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주한 중국대사 列傳⑤] 유학생 난동, KBS 공연대관 취소…닝푸쿠이 4대 대사

2021년 8월 25일
업데이트: 2021년 8월 26일

김일성대 동기동창 리빈과 임무 교대 부임
베이징올림픽 유학생 폭력사건으로 피소, 불명예

닝푸쿠이(寧賦魁)는 1955년 허베이(河北)성 칭허(清河)현 태생이다. 가족의 이사로 톈진(天津)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톈진외국어학교 졸업 후 외교 분야 장학생으로 선발돼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에 입학했다.

훗날 닝푸쿠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을 때 조선어(한국어)로 된 커다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당시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4년간 각고 노력 끝에 능숙하게 한국어를 마스터했다”고 회고했다. 대학 4년간 리빈(李濱·제3대 주한국대사)과 동문수학했다.

1977년 대학 졸업 후 닝푸쿠이와 리빈은 외교관 시험에 합격, 주북한 중국대사관에 근무했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베이징 외교부 아주사(亞洲司) 조선처에 근무하며 3등 서기관, 조선처 부처장(과장보좌), 처장(과장)으로 승진했다. 1991년 다시 평양으로 발령받아 중국대사관 1등 서기관, 참사관으로 근무했다. 1995년 승진해 아주사 부사장(부국장)으로 2000년까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업무를 전담했다.

2000년 닝푸쿠이는 재외공관장으로 첫 부임했다. 임지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었다. 주캄보디아 대사로 3년 근무 후 2003년 외교부로 복귀해 ‘한반도사무대사’로서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한 문제를 담당했다. 그러다 2005년 동기생 리빈과 자리를 맞바꿔 제4대 주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했다.

3대 대사 리빈과 대학, 외교부 동기, 차례로 駐韓 대사로

중국 외교부의 ‘자리 맞바꾸기’ 인사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2000년 12월, 리자오싱(李肇星) 주미대사와 양제츠(楊潔篪) 외교부 북미담당 부부장 간의 맞바꾸기 인사가 단행됐다. 2005년 2월, 저우원중(周文重) 외교부 북미담당 부부장이 주미대사로 나가고 양제츠가 귀국해 저우원중의 자리를 맡는 인사가 이루어졌다.

일본 대사의 경우에도 2004년 8월, 왕이(王毅) 아시아 담당 부부장이 주일대사에 임명되고 왕이의 후임에는 주일대사였던 우다웨이가 부임했다. 맞바꾸기 인사는 미국, 일본, 한국 등 중국의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연계된 국가에 대해서는 업무 공백을 허용할 수 없다는 중국 지도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닝푸쿠이가 서울에 부임했을 무렵, 중국산 ‘기생충 김치’ 문제로 한국 여론이 들끓었다. 2005년 10월 25일,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닝푸쿠이는 “일부 기업이 만든 제품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 뿐인데 마치 중국산 제품 모두가 문제라는 인식이 조성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중국산 제품의 대한국 수출이 이번 일로 타격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국민 건강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양국 관계가 수교 이래 우호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는데 농산품 교역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산 기생충 김치 파문으로 곤욕…日·대만에는 강경 목소리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닝푸쿠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당시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지적하며  “한-중 양 국민에게 피해를 준 전범들을 참배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집권 정당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과거의 침략역사를 인정하고 참배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핵심 국가 이익’으로 치부하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 입장을 밝혔다. 2005년 11월 28일 이화여대 초청 강연에서 참석자가 ‘대만 문제’ 질문을 하자, “대만을 국가로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대만과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다. 중국 문제에 대한 기본 관념이 잘못된 질문자의 물음에는 답할 생각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2008년 1월 닝푸쿠이 대사는 ‘문화 테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해 2월 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미국 션윈(당시 명칭은 신운)예술단 내한 공연이 예정된 가운데, 중국 대사관이 공연장소인 KBS 측에 대관 계약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한 닝푸쿠이 대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를 시도하는 위성채널 NTD 기자에게 “내정 간섭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대답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이 과정에서 닝푸쿠이 대사는 기자가 건넨 명함을 바닥에 던지기도 했다.

