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분 25% 넘으면 美 보조금 못 받아…K 배터리 中 의존도 낮추기 박차

정향매
2023년 12월 15일 오후 10:48 업데이트: 2023년 12월 15일 오후 10:48

미국 행정부가 중국 자본 지분율 25%를 넘는 합작법인을 ‘해외우려기관(FEOC)’으로 지정했다. 중국 기업과 다수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핵심 소재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해당 발표와 관련, 미국의소리(VOA) 중문판은 15일 다수 한국 전문가를 인용해 “한국 기업에 상당한 비용 상승 압박이 될 것”이라면서도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쟁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 기업에 이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양면적인 분석을 내놨다.  

지난 1일 미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친환경차세액공제 조항(30D) 요건 중 전기차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없는 FEOC에 대한 잠정 가이던스(지침서)를 발표했다. 

미국 행정부는 배터리 부품, 핵심 광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 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IRA 30D에 따르면 FEOC에서 추출·가공·재활용한 광물, 제조·조립한 부품이 들어간 배터리를 탑재한 친환경차는 각각 2024년 1월 1일, 2025년 1월 1일부터 세액공제 혜택 품목에서 제외된다. 

신규 발효한 가이던스에 따르면 △해외우려국에 주요 사업장을 설립 또는 소유하거나 주요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 △해외우려국 정부에 의해 소유·통제·지시를 받는 경우 FEOC로 간주한다. 이 밖에 해외우려국 정부가 이사회 의석, 의결권, 지분의 25%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는 기업도 FEOC에 포함된다. 미국 행정부가 규정한 해외우려국에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 포함된다. ‘해외우려국 정부’ 범주에는 중앙·지방정부와 산하 기관·기구, 집권 정당과 주요 정당 소속 전현직 고위 정치인과 직계 가족이 해당한다. 

연합뉴스 일러스트

VOA는 한국무역협회, 하이투자증권 등을 인용해 한·중 양국이 공동 설립하거나 설립을 제안한 합작법인은 25개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분율을 확정하지 않았거나 공개하지 않은 합작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법인의 평균 지분율은 한국 기업 51%, 중국 기업 49%다. 예외적으로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이 각 20%, 80%의 지분을 보유한 법인도 있다.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 가운데 LG화학·포스코홀딩스·에코프로 등이 중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했거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의 지난 11일 자 보도에 따르면 LG화학은 현재 중국 최대 코발트 생산 기업 화유코발트(華友鈷業)와 1조2000억 원을 투자해 전북 군산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5000억 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에 양극재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2026년에는 모로코에 연산 5만 톤 규모의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합작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합작 공장의 중국 측 지분율은 국내 법인은 49%, 해외 법인은 51%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측은 FEOC 가이던스 발표 이후 “현재는 FEOC 의견 제출 및 조정 기간으로 유권 해석을 거쳐 추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VOA에 “한국 기업들은 합작법인을 공동 설립하는 중국 파트너사의 지분 구성, 이사회 내 중국 정부·중국 공산당 전현직 인사나 가족 구성원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파트너사가 FEOC에 속할 가능성이 있으면 파트너사와 지배지분 문제 해결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분 조정으로 인해 한국 기업에 자본 추가 수급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신용평가 기관 한국기업평가는 12일 발표한 ‘2024년 산업전망’ 보고서에서 한국 배터리 업계가 직면한 경영 압박 요인 중 하나로 FEOC 가이던스를 꼽았다. 중국 기업과 합작법인 지분율을 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한국 배터리 업계의 재무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성장 둔화, 실적 악화, 투자 확대 등의 영향으로 배터리 소재 기업들의 재무 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돼 올해 말 순부채는 4조4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 레버리지 수준을 측정하는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대비 순부채 비율은 지난해 1.8에서 6.8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EBITDA 대비 순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레버리지 수준이 높으며 채무 상환 압박이 커진다. 

FEOC 가이던스로 인해 한국 기업은 대중국 핵심 원자재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현실에 다시 한번 직면했다. 

연합뉴스 일러스트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VOA에 “한국이 다각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도 “한국 배터리 업계는 중국과 다방면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중국 공급망에서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산 NCM 전구체, 인조흑연, 수산화리튬, 전해질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각각 98.6%, 93.0%, 87.9%, 69.5%다. 이 네 가지 품목은 모두 배터리 생산의 핵심 원자재로 꼽힌다.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업계는 기타 국가에서 광물 공급을 확보하고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며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계속 해왔다. 포스코스틸리온은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필리핀·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광물 개발·생산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남 여수 율촌산업단지에서는 포스코홀딩스의 자회사 포스코퓨처엠과 호주 리튬 광산업체 필바라미네랄(Pilbara Minerals)이 합작 설립한 수산화리튬 공장 포스코필바라리튬솔수션 1공장이 준공됐다. 수산화리튬은 양극재 생산의 핵심 원료다. 다수 한국 기업은 음극재 생산 핵심 광물 흑연을 리튬 금속과 실리콘으로 대체하는 기술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급망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기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한국이 중국 의존 구조에서 탈피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어렵다는 게 VOA의 설명이다. 

배터리 광물 원료를 예로 들면, 중국의 리튬, 흑연, 니켈, 망간 생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중국은 광물 제련 분야에서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3일 연합뉴스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광물 제련은 환경오염 문제와 더불어 임금, 전기료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데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이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중국이 우위에 있고, 제련을 국내나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 하기에는 규제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당장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단기적으로 합작법인 지분 조절, 중장기적으로 공급망 조정으로 인해 지출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편 FEOC 가이던스 발표는 한국 배터리 부품·소재 생산업체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VOA에 미국 행정부에서 발표한 규제의 영향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핵심 자재를 공급받기 어려워지는 자체는 큰 부담이지만, 중국과 경쟁하는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에 중국 기업에 제약을 가하는 규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VOA에 따르면 DB금융투자는 1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해액과 분리막은 핵심 부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2024년부터 중국산 해당 제품은 제한될 것이라며 한국·일본 업체에 대한 고객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현수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구조 키워드에 잘 부합하는 한국 기업들의 장기 실적 가시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특히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양극재 및 전구체 등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 없이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해가고 있는 기업들의 가치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지난 4일 아시아경제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