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추모 열기 고조…중국 당국 제2 톈안먼 사건 번질까 노심초사

최창근
2023년 10월 31일 오후 12:12 업데이트: 2023년 10월 31일 오후 12:12

리커창(李克强) 전 국무원 총리의 급사 후 각지에서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사망 직후 8시간 동안 공식 발표를 미뤄 의구심을 낳았던 중국 정부는 공식 장례식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리커창 전 총리의 죽음이 반(反)시진핑, 반정부 시위로 번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중국 당국 발표와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을 비롯한 관영 매체들 보도를 종합하면, 리커창 전 총리의 공식 사망 시간은 지난 10월 27일 0시 10분이다. 공식 발표에 의하면 상하이에 머물던 리커창은 모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소생하지 못했고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관영 통신 신화사 등은 같은 날 오전 8시 사망 소식을 단신으로 전했다. 사망 확인 시점으로부터 8시간이 경과한 후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등은 10월 27일 오후 6시가 돼서야 공식적으로 리커창 사망을 확인했다. 다만 장례식 일정은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사망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사례와 대비된다.

지난해 11월 30일 향년 96세로 장쩌민이 사망하자 중국 공산당 당국은 당일 ‘제1호 공고’를 통해 국가 애도 기간 시작을 알렸다. 이틀 후엔 ‘제2호 공고’를 통해 국장(國葬) 격인 추도대회 일정도 발표했다.

이를 두고서 중국 당국이 시진핑(習近平) 현 주석 체제에 대한 반발로 ‘제2의 저우언라이(周恩來), 후야오방(胡耀邦) 사망 이후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름 아닌 톈안먼(天安門) 사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무원 총리’ 자리를 지켰던 저우언라이가 1976년 1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전국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일었고 저우언라이를 적대시하던 장칭(江青) 등 문화대혁명 4인방은 저우언라이를 폄훼하며 추모 분위기도 비판했다. 그들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저우언라이 추모를 공공연하게 방해하기도 했다.

그해 청명절 기간 베이징 시민들은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 광장 인민영웅 기념비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화환을 기념비에 내걸어 저우언라이를 추모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이 기념비에 바쳐진 화환을 전부 철거했다.

분노한 인민들은 4월 5일, 물리력 행사에 나섰다. 이는 반4인방 운동으로 번졌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을 ‘반혁명세력’으로 간주하고 공안을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해산시켰다. 이는 중국 역사에 제1차 톈안먼 사건으로 기록됐다. 결과적으로 문화대혁명 4인방은 실각했다.

1989년 4월, 후아요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세상을 떠났다. 중국 공산당 내 개혁파의 기수로서 친근하고 소탈한 풍모로 대중적 인기가 높던 후야오방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소극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덩샤오핑의 눈 밖에 나 실각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잃고 공개 자아비판까지 해야 했다.

실각 후 은거하던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중국 교육 문제에 관한 발언을 마친 후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후야오방 사망 후 학생, 시민들의 추모 열기가 이어졌고 이는 제2차 톈안먼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엘리트 출신으로 차기 국가 주석으로 유력시되었던 리커창은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 탓에 국무원 총리로서 입지는 줄어들었다. 다만 내치(內治)를 책임진 총리로서 민생,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고 권력을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하여 소탈한 행보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사망 후 중국인은 정부와 달리 적극적인 애도에 나서고 있다. 리커창의 옛 거주지인 안후이성 허페이시 훙싱루 80호 안후이역사문화연구원 앞에는 추모객이 몰려 집 둘레에 수백 미터에 달하는 조화가 놓였다.

‘창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 등 행간에 시진핑을 향한 쓴소리가 담긴 그의 발언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런 형편 속에서 중국 공산당은 리커창 총리의 장례식이 또 다른 톈안먼 사건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부가 반(反)시진핑 시위를 우려해 리커창 전 총리 사망 일주일째인 11월 3일 조용한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