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 칼럼] 입장 바꿔 바라본 우크라이나 사태…푸틴이라면

석산(石山·스산)
2022년 02월 4일 오후 5:54 업데이트: 2022년 02월 4일 오후 6:09

지금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쏠려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이슈는 우크라이나 사태다.

오늘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언급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이성적으로 하느냐, 아니면 감성적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논리에 근거해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심리학은 많은 연구를 통해 인간은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요소가 70%를 차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크라이나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관련이 있다. 중국에는 ‘엉덩이가 머리를 좌우한다(屁股決定腦)는 인터넷 유행어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 처지, 지위 등에 따라 사고하는 범위와 관점, 시각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주류 매체를 통해 얻는 정보로 중요 이슈를 판단한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오늘 우크라이나 사태를 푸틴 입장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15일 미국 측에 러시아-미국 간 안보보장 조약안과 러시아-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간 안전확보 조치에 관한 협정안 등 2개 문서의 초안을 전달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 동맹국에 안전보장을 위한 3가지 요구를 제기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중단하고 ▲나토의 동진(東進·동쪽으로 확대)을 멈추고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 인근 국가들에 공격무기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들의 중심에는 사실 하나의 문제, 혹은 하나의 조직 나토가 있다.

나토 회원국의 총인구는 9억 명이 넘어 러시아 인구의 7배나 되고, 회원국의 총면적은 2000여만km²에 달해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러시아를 훨씬 앞질렀다.

나토의 동진은 단순히 국경을 확장하는 문제, 즉 지리적 개념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상호 불신하고 충돌하는 문제, 즉 지정학적 개념으로만 볼 수도 없다.

나토는 유럽과 북미가 손잡은 세계 최대 군사동맹으로, 대량의 핵무기와 정규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나토의 현재 군사비는 이미 세계 국방비 총합의 70%를 넘어섰다. 나토는 2006년 11월 신속대응군(NRF) 구성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 부대는 육해공군 3대 병종으로 구성된 최정예 특수경량화 부대로, 5일 이내에 세계 어디에나 투입할 수 있고 작전 수행 기간은 30일 정도다.

푸틴은 나토 동진을 군사적 개념으로 인식한다.

나토의 군사력이 최근 몇 년간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어 푸틴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푸틴이 지난달 23일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를 겨냥한 군사 확장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나토가 동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나토는 그 이후 다섯 번이나 (동쪽으로) 확장했다”고 강조했다.

1차로 1999년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2차로 2004년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를, 3차로 2009년 알바니아·크로아티아를, 4차로 2017년 몬테네그를, 5차로 2020년 마케도니아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킨다면 나토가 여섯 번째 동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토 군사력은 모스크바에서 불과 550㎞ 떨어진 곳까지 접근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또는 다른 주권국가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느냐는 영국 기자의 질문에 나토가 계속 확장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는 나토의 어떤 추가적인 동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불분명한 부분이 있는가? 우리가 미국 국경 부근에 미사일을 배치했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미국이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 앞마당까지 왔다. 이것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친밀한 동맹 관계라고 여긴다. 역사적으로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 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강대한 키예프 루스가 오늘날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전신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현대 수도 키예프는 흔히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Mother of Russian Cities)’로 불릴 정도로 루스인(오늘날 러시아인, 베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의 기원이 된 민족) 문명의 요람이었다.

오늘날 친미 노선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배제했는데도 우크라이나인 70% 이상이 일상생활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역사의 연원이 같고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기 때문에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동맹관계가 복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하게 말하면, 러시아는 ‘예부터 러시아 영토’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았고, 푸틴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위협한다고 보지 않는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마이단 혁명(정권교체 혁명)’이 일어나 친서방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푸틴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단일 경제 시스템으로 수십 년, 몇 세기 동안 발전해 왔다. 30년 전 우리의 심도 있는 협력은 EU가 우러러본 롤모델이었다”며 “우리는 태생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경제 동반자이다. 이런 밀접한 관계는 경쟁우위를 강화하고 양국의 잠재력을 증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대(對)우크라이나 외교의 기조를 ‘존중’과 ‘불간섭’으로 설정해 대내외에 천명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임을 자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답은 오직 하나, ‘존중’이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언어와 전통을 존중한다. 우리는 그들의 국가가 자유롭고 안정되고 번영하는 것을 보고 싶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크라이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어떤 국가가 될 것인지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결정할 것이다.”

