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의 ‘테이블과 메뉴 이론’에 발끈한 中 관영매체

박숙자
2024년 02월 26일 오후 3:31 업데이트: 2024년 02월 26일 오후 3:31

“만약 당신이 국제 시스템 안의 테이블에 있지 않으면 메뉴에 오르게 될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17일 뮌헨안보회의에서 한 이 발언에 중국공산당 기관지 신화통신과 글로벌타임스가 발끈했다.

지난 17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사회자가 블링컨 장관에게 “미·중의 긴장이 더 큰 분열로 이어지고 있고, 미·중은 동맹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물었다.

답변에 나선 블링컨 장관은 먼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줄곧 동맹, 파트너십, 다자 시스템에 투자하고 또 투자해 왔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고 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도전 중 그 어느 것도 우리 혼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발적인 동맹, 자발적인 파트너십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는 것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어 그는 미중이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런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X, Y, Z 국가에 ‘당신은 (우리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명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것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의) 선택은 아주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자발적으로 미국과 밀착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 시스템 안의 테이블에 있지 않으면 메뉴에 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을 두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신화통신 영문판과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강하게 반발하며, 블링컨의 발언이 “칼과 도마가 되지 않으면 도마 위의 생선과 고기가 된다”는 뜻이라며 비판 논평을 냈다.

신화통신은 지난 21일 ‘워싱턴의 무자비한 제로섬 식욕이 전 세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논평에서 “미국 최고 외교관의 말은 제로섬 사고”라며 “그의 발언은 미국 정치와 외교의 기본 논리, 즉 이성, 평화, 협력보다 침략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정글의 법칙’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중국 인민일보 계열 영문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국제 체제의 테이블에 있지 않으면 메뉴에 오르게 된다’는 말은 중국어로 번역하면 ‘칼과 도마가 되지 않으면 도마 위의 생선과 고기가 된다’는 뜻과 비슷하다”며 “초강대국의 외교관인 블링컨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세계관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블링컨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2022년 1월 24일의 포럼에서도 동일한 문구를 사용해 미·중 관계를 설명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메뉴’가 아닌 ‘테이블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재미 시사평론가인 장톈량(章天亮) 미국 페이톈(飛天)대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테이블에 있다’는 것과 ‘메뉴에 있다’는 것은 어느 한 진영에 합류함으로써 초래되는 다른 결과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즉 자유연맹 편에 있는 사람은 자유와 번영을 공유할 것이고, 중국공산당 편에 있는 사람은 중국공산당의 식탁에 올려져 중국공산당에 먹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장 교수는 블링컨 장관이 핵심적인 문제, 즉 자유사회의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공산당의 세계 질서 재편에 맞서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대만국제법학회 린옌후이(林廷輝) 부의장은 대만 TV프로그램 ‘관건시각(關鍵時刻)’에 출연해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환상이 깨졌음을 블링컨의 발언을 통해 확인했다”고 분석했다.

중국공산당은 미국, 특히 민주당과는 국제 협력이 가능하고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블링컨의 발언을 통해 미국이 더는 중국공산당 정권과 협력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린 부의장은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 중국공산당 관영 언론이 일제히 발끈한 것도 미중 간 협력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가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공급망과 기술 체인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면 중국 경제는 위기를 맞게 되고, 이는 중국공산 정권의 정치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