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 벤 카슨 박사, 신경외과 명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택부 장관으로…(상편)
2021년 12월 21일 미국의 사상 리더들

얀 예켈렉의 ATL은 트럼프 행정부 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자 소아 신경외과 전문의로도 활동하신 벤 카슨 박사님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총 3편으로 제작되었으며 오늘은 첫 번째 편으로 “신경외과 명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택부 장관으로…” 입니다.

<예고>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야 합니다. 치료제가 될 수도 있고…

– 오늘은 벤 카슨 박사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전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자 소아 신경외과 전문의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숨쉬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노력해야 해요.

– 이번 밀착 인터뷰를 통해 카슨 박사의 개인사를 들어 봅니다.

쥐가 들끓는 공동 주택 생활과 5학년 시절 꼴찌 성적을 기점으로 33세에 존스 홉킨스에서 소아 신경외과 과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알아 봅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에요. 정말 사람을 만드는 건 뭘까요? 피부색일까요? 정말로? 그리고 ‘비판적 인종이론’의 부상으로부터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백신 의무화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정치 쟁점에 대한 그의 통찰을 들어 봅니다.

왜 무고한 아이를 평생을 갈지 모르는 미지의 위험에 빠뜨립니까?

– ‘미국의 사상 리더들’을 진행하는 저는 얀 예켈렉입니다.

<본편 스크립트>

– 벤 카슨 박사님, ‘미국의 사상 리더들’에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 고마워요,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 박사님께서 주택부 장관으로 계셨을 때는 오늘처럼 길게 앉아 있지를 못했습니다. 제 바람 가운데 하나가 박사님의 개인사에 대해 약간이나마 들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인데 어떤 면에서는 저희 부모님도 폴란드 출신 이민자셨고, 박사님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긴 합니다만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이민자분들께도 울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물론이지요. 제 이야기를 특히 싫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들이 말하는 ’피해자 의식’ 주장에 들어맞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 어머님은 개인의 책임을 크게 강조하는 분이셨어요. 부모님은 일찍이 이혼하셨고, 저희는 제가 정말 사랑했던 집에서 이사를 나와야 했어요. 20평 정도 되는 퇴역군인 관사였는데 작은 마당도 딸려 있었고, 저는 지상 천국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거기서 떠나야 했죠.

– 모친께서 형제분이 24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제 친척 가운데 13명까지는 봤는데 24명 중 한 명이라니..

– 수십 년 전 남부 시골 마을에서 대가족은 오늘날만치 귀하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히 많은 형제였지요. 그 가운데 몇 명은 사산아였다고 합니다만 어머니는 극도로 가난하게 사셨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셨죠. 3학년도 마치지 못하셨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지혜를 타고나셨습니다. 결혼해서 디트로이트로 이사 왔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 많았어요.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어머니는 대단히 알뜰하셨죠. 남는 돈은 한 푼이라도 저축하셨고, 땅을 구입하셨어요. 어느 순간엔가 꽤 큰 재산이 됐죠. 아버지가 도박과 약물과 여자에 빠지지 않으셨더라면.. 여자는 괜찮은데 한 명만 가져야죠. 저는 아마 대단히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하 생략…

<나머지 내용은 상단의 영상을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