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속 7가지 미덕과 악덕…伊 스크로베니 예배당

제임스 세일
2024년 01월 8일 오전 8:42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7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 파도바에 위치한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이탈리아 예술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다. 길이 20.88m, 너비 8.41m의 이 작은 예배당은 내부 전체를 장식한 벽화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오토의 영향력

예배당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이탈리아 예술가 지오토(1267~133)다. 그의 이름은 한동안 ‘화가’라는 말의 동의어로 쓰였다. 그로 인해 미술의 한 장르인 회화는 700여 년간 시각 예술의 대표이자 주류가 됐다.

지오토 시대 이전 기독교 미술은 비잔틴 양식에 입각한 성상화(聖像画)가 주를 이뤘다. 정적인 묘사에 집중한 이 양식은 예수의 인간성보다는 신성한 본성을 강조했다. 지오토는 기존 예술계를 타파하고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며 자연의 관찰에 근거한 작품을 그렸다.

인간을 묘사한 예술가

‘황금문에서의 만남’(1303~1306), 지오토. 프레스코화 | joergens.mi/CC BY-SA 3.0 DEED

예배당의 벽화 중 하나인 ‘황금문에서의 만남’에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 요아킴에게 달려가 입 맞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오토는 예수의 고난이나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성모처럼 신학적 순간이 아닌, 인간의 사랑을 묘사했다.

지오토는 인간을 예술에 도입해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담았다. 이는 단순히 예술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신을 위한 예술을 구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후의 심판’, 지오토. 프레스코화,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 | Kiev.Victor/Shutterstock
‘최후의 심판’과 성부 여호와의 세부 | 할타 정의/CC BY-SA 4.0 DEED

예배당의 서쪽과 동쪽 끝에는 각각 천사들에 둘러싸인 성부 여호와와 최후의 심판 속 예수가 거울을 통해 마주 보듯 그려져 있다. 성부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젊은이로 묘사됐다. 이는 요한복음 14:9 ‘나를 본 이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는 구절과 일치한다. 이처럼 지오토는 성경에 입각한 깊이 있는 신학적 이해를 그림에 표현했다.

지오토는 7가지 미덕과 7가지 악덕을 벽화 속 그림으로 묘사해 자신의 신실함을 승화시켰다.

7가지 미덕과 7가지 악덕

지오토의 7대 악덕과 미덕은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영향을 받아 정의됐다. 14개의 초상화로 구성된 이 작품의 배치는 특별하다. 7개의 악덕은 각각 그 해결법인 미덕과 마주하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과 배치는 예배당에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도덕적이며 영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7가지 미덕과 악덕은 수평, 수직으로 작용한다. 어리석음은 신중함으로 상쇄된다. 신중하지 못하면 불성실함으로 이어지고, 불성실은 분노로 이어진다. 또한 타인을 시기하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된다.

어리석음과 신중함

라틴어로 어리석음을 뜻하는 단어는 ‘스툴리타리아(stultitia)’다. 이는 단순히 어리석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우둔함, 비이성적임을 뜻하기도 한다.

지오토의 7가지 미덕과 악덕에 나오는 어리석음(왼쪽)과 신중함(오른쪽) | 공개 도메인

그림의 왼쪽은 ‘어리석음’의 초상화다. 그림 속 남성은 뚱뚱하고 감각적 쾌락에 중독돼 있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세로 서서 깃털로 장식된 우스꽝스러운 왕관을 쓰고 있다. 허리띠에 달린 방울은 소리를 내 주의를 끈다. 입을 벌린 표정은 무지를 나타내고, 동물처럼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손에 들린 곤봉은 덜 다듬어진 형태다. 이는 기교 없는 단순한 무력을 의미한다.

오른쪽 그림은 어리석음을 상쇄하는 신중함을 뜻한다. 신중함은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는 미덕이다. 그림 속에는 한 여성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다. 우아하게 정돈된 책상은 질서와 목적을 암시한다.

그녀는 오른손에는 과학을 상징하는 나침반을, 왼손에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들고 있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는 고전적 교훈을 따름을 의미한다.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남성과 달리 그녀는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다. 이는 경청하는 자세의 표본으로, ‘어리석음’의 우둔하고 비이성적인 태도의 해결법을 상징한다.

악덕의 해결법

7가지 악덕 : (오른쪽부터) 절망, 시기, 불신, 불의, 분노, 불성실, 어리석음 | 공개 도메인
7가지 미덕 : (오른쪽부터) 희망, 신에 대한 사랑, 믿음, 정의, 절제, 인내, 신중함 | 공개 도메인

지오토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삶의 나침반을 구현했다. 이 외 7가지 악덕과 미덕은 우리 삶을 성찰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르네상스 예술의 꽃봉오리 역할을 한 지오토는 후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전하고 있다.

제임스 세일(James Sale)dms)은 5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한 작가이다. 2017년 고전시인협회 연례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최근에 시집과 ‘최고 성과 팀을 위한 동기 부여 매핑’(Routledge, 2021)을 출판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