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드리는 날’ 추수감사절의 전통…그 과거와 현재

제프 미니크 (Jeff Minick)
2023년 11월 16일 오후 6:44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10:39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그 해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1년 동안의 수확물과 추수에 대해 신께 감사를 드리는’ 날로 하자는 의미에서 국경일로 제정했다. 하지만 날짜가 변경되거나 폐지되거나 하는 등 변화가 잇따랐다.

그러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 날만큼은 감사하며 싸움을 그만두자’는 뜻에서 이를 부활시켰고 이러한 전통은 이후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1941년 미국 의회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국경일로 공식 결정, 그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현재까지 내려왔다.

오늘날 추수감사절 역시 예전처럼 음식, 가족, 감사함을 기념하는 날이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과거 추수감사절의 면면을 소개한다.

좋은 시절

20세기 초는 미국이 번영하던 시절이었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미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1900년, 미국 뉴욕 한 호텔의 추수감사절 만찬 식탁에는 다양한 채소와 감자 요리, 신선한 버섯 크림을 얹은 토스트부터 굴, 삶은 연어, 강낭콩을 곁들인 양고기, 메추라기, 칠면조, 최상급 소갈비, 그리고 각종 디저트와 사탕, 치즈, 견과류, 럼, 커피 등이 올라왔다.

평범한 미국 가정에서는 칠면조 고기와 함께 으깬 감자, 크랜베리 소스, 호박 파이를 즐겼다. 이러한 음식들은 오늘날 추수감사절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요리가 됐다.

미국 제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02년 추수감사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백악관은 증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추수감사절에도 목수들은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를 알게 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목수들에게 직접 “도구를 내려놓고 백악관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을 즐기라”고 말했다. 추수감사절은 그런 날이었다.

힘든 시절

그렇다면 1929년 닥친 대공황 시절의 추수감사절은 어땠을까. 작가 커스티 빙햄에 따르면, 1933년 칠면조는 1파운드당 0.23달러(한화 약 299원)였다. 당시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약 0.53달러(약 689원)였다. 6인 가족 기준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비용은 약 5.5달러(약 7154원)로 10시간 넘게 일해야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에 많은 가족이 추수감사절 만찬 음식이 아닌 저렴한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노계를 천천히 익히면 고기가 부드럽게 변했다. 굴 스튜는 고구마 같은 반찬으로 대체됐다. 완두콩, 녹두 등의 저렴한 채소가 추수감사절 음식에 추가됐다. 비싼 호박 파이 대신 우유로 만드는 크림 파이가 상에 올랐다.

메뉴는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을 기념했다.

전쟁 기간

제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다. 남성들이 군대에 파병되면서 식탁 앞에 빈 의자가 놓인 가정이 늘었다. 식량 부족으로 몇몇 식품을 구할 수 없게 됐다. 아울러 기름 부족에도 시달리면서 할머니댁 등 다른 가족을 방문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명절을 빛내기 위해 노력했다. 통조림 채소를 가져다 요리를 했다. 근처에 군 기지가 있는 가족들은 군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추수감사절 식사를 대접했다.

‘가장 미국적인 화가’라고 불리는 노먼 록웰의 작품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는 2차 세계대전 시기 발표됐다. 4500여점에 달하는 록웰의 작품 중에서도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는 특히 유명하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식탁에 둘러앉은 이상적인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잘 담아냈을 뿐 아니라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에도 공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당 그림은 미국 전역 순회 전시를 통해 전쟁 후원금 1억3500만 달러를 모았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애국심 고취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던 1944년의 추수감사절 시즌, 한 신문은 아래와 같은 사설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승리를 가능하게 한 우리의 아들들, 형제들, 남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삶이 정상적으로 재개되고 시간이 인류의 상처를 자비롭게 치유할 내일을 향해 항상 감사해야 한다.”

‘감사’라는 단어만큼이나 추수감사절과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감사함에 감사하기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은 오랜 독립 전쟁 끝에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을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해 추수감사절을 선포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이 날만큼은 감사를 드리자”며 추수감사절을 제정했다.

과거 사람들은 대공황이라는 힘든 시기에도 추수감사절을 잊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많은 죽음을 낳은 세계대전 동안에도 추수감사절을 기념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감사를 떠올리고 표현하는 일이 능숙지 않다.

그렇다면 잠시 멈춰서 이전 세대들이 표현했던 감사함에 감사를 드려보자. 그들이 느끼고 표현했던 감사한 마음, 그리고 그들이 시련 앞에서 보여준 끈기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받은 축복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힘과 용기를 더 낼 수 있을 것이다.

전설적인 미국의 음악가 윌리 넬슨은 “내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기 시작했을 때, 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러한 감사의 실천을 위해 생긴 날이다.

제프 미니크는 자녀가 네 명이고 손자 손녀도 많다. 20년 동안 뉴욕주 애쉬빌 홈스쿨링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에서 역사, 문학, 라틴어를 가르쳤다. 현재 버지니아주 프런트 로얄에 살며 글을 쓴다. 그의 블로그(JeffMinick.com)에서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