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中 대사 교체될듯…후임은 천하이 주미얀마 대사 유력

최창근
2023년 06월 12일 오후 4:34 업데이트: 2023년 06월 12일 오후 4:34

지난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 시 다시금 ‘설화(舌禍)’를 일으킨 싱하이밍(邢海明) 대사 교체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후임자로는 천하이 주미얀마 중국대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월 부임한 싱하이밍은 재임 기간이 3년이 넘었다. 통상 3년인 중국 재외공관장 임기에 비춰 볼 때 교체 가능성이 높다. 더하여 싱하이밍은 부임 후 각종 외교 결례 논란을 빚었으며 설화(舌禍)도 잦았다. 특히 지난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에서 주재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겁박한 것은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평가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권에서 싱하이밍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즉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여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 대사 추방이 현실화되기는 어렵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싱하이밍을 유임시키기에는 부담이 크다. 더하여 공교롭게도 후임 대사로 거론되는 인물도 통상 3년 임기를 넘겨 교체할 적절한 타이밍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하여 외교가에서는 차기 대사로 천하이 전 주한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이 부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차기 대사 하마평에 오른 천하이를 두고서 외교가에서는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반응이다. 허장성세(虛張聲勢)가 강한 싱하이밍 현 대사보다 어려운 상대라는 의미이다. 오만한 언행 면에서도 피장파장이다.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부국장) 시절 천하이는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야 되겠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천하이(陳海)는 1971년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 태생이다. 북한 김일성종합대 조선어과를 졸업했다. 제3대 주한 중국대사 리빈(李濱), 제4대 대사 닝푸쿠이(寧賦魁), 현 8대 대사 싱하이밍의 뒤를 잇는 북한 유학파이자 리빈, 닝푸쿠이와는 김일성종합대 동문이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중국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하여 아주사(亞洲司)에 근무했다. 1999년 주한 중국대사관 수원(隨員)으로 부임하여 3등 서기관, 2등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2004년 귀임하여 외교부 아주사 2등 서기관, 조선처(한국과) 부처장을 맡았으며, 2005년 아주사 조선처장(한반도 데스크)으로 승진했다. 2009년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하여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했다. 2014~15년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부국장)으로 복직했고 광시성엑스포사무국(廣西博覽局) 부국장을 겸했다. 그러다 2015~19년 다시 아주사 부사장을 거쳐 2019년 주미얀마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한국 근무 시절인 2012~14년 천하이는 명동 대사관의 ‘실세’ 혹은 ‘키맨’으로 불렸다. 2010년 부임한 장신썬(張鑫森) 대사 재임기다. 2012년 정무담당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한 천하이는 공관차석(Deputy Chief of Mission)으로서 ‘넘버2’로 군림했다. 대외 활동 시에는 ‘부(副)대사’ ‘대리(代理)대사’ 직함을 사용했다. 장신썬 대사가 본국 귀임 명령을 받은 2013년 12월부터 추궈훙(邱國洪) 후임 대사가 부임한 2014년 2월 12일까지는 명실상부한 대리대사로서 대사관 1인자였다. 40대 젊은 외교관으로서 미‧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 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약년(弱年)의 천하이가 실세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외교부의 ‘인재 풀(pool)’ 문제가 자리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정부는 초대 대사로 베이징대 조선어과 출신인 장팅옌(張庭延)을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리빈, 닝푸쿠이 등 한국어가 유창한 외교관을 대사로 임명했다.

이후 청융화(程永华)-장신썬-추궈훙 등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교관이 차례대로 대사로 부임했다. 이 속에서 한중 양국 간 의사소통 문제도 따랐다. 이 와중에 중국 정부는 대사를 보좌하며 정무 업무를 총괄하는 정무공사(공사참사관)에 한국어에 유창한 싱하이밍, 천하이 등 비교적 젊은 외교관을 배치했다. 이들은 한국어 능력, 한국 근무 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여 자연히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청융화 전 대사를 시작으로 장신썬, 추궈훙 등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교관이 대사로 오면서 양국 간 긴밀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한국의 비판에 못 이겨 주한 중국대사의 직급을 부국장에서 국장급으로 높이면서 한국말을 구사하는 국장급 외교관은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사관 ‘넘버2’인 정무공사 자리에 한국말이 유창한 40대 젊은 외교관들을 배치해 대사를 보좌하게 한 것이다.

실제 장신썬-청융화-추궈훙 전 대사는 한국어에 유창한 싱하이밍과 천하이 같은 북한 유학파 출신 외교관들에게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는 필연이었다.

천하이의 ‘파워’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4년이다. 신년을 맞이하여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에 천하이는 1월 8일 자 한국 ‘중앙일보’에 ‘아시아, 일본 우경화를 경고한다’ 제하의 칼럼을 기고했다. ‘주한 중국대사관 대리대사’ 명의였다.

중국의 아시아 침략 역사를 거론하며 아베 신조 총리를 맹비난한 칼럼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다 함께 시대의 조류를 거역하는 행동에 대해 장엄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는 자(多行不義者)는 반드시 역사 속 치욕의 기둥에 못 박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구절로 마무리했다. 상대국 정부 수반을 향한 섬뜻한 경고였다.

이에 당시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공보문화원장)는 1월 24일 자 ‘중앙일보’에 게재한 ‘중국, 현명한 한국인을 오도 말라: 8일 자 천하이 중국 대리대사 기고에 대한 반론’을 통해 반박했다. 칼럼은 “중국은 현명한 한국 국민을 오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도 사실 직시, 자기 성찰이 본래 있었을 터. 중국이 자국의 이익과 장점을 해치지 않기를 나는 친구로서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일본의 반론 칼럼 게재 후 천하이는 2월 5일 자 ‘중앙일보’에 다시 ‘일본, 누구와 싸우겠다는 건가’ 글을 게재하여 재반박했다. 글에서 천하이는 “올해는 말의 해다. 우리는 일본의 우익세력이 ‘현애늑마(懸崖勒馬·벼랑 끝에서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움)’하기를 바란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역사의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실제적인 행동으로 잘못을 바로잡아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의 믿음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후 2014년 중국 외교부로 복귀한 천하이는 이른바 ‘괘직단련(掛職鍛煉)’으로 광시엑스포사무국 부국장을 맡아 광시성으로 부임했다가 2015년 본부 아주사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주한 미군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경색된 한중 관계 속에서 천하이는 2016년 12월, 개인 자격으로 비공식 방한했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과의 면담에서 사드 배치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야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사드를 배치하면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고 협박성 발언도 했다.

이런 천하이는 2019년 주한 중국대사 교체설이 나돌 때 싱하이밍 현 대사와 더불어 차기 대사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실제 인사에서 천하이는 2019년 6월 주미얀마 대사로 부임했다. 그러다 2020년 1월 몽골대사이던 싱하이밍이 제8대 주한대사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