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남대문署 경찰관 10명 입건…中 대사관 ‘입김’ 정황

한동훈
2024년 04월 18일 오후 5:58 업데이트: 2024년 04월 19일 오전 8:05

中 대사관 앞 집회금지 관련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
경찰 “대사관 측이 집회 금지 요청”…사실 여부 판가름

주한 중국 대사관 앞 집회 허용 여부를 놓고 관할 경찰서 경찰관 10명이 형사 입건됐다. 중국 대사관이 해당 경찰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위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18일 보수성향 매체 ‘펜앤드마이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최근 전 서울남대문경찰서장 A씨 등 경찰관 10명에 대한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同)행사’ 혐의 사건을 형사9부(부장 박성민)에 배당했다.

전 남대문서장 등 10명의 경찰관들은 시민 B씨가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이 부당하다며 지난해 말 제기한 금지통고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허위사실이 적힌 답변서를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답변서는 경찰이 B씨의 집회신고에 금지통고 처분한 근거 자료로 제출됐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가 남대문서장을 면담하면서 대사관 시설보호 강화를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B씨는 이 답변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며 A씨 등 남대문서장과 관계 경찰관 10명을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에 따르면 남대문서에 중국 대사관 관계자의 방문기록이나 남대문서장과의 면담기록이 남아있어야 했지만 정보공개청구로 확인한 결과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

경찰서 청사출입보안지침에 따르면 방문객은 누구나 사전신청을 하거나, 방문당일 방문기록을 남기고 방문증을 교부받는 것이 원칙이다.

B씨는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의 방문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의 서울남대문경찰서 방문은 실제로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찰이 승소할 목적으로 자신들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의 정당성을 법원에 주장하고자 허위 사실이 기재된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허위사실을 기재한 것이 아니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의 방문이 사실이라면 한국 경찰에 비공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사관 측이 이를 은폐하려 경찰에 기록을 남기지 말거나 삭제하도록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일본, 두 대사관 앞 집회에 관한 형평성

매체의 이전 보도를 종합하면, B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정문 맞은편 인도에서 ‘공자학원 완전 철수 촉구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관할 남대문서에 신고했으나 3건의 집회 신고가 모두 금지됐다.

B씨는 중국 대사관 정문 경계에서 10m 떨어진 맞은 편 인도에서의 집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시법은 제11조에서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 경계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예외 규정했다. 외교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다.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할 우려가 없는 경우 ▲외교기관 업무가 없는 휴일인 경우에 해당한다.

B씨는 자신이 신고한 ‘공자학원 추방 촉구 집회’는 예외 규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그가 신고한 참가인원은 9명이다. ‘대규모 집회 확산 우려’가 없다. 또한 집회신고한 3건 중 평일인 수요일을 제외한 2건은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 개최를 신고했다. 모두 ‘외교기관 업무가 없는 휴일’에 속한다.

남대문서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법원에 제출된 답변서에 따르면 중국 대사관이 잦은 집회로 업무방해가 심각하다는 이유를 댔다고 했다.

하지만 펜앤드마이크가 집계한 지난 3년간 중국 대사관 인근에 신고된 집회 중 경찰이 반중 성향으로 파악한 집회 신고는 5건이었고 실제 개최된 집회는 1건에 그쳤다. ‘잦은 집회로 업무방해가 심각하다’는 대사관 측 주장과는 차이가 뚜렷하다.

B씨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경찰이 중국 대사관 인근 집회는 극구 차단하면서 일본 대사관 인근 집회는 ‘집시법’ 위반이 명백한 데도 보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정의기억연대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개최한 ‘수요시위’다.

‘수요시위’는 반일감정이 고조되거나 일본과 관련한 추모일이 겹치면 참가인원이 천명 단위로 불어난다. 지난 2019년 8월에는 주최 측 추산 2만명이 모여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하기도 했다. 외교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때때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외교기관이 업무를 보는 평일에 이뤄진다. ‘집시법’ 11조의 예외 규정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은 수요시위는 특수하다는 입장이다. 남대문서는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참고서면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개최된 점, 경찰 관리하에 안정적으로 진행된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도 형평성 논란을 의식한 듯 일본 대사관에 한정해 수요시위 반대 단체의 수요일 집회 개최도 보장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 대사관 앞은 약 3년 전부터 서로 집회장소를 선점하려는 단체들의 각축장이 돼 왔다.

B씨는 고소장에서 경찰관 처벌보다는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결사·표현의 자유 실현 쪽에 무게를 뒀다.

그는 “집회는 신고 대상일 뿐 검열이나 허가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중국 대사관 앞에서 공자학원 추방 촉구 시위를 개최하려는 목적은 대사관 직원들을 위협하거나 외교업무를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자학원의 위해성을 대중에게 잘 알리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집회를 대사관 근무일이 아닌 토·일요일에 신고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거점 혹은 친중인사 양성기관이라는 게 미국 국무부 등의 판단이다. 해외에서는 계속 퇴출되고 있으나 한국은 강남에 설치된 세계 1호점을 비롯해 23곳이 운영 중이다.

중국 대사관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매주 월~금요일 근무하며 토·일요일과 한국의 공휴일, 중국의 공휴일에 쉰다고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