재임 기간, 중국 대사관의 내정 간섭 빈발

중국의 ‘간섭’은 얼마 못 가 재차 발생했다. 그해 2월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대만 측은 취임식 참석 의사를 타진했다. 취임식준비위원회 측과 조율 끝에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 천탕산(陳唐山) 국가안전회(NSC) 비서장을 축하 사절로 파견했다.

그러나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장 입구에서 왕진핑과 천탕산은 입장을 거부당했다. 중국의 개입 때문이었다.

중국은 대통령 취임식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 겸 축하사절로 온 탕자쉬안(唐家璇) 외교 담당 국무위원을 파견했는데, 대만 사절의 취임식 참석 정보를 입수한 중국 측은 “대만 사절단이 참석할 경우, 탕자쉬안이 참석하지 않겠다”는 압력을 가한 것이다. 한국 측은 이를 수용했고 왕진핑과 천탕산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즈팡(黃志芳) 대만 외교부장은 2월 25일, 대만 입법원에서 “중국의 압력으로 대만을 대표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려던 왕진핑 입법원장과 천탕산 국가안전회 비서장이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8년 닝푸쿠이 대사의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닝푸쿠이 대사 재임기 가장 큰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그해 봄 발생했다.

8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송행사가 열렸다. 4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서 성화가 출발했다. 한국 치안 당국은 성화의 안전을 고려해 경찰 9300여 명을 배치했다.

올림픽공원 광장에는 오전부터 6500여 명의 중국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등을 들고 집결해 있었다. 재한 유학생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주한국 중국대사관이 주축이 돼 전국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행사장에는 티베트 독립 문제, 중국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한국 시민단체 회원 180여 명이 모여 있었다. 현장에 모인 6500여 명의 중국인은 그들에게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돌, 스패너, 미개봉 음료수 캔, 국기 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 두 집단을 갈라놓으려는 경찰 병력 사이로 투척은 계속돼, 한국 경비 경찰도 부상을 당했다. 중국인들은 집단 구타, 무차별 폭행을 지속했고 이 속에서 민간인, 기자, 경찰의 부상이 이어졌다.

중국 유학생 폭력사건 발생, 본인도 피소

사건 발생 후 한국 인터넷을 중심으로 “중국의 전체주의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했다.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중국인의 폭행 사진이 유포됐다. 이는 한국 내 반중 감정을 격화시켰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닝푸쿠이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닝푸쿠이는 “일부 중국 청년들이 과격 행동을 하여 한국 경찰과 기자 등이 부상한 것에 대한 위로와 감사한다”라고 밝혀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4월 30일, 최용호 자유청년연대 대표 등은 “닝푸쿠이 중국대사와 재한 중국유학생연합회 등을 처벌하라”며 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최용호 대표는 금속절단기에 가슴을 맞아 좌측 4번째 늑골이 부러져 전치 4주의 상해진단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닝푸쿠이는 주재국 대사로서 ‘피소’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닝푸쿠이는 ‘중국인 폭력사건’ 발생 6개월 후인 10월 이임하여 한국을 떠났다. 부임 3년 만이었다. 본부 귀임 후 본부 대사로 일하던 닝푸쿠이는 2009년 5월, 이웃 국가들과의 육지·해양 영토분쟁을 처리하고 국경선 획정 및 공동탐사 업무 담당 신설 조직인 외교부 변계해양사무사(邊界海洋事務司) 사장이 됐다. 이후 2011년 윈난(雲南)성 공산당위원회 부비서장으로 전보됐고, 2017년 주태국 대사가 되어 3번째 재외공관장 직을 수행했다. 그러다 2018년 3월, 한반도사무특별부대표를 맡아 북핵6자회담 중국 측 차석대표로 활동했다.

/최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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