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분열 목적” 벨기에 정치인에게 보낸 ‘中 스파이’ 문자 유출

앤드루 쏜브룩
2023년 12월 18일 오후 3:45 업데이트: 2023년 12월 18일 오후 7:36

중국 스파이들이 벨기에의 한 정치인을 매수해 약 3년간 ‘서방 분열 작전’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측에 협력한 사실이 밝혀진 정치인은 소속 정당에서 즉각 제명됐다.

지난 15일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MSS) 소속 요원 다니엘 우는 중국 관련 사안에 대한 유럽 내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과 유럽 간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서방 분열 작전을 시도했다.

이 작전의 일환으로 전 벨기에 상원의원인 프랭크 크레이엘만을 매수해 ‘공작원’으로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크레이엘만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벨기에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최근까지는 정당 ‘플람스 벨랑’ 소속 의회 명예 의원으로 활동했다. 플람스 벨랑 측은 이번 의혹에 따라 크레이엘만을 제명했다.

FT는 다니엘 우와 크레이엘만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그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들은 최소 3년간 비밀리에 연락하며 작전을 수행했으며 이 기간에 크레이엘만은 중국 측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FT는 “이들이 영향을 미치려 한 사안은 중국의 홍콩 탄압과 위구르족 박해, 대만 관련 콘퍼런스 간섭, 학계 및 종교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 등 다양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은 중국이 세계 각국의 정치적 논의를 어떤 방식으로 조종하려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다니엘 우는 크레이엘만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우리의 최종 목적은 미국-유럽 관계를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정보 공작

벨기에의 플람스 벨랑 당대표인 톰 반 그리켄은 “크레이엘만의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는 우리 당의 목표와 존재 이유는 물론, 우리 국가의 가치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다니엘 우와 크레이엘만은 2019년부터 2022년 말까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크레이엘만은 공작원으로 활동하는 대가로 임무 한 건당 적게는 6000유로, 많게는 1만 유로까지 요구했다.

2019년 크레이엘만은 다니엘 우의 지시에 따라 홍콩 민주화 시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내도록 벨기에 현지 언론사에 압력을 가했다.

2021년에는 중국공산당의 위구르족 탄압 행위를 폭로하는 데 기여한 한 연구원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다니엘 우와 크레이엘만은 종교계 인사를 동원해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하도록 하는 작전을 논의했다.

중국의 정보 공작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사 결과 다니엘 우는 폴란드, 루마니아 등지에서 활동하며 유럽 국가의 정치인 및 고위관리들을 ‘정보 자산’으로 포섭하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

이번 사건은 중국공산당의 침투 공작과 영향력 작전이 세계 각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해커들은 그해 미국 중간선거 기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미국 유권자를 사칭하고 사회 분열을 유도하는 논쟁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했다.

이는 미국 내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영향력 작전의 일환으로 밝혀졌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기업 메타는 지난달 30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인을 가장한 중국인 가짜계정 4700여 개를 폐쇄했다”며 “202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대규모 작전 중 일부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계정들은 주로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강조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제작하고 유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거에 적발된 가짜 계정들은 중국 관련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국내 사안에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