 수정. 런던 대영 박물관 | 폴 허드슨

‘성스러운 가시 유물 펜던트’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 박물관의 소장품 중 하나이다. 14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이 펜던트는 신장 모양으로 제작되었고, 외관은 카보숑 커트(잘라내지 않고 구형이나 타원체의 산 모양으로 연마하는 보석 커팅 형식)로 연마한 자수정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펜던트는 개인용 유물함이 어떤 형태로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다. 성유물을 안전하면서도 일상에서 가능한 한 신체에 가까이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펜던트 형태로 제작했다. 이 펜던트 내부는 세 개의 금속판이 책처럼 쌓여있다. 각 면은 우물처럼 파내는 기법으로 그림이 새겨져 있고, 에나멜로 그림에 색을 입혀 장식했다.

펜던트의 각 면은 예수의 탄생, 수태고지, 성모와 예수의 즉위, 예수의 강림 등 성경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가운데 면 그림 아래에는 성유물이 숨겨져 있다. 펜던트 속에는 예수가 착용했던 가시 면류관의 가시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시대를 초월한 힘

특별한 디자인과 역사가 돋보이는 이 세 가지 유물함은 현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종교적 맥락에서 사용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보는 이들의 예술적 감상과 영적 사유를 일깨운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