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자유주의로 한국 사회 당면 문제 해결해야”

창립 17주년 맞이한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윤정
2023년 09월 23일 오후 12:38 업데이트: 2023년 09월 23일 오후 4:35

재단법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 창립기념 행사가 지난 9월 21일 개최됐다. 창립 17돌을 맞이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공동체자유주의’를 이념으로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한 연구·교육활동을 수행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중도보수 싱크탱크다. 2006년 고(故)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설립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2014년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손숙미 이사(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이용환 이사(전 사무총장), 박은영 기획홍보위원회 위원장(제이피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이사), 조영기 사무총장 등 재단 임원진을 비롯해 이각범 전 이사(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손동현 전 이사(전 우송대학교 부총장), 정재영 전 이사(전 성균관대학교 부총장), 차광은 전 이사(전 차의과학대학교 부총장), 손용우 전 사무국장(선진통일건국연합 사무총장) 등 한반도선진화재단 전·현직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박재완 이사장은 “17년 전 한반도선진화재단은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대한민국을 부민안국(富民安國), 즉 개개인의 삶이 윤택하고 편안한 나라로 만들자는 소명 의식으로 닻을 올렸다”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어 “전문가 네트워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뺄셈이 아닌 덧셈, 나아가 곱셈이 되는 숙의와 공론의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 검증을 수용하고, 반론을 경청하며, 합의를 모색하는 ‘협치’의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한선재단 제공

창립기념 행사에 이어진 세미나에서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창립 이념인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제로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공동체자유주의의 복원확산을 위한 자유 유파의 과제’를 주제로 첫 발제에 나선 홍성기 아주대학교 명예교수는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이 오·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홍성기 교수는 고대 그리스에서 왕정-귀족정-과두정의 여정을 거치며 발전해 온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를 거론했다. 그는 “현대 민주주의는 대중사회의 출현과 함께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전체주의로서 양자의 대립 관계는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이어 “민주주의가 전제주의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민주주의가 제창됐지만, 전체주의의 바이러스는 외형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시민적 자유에 밀착, 사회에 집단적 열광, 증오, 광기를 자유의 이름으로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기 교수는 “아직 현실에서 공동체자유주의가 온전하게 실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 그 현실이 공동체자유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자유주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신도철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공동체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탄생하고 성장하게 된 배경을 짚었다. 그는 “제1기 태동기는 1996년경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개혁사상 내지 국정 운영 철학으로 공동체자유주의를 주창했으며, 2006년경 시작된 제2기 발전기에는 구진보와 구보수 간의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는 국가발전·국민통합의 사상 내지 전략으로서 공동체자유주의를 제시했다. 2015년경부터 시작될 제3기 도약기에는 선진통일과 국가 개조의 방책을 공동체자유주의에서 찾을 수 있기를 고 박세일 교수는 기대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산혁명의 꿈을 버리지 못한 한국 진보좌파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이들이 한국사회에 거대한 어둠을 드리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도철 교수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 있어야 공동체를 살리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표 진보 성향 사회학자 김호기 연세대 명예교수는 ‘공동체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적 평가와 전망’을 주제 발표했다. 그는 “한국 보수의 고질적 문제는 철학 부재, 산업화 이후 국가 비전과 발전전략 부재였다”고 지적하며 “고 박세일 교수가 주창한 선진화론은 위기에 처한 보수를 구원한 담론이었다”고 평가했다. 공동체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훼손된 공동체 윤리를 복원하되, 전통적 공동체주의에 내재된 가부장주의·집단주의·권위주의를 복원할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공동체자유주의는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철학이자 사회철학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어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생산적 공존이 한국 사회에 요구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호기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평소 우리 사회과학자들 가운데 박세일 교수가 가장 문제적 인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의 선진화 담론은 2000년대 중반 위기에 빠진 보수 세력을 구출했다. 이명박 정부의 ‘선진일류국가론’도 선진화 담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이 점에서 박세일 교수는 프랑스 문학사회학자 루시앙 골드만이 말한 바 있는 한국 보수 세력의 ‘숨은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박세일 교수는 아카데미즘(academism)과 정책연구(policy studies)를 본격적으로 결합시킨 우리 사회 최고의 ‘아카폴리(Acapoli)’ 사회과학자다. 젊은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은 박 교수와 대결하고 또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는 “고 박세일 교수는 국가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은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공동체자유주의에 대해 “국가의 운영 원리와 국가 정책의 결정 원리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신중섭 교수는 “공동체자유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 확대를 기본으로 하면서 공동체의 건강·발전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공동체주의로 자유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공동체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자신이 초래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동체주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만 과도하게 주장하면 사회 경제적 격차와 대립의 증대, 인간 소외와 개인의 파편화, 공동체연대의 약화, 역사 단절과 전통 붕괴, 생태 파괴와 생명 훼손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에 사회공동체·역사공동체·자연공동체가 파괴되고 결국 자유주의의 지속 자체가 어렵게 되는 상황이 온다. 따라서 국가 발전과 국민 통합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를 중시하는 공동체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공동체자유주의와 경제정책(강성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의장) ▲가족의 가치 실현을 위한 공동체자유주의(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공동체자유주의의 복원확산을 위한 제언(이승길 한반도선진화재단 고용노동정책연구회 회장) ▲다시 뛰는 한국사회, 왜 지금 공동체자유주의가 중요한가?(양정호 한반도선진화재단 미래교육혁신위원회 회장) ▲공동체자유주의와 사회적 자본(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 발표가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복합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위기에 대응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이념으로서 공동체자유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전·현직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한선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