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란 무엇인가?…현대사회의 기사도는 어디에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3년 11월 10일 오후 5:25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19

자기 자신을 확고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여성들도 기사도적 면모가 있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8년 뉴스 분석 매체 ‘더 컨버세이션’ 기사)

현대에 와서 기사도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교묘하게 진행되는 ‘온정적 성차별’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기사도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현상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온정적 성차별’이라는 용어를 처음 탄생시킨 이들은 여성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과 그에 따른 행동이 여성을 무능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묘사하고, 결과적으로 성 평등을 훼손한다고 믿는다.

비토레 카르파초 작 ‘기사의 초상’. 1510. 캔버스에 유채.|공개 도메인

신념의 체계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 확립된 행동 규범인 기사도는 원래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그 이상을 의미했다. 전투 예절을 비롯, 바람직한 기사로서 지켜야 하는 정신과 예의 등을 기사도라 했다. 기독교적인 윤리를 바탕으로 용기, 충성, 성실, 명예, 예의, 겸허, 사랑, 관용, 경건, 약자보호 등의 덕목을 이상으로 삼았다.

무릇 기사라면 고결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자신의 군주에게는 하나님을 따르듯 무한한 충성심을 가져야 했다.

기사들에게 기대되는 중요한 덕목 중 또 다른 한 가지로는 여성을 존중하며 보호하는 것이었다. 기사도 규범이 변절되기 이전의 개념에 따르면,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여서가 아니었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육체적으로 약하며 생명의 생성자이기 때문이었다. 또 근본적으로는 이 또한 신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덕목이었다. 하나님이 여성인 마리아를 통해 예수를 세상에 내려보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기사들은 여성을 존중해야 했다. 중세 유럽 궁정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기사도적 사랑(로맨스)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런 만큼 각자 미덕을 추구하도록 서로를 격려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작 ’30인의 결투 전 기도하는 기사들’. 1862년.|공개 도메인

영국의 시인 엘프리드 테니슨이 지은 ‘왕의 목가’에는 진정한 기사도 정신을 표현한 문장들이 나온다.

나는 알았다
하녀를 향한 처녀의 열정보다
하늘 아래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남자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높은 생각, 목적이 있는 말들
예의, 명성을 향한 열망
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자를 만드는 모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하고 고귀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성이라면 누구나 이 문장들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 ‘무자비한 미녀’. 1893년. 캔버스에 유채.|공개 도메인

14세기 영국에서 쓰인 중세 영국문학의 걸작, 작자 미상의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기사도에 대해 더욱 깊이 다룬다.

연회가 열린 성에 녹색 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찾아와 자신과 목 자르기 내기를 할 용감한 기사가 없는지 묻자, 가웨인 경이 나선다. 가웨인 경은 녹색 기사의 목을 쳤지만, 그는 잘린 자신의 목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지면서 내년에 가웨인 경의 목을 칠 것이니 자신이 살고 있는 녹색 교회로 오라고 예고한다. 가웨인 경은 이듬해에 도망치거나 하지 않고, 당당히 녹색 교회로 찾아간다. 가는 길에 숲속에 있던 성에 들러 성주에게 환대를 받는데 성주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지만 가웨인은 응하지 않는다. 대신 예의로 키스는 받는다.

현대인이 ‘기사도’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인물인 가웨인 경의 기사도 정신은 자제력, 친절함, 자애와 같은 미덕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이뤄진다. 이는 단지 여성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행동 이상에 관한 것이다. 물론 진정한 기사라면 이렇게 단순하지만 중요한 행동도 결코 간과하지 않을 테다.

에드먼드 레이턴 작 ‘행운을 빌어요’. 1900년. 캔버스에 유채.|공개 도메인

나무에서 잘려나간 나뭇가지

오늘날 이런 질문이 종종 제기된다.

“기사도는 죽었는가?” “현대 사회에서 기사도가 의미가 있는가?”

기사도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넘어서는 완전한 행동 규범이다. 보다 더 큰 세계 안의 한 조각이다.

기사도 정신은 중세 유럽에서 발현됐다. 자칫 옛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1세기 현재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째서 기사도적인 남성에게 매력을 느낄까? 남성과 여성은 사회 내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이 보호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남성 역시 자신들이 보호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인 이해이자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사회와 인간 본성에 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라는 나무에서 잘려 나간 기사도는 시들어가는 나뭇가지가 됐다. 그리고 우리 문화에서 안타깝게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