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탄생의 비밀

레베카 데이(Rebecca Day)
2023년 12월 20일 오후 8:47 업데이트: 2024년 02월 4일 오전 12:05

1816년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밤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마을 오베른도르프의 성당 쪽으로 난 길을 걷고 있던 요제프 모르 신부는 문득 고요함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했다. 눈이 쌓인 세상은 새하얬다. 맑은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겨울밤이었다.

성당에 도착한 모르 신부는 펜을 들고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요한 겨울밤에 영감을 받은, 평화에 관한 시였다.

1816년 요제프 모르와 프란츠 그뤼버가 각각 작사, 작곡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사인 악보|공개 도메인

성탄절 전야의 초연

시를 쓰고 나서 2년 뒤인 1818년에 모르 신부는 이곳 지역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프란츠 그뤼버에게 시에 멜로디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1818년 성탄절 전야, 모르 신부와 그뤼버는 성탄절 미사를 위해 성당에 모인 신도들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처음 들려주었다. 노래를 들은 모두가 큰 감동과 기쁨을 안고 서로를 축복했다.

노래가 처음 연주된 ‘고요한 밤 기념 성당’의 모습|오스트리아 관광청 공식사이트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성당에서 초연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어떻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된 걸까. 여기에는 오랜 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고장 났고 이에 다른 지역에서 이곳 성당까지 방문한 수리공이 오르간을 고치던 중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악보를 발견했다. 악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수리공은 수리를 끝낸 뒤 악보를 챙겨 자신이 살던 지역으로 돌아갔다.

사소한 이 행동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전 세계적으로 불리게 되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1819년에는 수리공이 살던 지역의 유명 악단들이 유럽 순회공연을 떠났다. 악단들은 공연 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했다. 오스트리아 왕실 공연 때에도, 나아가 러시아 왕실 공연 때에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했다. 노래는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전 유럽으로 퍼졌다.

1839년에는 미국 뉴욕 공연이 있었다. 이들 악단은 뉴욕 공연에서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했고, 이것이 미국에서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첫 연주였다.

그렇게 1840년대에 이르러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8년 제작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 100주년 기념 카드|공개 도메인

영속되는 평화의 메시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전쟁은 계속됐다. 양측 장병들은 불과 몇십에서 몇백 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 싸우던 병사들은 이날 밤 문득 가족을 생각하며 참호 속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는 주변으로 울려 펴졌고 상대측 참호에까지 전달됐다.

이윽고 영국과 독일, 프랑스 병사들은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병사들은 참호 위로 촛불이나 전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것을 발단으로 양측의 수많은 장병이 비무장 상태로 나왔다. 대치선의 한가운데서 마주 본 장병들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함께 부른 병사들은 하룻밤의 휴전을 선언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식량을 나누고 함께 축구를 즐겼다. 기념품으로 서로의 단추나 모자를 교환하기도 했다.

노래가 전하는 성스러운 평화의 메시지가 세계대전을 잠시 멈추게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하룻밤 동안 전쟁터는 평화로웠다.

현재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불리고 있다. 신실한 신도들을 위한, 한 신부의 선물로 시작된 노래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됐다. 노래는 200년이 넘었지만, 노래 안에 담긴 평화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변함없이 전해지고 있다.

레베카 데이는 인디 뮤지션이자 프리랜서 작가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