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추방 전직 CCTV 앵커 “정부 보도자료 몇 분 일찍 공개했다 3년 구금”

정향매
2023년 10월 19일 오전 10:48 업데이트: 2023년 10월 19일 오전 11:03

중국에서 ‘간첩’으로 몰려 구금된 호주 국적 전직 중국 관영 방송국 앵커 청레이(48)가 3년여 만에 풀려나 호주로 돌아왔다. 그는 석방 후 첫 인터뷰에서 자신이 감옥에 간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    

1975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청레이는 10세 때 부모를 따라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을 졸업한 뒤 2002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앵커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CNBC로 이직해 상하이 특파원 등으로 근무하다 지난 2012년 CCTV의 영어방송 채널 CGTN으로 복귀해 앵커 겸 기자로 활동했다. 

2020년 8월 13일, 청레이는 자택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연행됐다. 이후 6개월간 가택 감금됐고, 2021년 2월 5일 ‘국가 기밀을 외국에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로 정식 구속됐다. 이듬해 3월 베이징에서 비공개 재판을 받은 그는 지난 11일 중국 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후 추방됐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재직 당시 청레이의 모습. | 중국 인터넷 캡처.

지난 17일, 청레이는 호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자세한 사건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뉴스 엠바고가 걸린 정부 브리핑 문서를 엠바고가 풀리기 몇 분 전 외부에 공유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뉴스 엠바고(news embargo)는 취재원의 요청이나 기자들의 합의로 취재 내용의 보도 시기를 일정 기간 미루기로 약속하는 것을 뜻한다. 전 세계 다수 정부, 기업, 조직이 뉴스 엠바고를 홍보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언론에 정보를 미리 전달해 소화하도록 한 후 특정 시점에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청레이는 스카이뉴스에 그가 유출한 정부 문서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구금된 동안 “당신의 행동이 당국에 해를 끼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이른바 ‘조국에 해를 끼쳤다’ ‘국가의 권위를 손상했다’는 말은 중국에서 큰 죄목”이라며 “호주에서 하면 무방한 행동일지라도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되면 공유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면서도 “물론 자세한 내용은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청레이는 방송에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 연행된 후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2020년 8월 13일, 청레이는 업무에 대해 상의하자는 상사의 연락을 받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한 남성은 청레이에게 공안이라고 밝히며 “당신을 수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안들은 그날 청레이의 아파트까지 쫓아가 온종일 수색했다. 

가택 감금으로 세상과 단절된 기간 동안 청레이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떠올랐고, 매번 속으로 시를 번역하며 이를 떨쳐냈다. 그는 “좋은 꿈을 꿔도 잠에서 깨면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그때 꿨던 모든 꿈이 악몽이었다”고 회상했다. 

교도소로 이송된 후 청레이는 다른 수감자와 함께 수용됐지만, 감방의 불은 항상 켜져 있었다. 그는 “호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내에서 3년 만에 처음 불이 꺼진 밤을 지냈다”고 말했다. 

호주 멜버른 공항에 도착한 청레이는 마침내 가족과 재회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질병과 가족 부양 부담으로 인해 노쇠하고 체중이 줄어든 어머니와, 나를 향해 달려오는 12세, 14세 두 자녀를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호주 멜버른 공항에 도착한 청레이(오른쪽).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은 이날 공항에서 청레이를 마중했다. | AAP Image/Supplied DFAT=연합

이어 “호주로 돌아온 후 갓난아기처럼 연약해졌다가도 훨훨 날아다니며 세상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3년간 나를 위해 적극 활동해준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지난 11일 오후 중국 국가안전부 성명을 인용해 “법원은 청레이에게 국가기밀 불법 제공죄를 적용해 징역 2년 11개월형과 함께 추방을 판결했다. 그의 복역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베이징시 국가안전국은 그를 추방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이 청레이 안건의 판결 이유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미국 자유아시아 방송(RFA)은 지난 16일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청레이의 귀국 이유에 대해 중국과 호주 정부가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RFA에 따르면 청레이는 귀국 후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온전한(in one piece)’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준 호주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앨버니지 총리도 청레이가 구출된 것은 호주 정부가 중국 측과 오랫동안 협상한 결과라고 여러 번 밝혔다. 

RFA는 “다수 매체는 양국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호주의 ‘조용한 외교’를 칭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