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경기부양책 발표 왜 미루나…“트럼프 컴백 걱정 때문” WSJ

강우찬
2024년 05월 10일 오전 11:41 업데이트: 2024년 05월 10일 오후 12:25

“시진핑, 무역전쟁 및 미-러 관계개선 우려”
11월 대선 결과 나오기 전까지 ‘화력’ 비축할 듯

중국 공산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를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 발표를 미루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각)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인 침체와 낮은 투자자 신뢰에도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늦게 내놓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시진핑의 경제 구조 재편과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들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어느 쪽이 승리할지 모르지만 트럼프가 재선됐을 경우 그가 꺼내 들 대중 무역전쟁 카드를 보고 나서 부양책을 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트럼프의 재선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즉각적인 결과 중 하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를 비롯한 미중 무역전쟁이다.

트럼프가 첫 임기 때 부과한 대중 무역관세로 중국은 미국의 3배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부임하고 이런 관세는 해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 시절 도입된 관세를 대부분 유지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할 경우, 이미 취약해진 중국 경제에 가해질 타격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트럼프는 재선되면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6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으름장을 내놓고 있다.

WSJ은 시진핑이 제조업과 수출을 통해 경제 침체를 벗어난다는 전략을 세웠다면서, 만약 트럼프 재선으로 미국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경제회복 전략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관측했다.

중국 공산당은 주요 경제정책을 발표하는 회의인 ‘3중 전회’를 오는 7월에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개혁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이 통제하는 경제’라는 기본 전략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WSJ은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노후 장비를 새 장비로 교체하라”는 통보문을 보내는 등 내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실제로 관련 지원금은 거의 집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는 11월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화력’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승리 이후 자국 기업과 근로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 공산당과의 무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해 왔다. 그 여파로 잘나가던 중국 경제는 급속히 위축됐고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올 만큼 궁지에 몰렸다.

중국 공산당이 트럼프 재임 기간 겪었던 압박감은 2020년 트럼프 퇴임 소식을 전하던 신화통신의 공식 엑스(X·당시 트위터) 게시물에서 엿볼 수 있다. 신화통신은 “드디어 벗어났다, 도널드 트럼프(Good Riddance, Donald Trump!)”라는 트윗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트럼프가 설계한 대중 압박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에 시달렸던 중국은 또다시 트럼프가 주도하는 백악관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WSJ은 앞서 1일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관리들이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와 미중 관계의 또 다른 부침에 조용히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가 방해받을까 걱정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을 강조했으며, 시진핑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대항하는 데 있어 러시아를 핵심 파트너로 삼고 있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로 사령탑이 교체되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을 여러 차례 시도했었다.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개할 미중 무역전쟁에 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부·상무부· 과학기술부 등은 고위 관리들로 미국 선거 관찰팀을 구성하고 특히 트럼프 캠프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누가 포함될지 묻고 다니는 한편, 미국 기업인들과 만나 중국을 떠나지 말고 투자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탈중국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 쑨윈(孫韻)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미중 관계의 긍정적 측면은 한계가 있지만, 부정적 측면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