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이란 대통령은 누구? 정치범 수천명 사형시킨 ‘도살자’

강우찬
2024년 05월 23일 오전 11:44 업데이트: 2024년 05월 23일 오전 11:44

18세 학생 시절, 이란 국왕 축출 시위 가담
이란 ‘녹색 혁명’ 진압한 민병대 수장 출신
인권 유린 악명 높아…중국 공산당과 포괄적 협력 협정 체결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각)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가운데, 이란 현지에서는 추모와 함께 불꽃놀이를 하며 환호하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사망 당시 63세였던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1988년 수천 명의 정치범을 학살한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지난 40년 가까이 이란 국민들을 탄압하며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악명 높다.

라이시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5)의 후계자 1순위로 꼽힌다. 또 다른 후계자 후보는 하메네이의 막내 아들 모즈타바(55)이다. 모즈타바 역시 이란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로 2009년 이란의 ‘녹색 혁명’ 진압을 주도한 민병대 바시즈의 사실상 수장이다.

이란에서는 노쇠한 하메네이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가 시급한 현안이다. 유력 후보였던 라이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모즈타바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헬기 사고의 또 다른 원인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에브라임 라이시 이란 대통령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일, 이란 일부 도시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X 캡처

자국민 수천 명 학살한 ‘테헤란 도살자’ 라이시

라이시는 1960년 12월 이란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에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나 이란의 쿰 신학교에 다녔고, 학창 시절이었던 1979년 18세의 나이로 서방의 지원을 받는 샤(이란 국왕)를 축출한 이슬람 혁명에 참여했다.

2년 후 라이시는 현 하메네이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란 공화국의 사법부에 들어가 검사가 됐으며 25세에 부검사직에 오른 후 하마단주 검사장, 테헤란 검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라이시는 2016~2019년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 의해 공익신탁 아스탄 쿠드스 라자비의 관리역으로 지명되면서 강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하메네이의 최대 돈줄이기도 한 아스탄 쿠드스 라자비는 이슬람 최대 종교 자선단체로 수십억 달러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이란의 사법부 수장에 임명됐다. 이후 이란에서는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가장 잔인한 탄압이 실행됐으며 같은 해 11월 전국적인 시위와 진압으로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 다수의 인권활동가, 언론인, 변호사, 이중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 체포됐다.

2022년 9월에는 쿠르드족 출신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지 사흘 만에 의문사하면서 전국적인 시위가 촉발됐다. 라이시가 이끄는 이란 당국은 시위대에 대한 대규모 유혈 진압을 실시해 사람들을 짓눌렀다.

라이시는 부검사였던 1988년 수천 명 학살에 가담한 ‘4인 위원회’의 일원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위원회는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날 무렵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는데, 정확한 집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인권단체들은 5천 명의 남녀가 살해돼 집단 매장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란 사회에 변화와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줄 지식인과 청년들을 몰살시킨 참극으로 평가된다. 이란 인권센터의 하디 가에미 전무이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란 사회의 중요한 참여자가 될 수 있었던 정치 사상가와 활동가 한 세대를 모두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 제재 대상…사상 최저 투표율 속 대통령 당선

라이시는 해당 위원회의 일원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최고 지도자가 이 직책에 임명한 하급 관리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자신은 사형 선고와는 연관이 없다고 거듭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2021년 반체제 인사 대량 사형 집행에 관한 질문을 받자 “판사, 검사가 시민들의 안전을 수호했다면 이는 칭찬받아야 할 일”이라며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맡은 모든 직책에서 인권을 옹호해 왔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 집행에 행정적으로 관여하고 이란의 녹색 혁명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일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라이시를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라이시는 2017년 한 차례 고배를 마시고 2021년 재도전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강경파로 구성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에서 온건파와 개혁파 주요 후보들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기록한 득표율은 62%였다. 당시 투표율은 49%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대선 투표율로서는 사상 최저치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라이시는 서방과 거리를 두고 러시아 및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2021년 3월 라이시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25년 기한의 포괄적 경제·안보·군사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란은 중국 기업들로부터 4천억 달러를 투자받는 대가로 중국에 유리한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하기로 했다.

라이시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은 국제 제재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고, 이란 화폐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기후 변동과 잘못된 관리가 겹치면서 물 부족이 악화했다.

이란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에는 이란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란의 도살자’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여러 편 게재됐다.

한편, 이란은 정부와 교육을 통합하는 체제를 시행하고 있고, 모든 주요 국가 정책이 하메네이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대통령은 큰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라이시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란의 외교와 중동 상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망하면 부통령이 임시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5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