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 “중대재해법은 낙제점.. 실효성 없어”

이연재
2022년 07월 2일 오후 2:13 업데이트: 2022년 07월 2일 오후 3:26

정부가 7월부터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해당 법안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향 등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기술사회가 1일 이상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유성을)과 공동으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건설안전예방에 무엇이 실효적일까’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진행했다.

중대재해법, 실효성 없어.. 법개정 필요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가 ‘중대재해처벌법과 건설안전’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NTD

“정법과 악법의 구분 기준을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으로 볼 때 중대재해법은 낙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여론을 잠재우는 데 급급했지 실질적인 재해 예방을 위해 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안전보호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규정 없이 오로지 사고 발생에 대한 처벌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을 이같이 진단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의무 주체 및 의무 내용의 불명확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법에는 ‘사고 발생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자’를 의무 주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원청사인지 하도급업체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에 유사 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 주체와 중복·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의무사항의 구체적 내용도 빠져 있다.”며 “기업 등 수범자는 안전역량 향상보다는 형식적인 안전대책에 치우치고 형사처벌 회피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어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집행기관이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고 예방 차원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이행을 위한 지도감독이 선행될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은 올해 1월 27일에 시행됐다. 기업의 안전보건조치를 강화하고 안전 관련 투자를 확대해 중대산업재해 예방, 종사자의 생명·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중대산업재해란 업무와 관계되는 건설물, 설비 혹은 작업 또는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종사자의 사망, 부상,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사망자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직업성 질병이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재해’가 중대산업재해에 해당된다.

기업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있어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점검 등 안전관리체계 구축’,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 수립’,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를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망에 대해선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부상·질병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경영책임자에게 부과된다.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에서 규정하는 CEO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량 부담이 과도하다고 주장해왔다.

한상준 대한건설협회 기술안전실 부장(좌)과 김정곤 경실련 도시혁신센터 도시안전분과장(우) | NTD

한상준 대한건설협회 기술안전실 부장은 이날 종합 토론에서 “중대재해법의 애매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현장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며 도급 관계나 산업·업종별 의무 내용을 더 구체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김정곤 경실련 도시혁신센터 도시안전분과장은 “중대재해법에서 중대시민재해를 처음으로 정의하고 시민안전에 대해 정부와 기업의 구체적인 의무와 과실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며 “이 부분은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한 업무들의 세부 운영 기준이  부실해 실무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에 모호하게 정의된 부분이 많아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예방 방안, 기술중심 예방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건설안전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됐다.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이 ‘건축물 안전예방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 NTD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은 “모피지부(毛皮之附: 근본은 뒷전이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만 해결하려는 것을 이르는 말)라는 말처럼 현행 제도가 땜질 처방만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을 찾고 책임을 규명해 관련자를 처벌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안전사고를 예방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 대응은 긴 호흡을 갖고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처벌 위주가 아닌 예방에 중점을 둔 제도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건설업의 중대재해 예방 방안으로 △기술 중심의 법 △사전 예방 중심의 법 △ 사고 책임보험 제도 도입을 위한 법을 제안했다.

한편 국회에는 중대재해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CEO가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보건 확보 조치를 했다면 처벌 형량을 감경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경영책임자 의무를 명확히 함으로써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데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