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싱크탱크 “일대일로 2.0 시대…G7도 정책 조정 해야”

정향매
2023년 11월 13일 오전 11:00 업데이트: 2023년 11월 13일 오후 10:00

미국의 싱크탱크가 “중국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해상·육상 실크로드, BRI) 프로젝트의 성격, 규모, 범위가 바뀌고 있다”며 “주요 7개국(G7)은 중국 당국의 새로운 전략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의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는 지난 6일(현지 시간), 최신 글로벌 중국 개발 금융 데이터셋(GCDF 3.0)과 함께 ‘일대일로 재부팅(Belt and Road Reboot)’ 제하 415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보고서). 

보도자료에 따르면 GCDF 3.0은 100명 이상의 교수진, 연구원, 학생 연구 조교로 구성된 연구팀이 10년간 노력한 결과물이다. 중국 정부 기관으로부터 1조 3400억 달러(1769조 4700억 원) 규모의 재정 및 현물 지원을 받은 165개국의 2만 985개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파악했다. 이 데이터셋은 22개 회계연도(2000~2021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추적했으며 24개 회계연도(2000~2023년)에 걸친 프로젝트 실행 시기에 대한 세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는 GCDF 3.0에 근거해 중국 당국이 BRI 프로젝트의 위험을 줄이고 G7 경쟁국을 따돌리기 위해 부채상환 위험, 환경·사회·거버넌스(ESG) 위험, 평판 위험 세 가지 유형의 위험을 적극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BRI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난 2018년부터 BRI 2.0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다. 

또 서방 국가가 제때 전략을 조정하지 않으면 이미 사라진 BRI 1.0 프로젝트와 경쟁하는 헛수고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공식 국제 개발 금융 공급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중국의 공적개발원조(ODA) 및 기타 공적자금(OOF) 금액은 연간 약 800억 달러(105조 6400억  원)에 달한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공식 국제 개발 금융 공급국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지출 격차를 좁히기 시작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의 민간 프로젝트 지원을 통해 미국의 OOF가 15배 확대됐고, 미국은 매년 중저소득 국가에 약 600억 달러(72조 2300억 원)를 제공하고 있다. 

G7도 현재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 파트너십, 인도-중동-EU(유럽연맹) 경제회랑 등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RI 프로젝트 출범 초기 중국의 연간 ODA·OOF 규모를 따라잡지 못했던 G7은 지난 2021년, 중국에 비해 840억 달러(110조 9229억 원)를 더 지출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중국과 달리 미국과 동맹국이 장기적으로 달러로 경쟁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우려했다. G7은 국제 개발 지출 규모 증가를 약속한 대로 이행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 반면 중국 중앙은행은 공식적으로 보유한 외화 규모보다 훨씬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재력이 있다. 

中 지원, 중저소득 국가의 외교 정책에 영향 미쳐

G7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면서 해당 국가들의 중국 지지율은 2019년의 56%에서 2021년의 40%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지지율은 상승해 중국을 14%p 앞질렀다. 

그러나 연구소가  2000~2021년 전체 유엔 총회 투표를 분석한 결과, 75%의 중저소득 국가가 중국 당국과 같은 외교적 입장을 취했다.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한 중저소득 국가의 비율은  23%에 그쳤다. 

보고서는 또 “중국과 동조하면 풍성한 보상을 받는다”며 “외국 정부가 유엔 총회 투표에서 중국과 같은 선택을 하는 비율이 10% 증가하면 275%의 원조 및 신용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中, 채권 위험 줄이기 위해 대출 전략 바꿔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공식 채권 추심국이다.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대출의 55%가 이미 원금 상환 기간에 접어들었고, 오는 2030년에는 이 수치가 75%로 늘어날 예정이다. 개발도상국이 중국에 상환하지 않은 부채는 이자를 제외하고도 최소 1조 1000억 달러(1452조 5500억 원)에 달하며 미화 명목 기준으로 최고 1조 5000억 달러(1980조 7500억 원)에 달한다. 중국의 개발도상국 해외 대출 프로젝트 가운데 80%가 현재 재정난에 처한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고 연구소는 추정하고 있다. 연체 상환 위험도 급증하고 있다. 

BRI 1.0이 위험 관리 가드레일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중국 당국은 해외 대출 포트폴리오의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달러화 표시 인프라 프로젝트 대출은 줄이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차입업체에 대한 위안화 표시 긴급 구조 대출을 늘리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목표는 대형 차주가 미결제 인프라 프로젝트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2021년까지 중저소득 국가에 대한 중국의 구호 대출은 2013년의 5%에서 58%로 증가했다. 반면 인프라 프로젝트 지원 비율은 31%로 감소했다. 

중국 정부는 개발도상국의 부실 채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담보를 늘리고 있다. 초기 중저소득 국가에 제공한 대출 중 19%만 담보로 제공했지만, 현재 이 비율은 72%로 증가했다. 또 상환 연체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상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은행을 통해 외화 현금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계좌를 통제해 중국 부채를 우선 해결할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있다. 

비판 잠재우기 위해 ESG 위험도 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과거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상당한 ESG 위험을 수반하는 자금을 지원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연구소는 BRI 2.0 시대에 접어들어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인프라 프로젝트의 연간 ESG 위험 발생률은 65%에서 33%로 급감한 사실을 발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속도와 안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BRI 2.0 전략의 핵심이다. 중국은 프로젝트 추진이 신속하다는 명성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점점 엄격한 ESG 안전장치를 갖춰가고 있다. 빠른 성장을 원하는 중저소득 국가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안전과 품질을 자랑하는 G7의 강점이 덜 매력적일 수 있다. 

G7, BRI 2.0에 대응해야

에이드데이터의 최신 보고서는 이달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기 며칠 전에 발표됐다.

브래드 파크스 연구소 전무이사는 “G7은 중국의 야망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국제 위기 관리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문제 있는 프로젝트, 부실 대출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남방국가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중국은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BRI 이니셔티브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막후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십 년 동안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렀던 G7과 EU 회원국은 최근 해외 인프라 사업에 다시 뛰어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경쟁국보다 몇 걸음 앞서 있다. 중국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동맹국이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경쟁하지 못하면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BRI 1.0과 경쟁하는 데 집중하는 꼴이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