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첨단기술 ‘인력 빼가기’ 기승…정부, 대응 수위 강화

황효정
2024년 03월 25일 오후 1:19 업데이트: 2024년 03월 25일 오후 3:36

반도체 등 첨단기술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국익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는 인력 관리를 강화하고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도 한층 높이기로 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최근 전문 인력들이 해외 경쟁사로 이직해 핵심기술이 함께 유출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반도체와 바이오,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관련 기업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일례로 앞서 SK하이닉스에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 업무 담당 연구원이 해외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의 임원급으로 이직을 시도해 충격을 안겼다. 또 지난해 삼성전자에서는 삼성전자 핵심 기술이자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의 설계 도면을 빼낸 전 임원이 적발됐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NISC)가 지난 2003년부터 2023년 7월까지 20년간 파악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례는 총 552건에 달한다. 액수로 따지면 피해 규모는 1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피해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수법도 단순히 전문 인력을 빼가는 방식에서 우리나라에 기업을 설립하고 기술 인력을 고용해 기술을 습득하거나 국내 기업을 인수한 뒤 인수한 기업의 기술을 습득해 해외로 유출하는 방식 등 지능화하는 모양새다.

산업계는 연봉 및 인센티브를 인상하며 인력 관리에 힘을 쓰고 있다. 법원도 기술 해외 유출에 대한 양형 기준을 크게 강화하기로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이달 중 양형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 역시 첨단기술 유출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있다. 산업부는 반도체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전문 인력’으로 법적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문 인력 강화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첨단기술 유출 시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해 추진 중에 있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기술의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한 벌금 상한액을 기존 15억 원 이하에서 65억 원 이하로, 기술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로 크게 상향한다. 아울러 앞으로는 기술 유출 브로커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은 기술을 ‘고의’로 빼내 해외로 유출했다고 해도 해외에서 그 기술을 사용할 ‘목적’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목적’이 아닌 ‘고의성’만 인정돼도 처벌이 가능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벌금과 인신 구속 등 처벌 강화가 실질적으로 첨단기술 유출을 저지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는 산업부가 제출한 법안을 비롯, 총 13건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병합 심사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국회의 입법 기능이 사실상 정지된 상황이지만, 업계 관계자는 “여야가 모두 법 취지에 공감하는 만큼 총선 직후 국회가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해 법안이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일이 없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