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호주 뒷마당’ 솔로몬제도에 항구·조선소 건설 추진

한동훈
2022년 05월 10일 오후 4:48 업데이트: 2022년 05월 31일 오후 1:23

중국이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 제도와 항구 건설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외교적으로 대립해온 호주 정부는 이번 사안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주 매체 오스트레일리안이 입수해 10일 공개한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작성한 양해각서 초안에는 “해양경제 관련 투자협력을 확대한다”며 중국이 솔로몬제도의 항구·조선소·해양운송망 건설 등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솔로몬제도는 지난 4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 파견을 허용하는 안보협정을 중국과 체결해, 호주는 물론 미국의 우려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미 백악관은 솔로몬 제도에 영구적인 군사력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중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평양 제도에는 각기 다른 정치·문화권이 공존한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권 국가의 해외 영토 7곳과 피지, 솔로몬제도 같은 주권국 14개가 있다. 태평양 제도 면적은 전 세계 면적의 15% 이상을 차지하나 인구는 1300만에 그친다. 낙후된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의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냉전이 끝난 후, 미국과 동맹국은 남태평양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국제 발전기구를 폐쇄하고 풀브라이트 장학 제도를 중단하는 등 경제적 지원과 인적 교류를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남태평양 지역 평화유지군의 수를 대폭 줄였다. 영국은 ‘태평양 공동체’에서 탈퇴했다.

이는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공산주의 중국에 기회가 됐다. 중국은 최근 10여 년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태평양 제도의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의 특권층을 매수하면서 전략적 자원과 거점을 확보하고, 특히 호주의 뒷마당에 해당하는 지역에 군사 시설을 건설했다.

중국은 또한 이간질 작전으로 태평양 제도와 호주·뉴질랜드 사이를 분열시키고 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동시에 지역의 불안정을 촉발시켜 태평양 제도의 여러 국가를 중국 공산당 정권에 종속적 관계로 만들어 왔다.

“중국, ‘채무 함정’으로 태평양 제도 정치·경제 잠식”

태평양 제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일부분으로, 미국과 동맹국이 중국과 경쟁하는 새로운 전장이 됐다. 최근, 미국은 인도 태평양의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으며, 태평양 제도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고 중국의 영향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질랜드 매체 ‘스터프’는 <태평양의 체스말(Pawns of the Pacific)>이라는 장문의 시리즈 기사를 통해 중국이 경제·자원·사회·군사 등의 분야에서 태평양 제도를 잠식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무 함정에 빠뜨려 경제 발전을 억누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태평양 제도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크게 커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두 차례나 이 지역을 방문했고, 중국 정부는 주요 투자자가 됐다. 일대일로는 도로, 항구, 학교 등 지역의 인프라 건설의 자금줄이 됐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Lowy) 연구소는 최신 자료를 분석해 2006~2020년 중국 정부가 태평양 제도 국가에 약 30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호주를 밀어내고 태평양 지역의 최대 수출 시장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자금은 절반 이상이 대출금이었다. 중국 정부는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으며, 원금에 더해 이자까지 요구했다. 쿡 제도, 피지, 사모아, 통가, 바나아투 모두 중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는 일본이 투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태평양 지역의 주요한 지원국이었는데, 2009~2019년에 투입된 일본 자금 중 대출금은 14%에 그쳤다. 로위 연구소는 일본이 자금을 지원하기 전 먼저 지원 항목에 대해 세부적으로 평가해 실효성을 꼼꼼히 따졌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발표에 따르면, 태평양 지역의 공공채무가 2021년 해당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약 39%로 2019년의 33%보다 높아졌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 지역의 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됐다.

기사에 따르면, 뉴질랜드가 이 지역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다만 눈에 잘 보이는 도로, 항만 등 인프라 투자보다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집중됐다.

뉴질랜드 정부는 가정 폭력 방지, 교육 장려 등을 위해 기부했다. 태평양 제도 국가들의 대외 의존도 심화와 국가 채무 증가를 우려해, 중국과 같은 직접적인 투자는 되도록 자제해왔다.

대만 국제전략학회 이사장인 왕쿤이(王昆義) 대만 단장(淡江)대 교수는 호주·뉴질랜드와 중국의 태평양 제도 원조를 비교해, 전자는 해당 국가의 통치 실패를 예방하려는 목적이었지만 후자는 중국의 정치적·전략적 목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왕 교수는 중국의 불투명한 원조는 오히려 해당 국가가 특권층의 부패를 부추겨, 정치 발전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으며, 지역의 불안정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기본적으로 중국 근로자 고용을 조건으로 내걸어, 현지 기업에 기회가 되거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솔로몬 제도의 퍼시픽 게임 경기장 건설 사업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100개의 현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이 수주한 이 사업은 공사 직전 중국인 인부 120명이 입국했다.

현지 건설업체 관계자는 “솔로몬 제도에 중국 기업이 들어오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현지 기업은 싼 노동력과 자원을 확보한 중국 기업과 경쟁이 안 된다. 자격을 갖춘 현지 건설업체들은 오히려 일자리가 줄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이나 권력자와 관계있는 사람만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의 날림 공사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4년 상하이 건설그룹이 건설하고 리모델링한 사모아 국가 의료센터는 9천만 달러가 투입됐지만, 총 5대 엘리베이터 중 1대만 운행 중이다. 벽은 타일이 떨어지고, 에어컨은 자주 고장이 났다. 화장실은 악취로 이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환경 훼손도 심각하다. 중국 기업들은 로비를 통해 자원과 토지를 확보했다. 솔로몬제도에서는 벌목 허가를 얻어 ‘최대한 빠르고 저렴한 개발’로 자원을 채취했다. 벌목 기간에는 일자리가 창출됐지만 벌목 작업이 끝나자 모든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후 비가 오면 하천 범람으로 주변이 온통 진흙탕이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태평양 제도 포럼(PIF) 어업국 보고에 따르면, 2017~2018년 연간 약 4억9700만 달러어치의 참치가 불법 포획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특정 국가를 지정하지 않았지만, 제네바의 글로벌 범죄 추적 이니셔티브는 중국을 전 세계에서 불법 조업이 가장 심각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