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친중 전 총통 “시진핑 믿어야” 발언, 선거 막판 이슈로 부각

한동훈
2024년 01월 11일 오후 4:10 업데이트: 2024년 01월 11일 오후 5:42

대만 총통 선거가 13일로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친중 인사인 마잉주 전 총통의 친(親)시진핑 발언이 막판 대형 이슈로 떠올랐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입법위원(국회의원 격) 선거에 나선 야당 국민당 후보들은 행여 악재가 될까 봐 마 전 총통과 선 긋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민진당 지지자와 마 전 총통 비판론자들은 “마 전 총통이 중국 공산당에 협력해 대만의 선거를 위협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 전 총통은 지난 8일 독일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관한 한 그(시진핑)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 전 총통은 “통일은 우리 헌법에 명시돼 있고 대만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대만 국민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92합의’를 거듭 강조하며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의 양안 정책은 대부분 자신의 접근법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92합의는 국민당 정부가 집권하던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공산주의 중국)과 중화민국(자유 대만) 사이에 체결됐다고 알려진 양안 관계 원칙이다. 양안은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는 전제 아래 통일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를 두고 대만 내부에서는 92합의를 부인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진당에서는 합의 당시 국민당이 대만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마 전 총통은 현재 대만 대선 및 총선에서 쟁점인 전쟁 위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군사적 도발에 대비하는 대만의 군사력 강화 노력에 대해 “대만이 아무리 방어한다고 해도 본토와의 전쟁에서는 결코 방어할 수 없고 승리할 수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들(중국 공산당)은 우리보다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해 긴장을 완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도이체벨레 기자는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민진당이 승리한 것은 대만인들이 국민당의 양안 정책을 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질문했다. 대만 청년들이 마잉주 정부 시절, 양안 정책에 반대해 벌인 시위도 언급했다.

그러자 마 전 총통은 “만약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본토 행동에 대비해야 하며, 우리는 이미 그들이 민진당 후보로 당선될 경우 어떤 종류의 문제를 일으킬지 경고했다”고 답했다.

이번 선거에서 친(親)중국 공산당 후보가 승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을 신뢰하고 양안 통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 전 총통의 발언은 그의 바람과는 반대 기류를 촉발하고 있다.

국민당 대선 후보인 허우유이는 “내 생각은 마잉주와는 다르다”며 “나는 항상 억지력, 국방력 강화, 자위력 강화, 대화와 교류를 포함하는 3D 전략을 주장해 왔으며 특히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대해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허우유이 후보가 손절에 나선 것은 대만의 민심이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팽배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앞에 압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홍콩 사태를 목격한 대만인들은 경제적 이익에서 타격을 입더라도 홍콩처럼 자유를 빼앗기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허우유이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양안 관계에서 대만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제도를 옹호하고 ‘일국양제’에 반대하며 대만 국민의 삶의 방식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당 부총통 후보인 차오사오강도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그는 “마잉주 전 총통의 발언은 허우유이 후보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며 “양안 간 논의는 허우 후보의 발언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 논의에 대해서도 “아직 먼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대만 온라인 매체인 ‘샹바오(上報)’의 칼럼리스트 리하오중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마잉주 전 총통의 본모습이 드러났고, 민주주의와 자유가 그의 가치와 신념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고 논평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마 전 총통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소식을 전한 뉴스에는 “마잉주는 공산당이 대만에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 “마잉주의 선거운동에 웃음밖에 안 난다”는 댓글이 달렸다.

국민당 지지 성향의 한 이용자는 “마잉주 전 총통의 발차기가 유권자들을 민진당에 몰아주고 있다”고 분개했다.

“시진핑을 믿는다면 마잉주의 온 가족을 베이징으로 이주시키자”는 댓글도 있었다.

민진당 대선 후보인 라이칭더 현 부총통은 10일 한 공개석상에서 “마잉주 전 총통은 ‘시진핑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양안 관계가 ’92합의'(하나의 중국 인정)에 기초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계속 말했다”고 거듭 확인했다.

라이 후보는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대만을 믿느냐’와 ‘시진핑을 믿느냐’ 사이의 선택이자 ‘하나의 중국을 수용하는 것’과 ‘민주주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사이의 선택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라이 후보와 허 후보는 오차범위 이내에서 라이 후보가 약간 앞선 가운데 격전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