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어머니, 그리고 5월…예술로 이어온 전통의 가치

제프 미니크 (Jeff Minick)
2024년 05월 18일 오후 6:09 업데이트: 2024년 05월 18일 오후 7:09

그리스 신화 속 봄과 성장의 여신 마이아(Maia)의 이름을 딴 메이(May·5)는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다산과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다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봄과 여름을 잇는 달인 5월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 의식과 축제를 열어왔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강화하고 신성을 축복하기 위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성모)를 5월과 연결 짓기 시작했다.

‘마니피캇의 마리아’(1483), 산드로 보티첼리 | 퍼블릭 도메인

기독교의 전파와 발전에 따라 기독교 예술가들은 성모를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그림과 조각을 만들었다. 기독교에는 모성을 상징하는 많은 성인이 있지만, 현재까지 가장 많은 예술품에 남아있는 모성의 상징은 성모와 그의 아들 예수다.

천국의 창문

동양에서는 성모상을 은총의 통로로 간주한다. 즉, 천국으로 향하는 창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수 세기 동안 성모는 기독교 예술의 주요한 형태로 여겨졌다. 특히 성모와 어린 예수가 등장하는 것은 더욱 깊은 종교적 의미를 지녔다. 어린 예수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신성과 인간성을 모두 갖춘 온전한 존재라는 의미로 묘사됐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13세기 추정),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작품 ‘영원한 도움의 성모’는 그 아름다움과 상징성으로 인해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에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달려가 품에 안긴 어린 예수와, 아들이 아닌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성모가 등장한다. 그들 위에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있다. 그들은 예수가 처형당할 때 사용된 도구인 창, 수세미, 십자가, 못을 들고 있다.

어린 예수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의 끈 풀린 신발 한 짝은 두려움에 황급히 달려온 상황을 설명해 준다. 배경을 채운 황금빛 노란색은 천국을 상징하고, 성모가 입은 옷의 푸른색은 초월과 신성함을 의미한다.

모성을 강조하다

‘마에스타’(1308), 두오 디 부오닌세냐 | 퍼블릭 도메인

13세기 이후 서양의 예술가들은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형태로 예수와 성모를 묘사했다. 이탈리아 화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1255~1318)의 작품 ‘마에스타(위엄)’는 비잔틴 성상화 양식의 과장됨에서 자연주의로 바뀌는  사조 전환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 성모는 관객이 아닌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고, 예수는 몸집이 작은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그려졌다.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1503), 레오나르도 다빈치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사조가 꽃피며 보다 사실적인 묘사가 인기를 얻게 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1503년 작품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에는 당시 작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성모는 자신의 상징색인 푸른 옷을 입고 있으며 어린 예수는 선한 목자의 상징인 어린 양을 안고 있다. 성모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상징인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 뒤의 안나(성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과 손자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와 천사와 아기’(1534),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 | 퍼블릭 도메인

성모와 예수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또 다른 작품은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졸라(1503~1540)의 ‘마리아와 천사와 아기’이다. 파르미자니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졸라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인체를 실제보다 길게 표현하는 과장법과 매우 섬세한 여성미를 표현한 예술가다.

화면 가운데에는 성모가 어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다. 그녀 왼쪽에는 천사들이 모여 그녀 품속의 예수를 관찰한다. 성모의 무릎 위 힘없이 늘어진 어린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죽음을 의미한다. 마졸라는 예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어린 모습의 예수를 등장시켜 이 작품을 완성했다.

현대의 성모

‘거리의 성모’(1894), 로베르토 페루치 | 퍼블릭 도메인

앞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 지 수백 년 이후, 1890년대 이탈리아 화가 로베르토 페루치(1853~1934)는 ‘거리의 마돈나’로 현대적인 모자상을 그려냈다. 푸른 망토를 걸치고 금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에 취해 있다.

페루치는 이 작품을 성모와 예수를 본떠 그린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거리에서 마주한 소녀와 동생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그린 것이지만, 의상의 색과 인물의 배치에서 성모와 예수를 오마주한 듯 신성을 느낀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다.

선한 어머니

‘마돈나와 아이’(1855), 프란츠 이텐바흐 | 퍼블릭 도메인

수 세기에 걸쳐 예술과 문학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모의 숭고함과 신성함을 기려왔다. 특히 많은 작품에서는 성모의 선함과 사랑 등 모성의 특정 미덕이 주로 강조됐다. 성모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우리는 박물관이나 교회, 많은 매체에서 이러한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수많은 어머니에게 영감과 희망, 위로를 주었고 가족들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를 전하고 어머니를 잃은 이에겐 위안을 건넸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통적 가치를 품은 예술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시사점을 전하고 있다.

제프 미니크는 자녀가 네 명이고 손자 손녀도 많다. 20년 동안 뉴욕주 애쉬빌 홈스쿨링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에서 역사, 문학, 라틴어를 가르쳤다. 현재 버지니아주 프런트 로얄에 살며 글을 쓴다. 그의 블로그(JeffMinick.com)에서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