중공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지금의 대만해협 상황으로 볼 때, 많은 대만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푸틴만큼 진정한 정치적 강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도 정치적 약점은 있다. 러시아 경제가 부진하고, 전제 수단을 쓰고, 반대파를 진압하기 위해 강경 수단을 동원한 것 등이다. 하지만 이 정치적 강자는 중공 지도자보다 훨씬 온화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주로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탈공산화를 이끈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방정교회를 부흥시키는 방식으로 러시아 전통문화를 되살린 것이다. 그는 서구의 극단적 자유주의파와 독점 자본이 국가주권을 침식하는 데 반대했다.

서구의 극좌파는 푸틴을 미래 세계주의의 적으로 본다. 이런 인식은 최근 몇 년간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의 주류 엘리트들의 표현에 반영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음모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 좌파들이 트럼프를 공격하기 위해 씌운 올가미는 ‘러시아 내통 스캔들’이다. 좌파가 제기하는 논리는 러시아가 극악무도하고 푸틴이 최대의 적이기 때문에 푸틴과 친하게 지내는 트럼프 역시 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일련의 공개연설에서 나토가 동진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이를 계속 어겼다고 강조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제기한 안보보장 요구에 대해 1월 23일 “나토는 규모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는 1990년대에 나토가 동진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비록 서면화하지는 않았지만 국가 간의 약속을 어겼다는 점에서 나토의 약속 불이행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남중국해를 군사화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긴 것과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왜 나토의 동진을 두려워할까? 필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근대에 형성된 러시아 민족의 의식 속에 ‘유럽이 가장 큰 위협이다’, ‘유럽인이 러시아인을 괴롭힌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 유럽인들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사람들을 잡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팔았다. 슬라브라는 이름은 라틴어 ‘노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바이킹족이 부상하자 슬라브인은 1차 피해집단이 됐고, 이후 폴란드, 프랑스, 독일인 등이 잇달아 러시아를 침공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유럽에 대한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나토 동맹국들의 의도적인 적의(敵意)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파병을 검토한다든가, 미국이 최근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원조하는 것 등이 러시아인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여기서 크림반도에 대해 약간 언급하겠다. 크림반도 위기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의 한 주(州)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4년 2월 19일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 주도하에 소련 최고평의회 상임위원회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페레야슬라프 조약’ 체결 30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관할로 편입시킨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즉, 크림반도는 1954년 흐루쇼프가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양도한 것이다.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아내에게 준 선물을 이혼한 후 아내가 남편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흐루쇼프가 사실상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10㎞ 떨어진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우크라이나로 이사해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양도할 때 이러한 개인적 정실(情實)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화돼 있고, 지금도 크림반도 주민의 90% 가까이가 러시아인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친유럽 정부가 들어서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가져갔다.

푸틴은 러시아가 서구의 극좌파 사조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적대시한다고 본다. 이 점은 나토가 끊임없이 동진하는 데서 증명된다. 문제는 서방의 압력이 커질수록 러시아는 중공과 가까워져 어느 정도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공을 집중 공략하는 트럼프의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게 분명하다.

푸틴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벌이는 행동은 정당하다. 비록 크림반도를 병합했지만 거기에는 명분이 있고, 또 미국과 나토가 국가 간의 약속을 어기는 데 대응해 무력을 앞세워 시위하는 것도 러시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노력이다.

푸틴이 나토의 동진을 저지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구소련 체제에서 이미 한 차례 경험하고 폐기한 극좌파 사조를 비이성적으로 받아들인 서구 국가들이 이제 이를 거꾸로 우크라이나로, 궁극적으로는 러시아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에 러시아가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푸틴 입장에서는 정당한 대응이다.

물론 염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눈앞의 풀밭일 것이고, 호랑이가 노리는 것은 전체 강호(江湖)일 것이다. 서로 다른 높이에 서면 보이는 시야가 다르기 마련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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