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하 효과에…이탈리아, 中 ‘일대일로’ 탈퇴 검토

강우찬
2023년 05월 12일 오후 8:48 업데이트: 2023년 05월 12일 오후 8:52

일대일로 참여 후 외국인 직접 투자 오히려 급감
대중 수출은 살짝 증가한 반면, 대중 수입은 2배

이탈리아가 대만과의 반도체 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0일(현지시간) “참여 종료를 아직 결정하진 않았다”며 “아직 논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중국과의 협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2013년 들고나온 글로벌 경제 벨트 구축 구상이다.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며 해당 지역 참여국에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 기반시설을 짓거나 투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표면적 취지와 달리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문제가 됐다. 경제 효과를 부풀리고, 사업 전체를 중국 업체가 도맡아 중국 자재를 사용하고 중국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참여국에 미치는 경제 효과 및 고용 창출 기여도가 낮다는 점도 지적된다.

일대일로 개발이 진행된 지역은 중국 본토 범죄조직이 활개를 치며, 현지인이 소외되는 현상도 포착된다. 공산당 관리들이 참여국 관료에게 거액의 뇌물을 줘 부패를 확산시키고, 참여국에 거액의 빚을 지게 만드는 ‘채무 함정’이라는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주요7개국(G7) 가운데 유일한 참여국인 이탈리아는 일대일로의 위상을 높이는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 이탈이 ‘사실’이 되면 사업 자체는 물론 이를 업적으로 내세워 내부적으로 집권 정당성을 주장해온 시진핑의 정권에도 적잖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경제난 속 中 공산당 일대일로에 ‘기대’

2019년 3월 당시 주세페 콘테 총리는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총서기와 양해각서( MOU)를 체결하고 일대일로에 참여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기한은 2024년까지로 어느 한쪽이 종료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갱신된다.

당시 이탈리아는 중국에서 약탈한 문화재 796점을 반환하기로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다. 그 대신 미래의 경제가치가 200억 유로(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1.5%였던 낮은 경제성장률과 10%대의 높은 실업률도 배경이 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경제효과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탈퇴를 고려한 주된 이유로 거론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대중 수출은 2019년 130억 유로에서 지난해 164억 유로로 약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대(對)이탈리아 수출을 317억 유로에서 575억 유로로 2배 가까이 늘리며 재미를 봤다.

약속했던 투자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 전문업체 로디움 그룹의 분석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 투자(FDI)는 2019년 6억5천만 달러에서 2021년 3300만 달러로 일대일로 참여 후 오히려 대폭 감소했다.

게다가 일대일로 참여를 거부한 독일,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같은 기간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FDI 투자를 받았다. 중국의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핀란드였다.

일대일로 실제 경제효과 미미…‘반도체 강국’ 대만 부각

같은 기간 이탈리아는 대만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탈리아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 분야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로 진입하면서 차량용 반도체가 핵심 부품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대만의 첨단 반도체 공급이 필수가 됐다.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 자본의 침투도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이탈리아-중국 간 MOU의 상징적 사업으로 꼽히는 제노바와 트리에스테의 두 항구 개발 협력 협정이다.

동북부 트리에스테 항구는 슬로베이니아와 이탈리아 국경지대에 위치해 경제적 전략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중국 공산당은 이 항구의 대규모 개발 사업에 탐을 내고 있다. 서유럽까지의 운송거리를 수백km 단축할 수 있어서다.

이탈리아의 비즈니스·이탈리아산 담당 장관인 아돌포 우르소는 최근 “트리에스테 항구는 중국의 손에 넘기지 않는다”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자국 안팎에서 고조되는 우려 여론에 따른 의사 표명이었다.

보수 성향인 멜로니 총리는 중국 공산당의 보복을 우려해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일대일로를 포함해 공산주의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4월의 영국 방문 때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회담하면서 “대만해협의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으며, 4월 말에는 우르소 장관을 포함한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해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하게 했다.

대만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모습이다. 이탈리아 주재 외교 공관 성격의 ‘밀라노-타이베이 사무소’를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대만무역협회가 밀라노에 설치·운영 중인 무역센터와는 별도로 실질적인 영사관 역할을 할 거점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1970년 중국 공산당 정부와 국교를 수립한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멜로니 정권은 이전 정부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취임 전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며 “(공산주의 중국은) 우리와 동일한 규칙을 따르지 않기에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대만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다만, 취임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의 경제 보복을 의식한 듯 중국의 대만 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다소 줄었다. 그럼에도 대만과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모습이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 센터’의 아시아-유럽 문제 전문 분석가인 니콜라 카사리니는 “과거 이탈리아의 외교에서는 무역 문제가 거의 유일한 관심사였지만 마리오 드라기 총리 시절부터 경제와 함께 가치관을 중시하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추세는 보수 정권인 멜로니 총리 정권 출범 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