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CPI·PPI 동반 하락, 불꺼진 중국 경제…“이젠 뒷걸음질”

강우찬
2023년 08월 18일 오전 10:08 업데이트: 2023년 08월 18일 오전 10:08

中 당국, 연이은 경기부양책 발표에도 글로벌 시장 반응은 “미흡”
스산 “제로 코로나로 경제 기반 타격, 중국인들 소비 두려워해”
셰톈 “통화량 팽창에도 인플레 아닌 디플레…경제 후퇴라고 봐야”
궈쥔 “소비 침체에도 명품 매출은 20% 늘어, 기득권이 혜택 독식”

7월 들어서도 중국 경제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출입 등 무역 실적과 부동산 거래가 크게 부진하면서 하락세가 뚜렷하다.

이런 가운데 상반기 명품 브랜드 매출이 20% 급증하면서 경기부양책으로 풀린 자금이 당 간부 등 기득권층으로만 몰리면서 빈부격차만 키운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0.3%, 4.4% 하락했다고 밝혔다. CPI와 PPI 상승률이 모두 마이너스로 나온 것은 코로나19로 경제 활동이 중단됐던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중국 경제가 위기라고 타전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모건 스탠리의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 로빈 싱을 인용해 “중국은 확실히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중국 수출이 3개월 연속, 수입은 5개월 연속 감소한 데 이어 물가 하락 소식까지 겹쳤다”며 “중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이 켜졌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중국의 경기 둔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향후 경기 전망에 있어 갈수록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기업들이 중국의 경기 부양책에 실망하면서 매출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사를 둔 기술기업 ‘다나허’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중국발 주문량이 1분기에 20%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에 40%,, 6월에만 50% 급락했다고 WSJ에 밝혔다.

中 당국, 규제 풀며 경기 부양에 안간힘…시장은 “미흡”

중국 공산당은 경기 부양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후커우(호적) 제도를 손보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을 예고하고, 통화량을 경기 상황에 맞춰 적절히 조절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후커우는 태어난 곳에서 발급받는 호적의 일종이지만, 중국에서는 거주지를 함부로 옮길 수 없도록 규제하는 장치로 쓰인다. 주로 농촌 지역 저소득층이 도시 지역으로 들어와 일자리를 찾고 거주하는 것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

중국 공안부는 지난 3일 후커우 규제를 완화해 300만 명 이하 도시는 후커우에 관계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300만~500만 명 도시에서도 후커우 취득 조건을 완화했다. 농촌지역 저소득층에게 도시로 가서 근로자로 일하기 쉽게 하겠다는 취지다.

공안부는 외국인의 비자 발급도 더 쉽게 하기로 했다. 사업 목적으로 중국을 수시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3년간 유효한 복수비자를 발급할 방침이다. 사업이나 무역, 전시회 참가 등을 위해 중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는 중국 도착 후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난 10일부터는 비자 발급 절차도 간소화해 지문 등록 절차를 폐지했다. 중국을 2021년 1월부터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모든 외국인에게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등록하도록 했는데, 이는 비자 발급 신청 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주된 이유이자 불만 사항 중 하나였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1선 도시에서는 아직 규제가 엄격하지만, 지난 6월 말 양저우를 시작으로 우한·칭다오·허페이·창저우·우시·정저우 등 2선 도시에서 매입이나 대출 규제가 완화됐다.

이러한 경기 부양책에도 모건 스탠리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며 보유 주식을 현금화할 것을 권고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모건 스탠리의 분석가들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중국 투자자들의 신뢰도와 확신 수준은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며 “실행 가능한 완화 조치와 신속한 후속 조치 등이 부족하면 조속한 심리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9월 2일, 중국 난징은행(南京銀行) 입구에서 예금주 수십 명이 50만 위안 이상의 예금을 인출할 수 없다는 은행 측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당국은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했다. | 웨이보

중국, 내수시장 왜 못 살리나…“경제 후퇴 징후”

중화권 분석가들은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내부적 요인에 무게 중심을 두고 분석했다.

에포크타임스 주필인 스산(石山)은 “2020년 시작된 엄격한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로 주요 도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내수 경기를 악순환으로 몰아넣은 것도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중국 경제는 2021년 초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재확산과 도시 봉쇄로 소비가 줄면서 물가 하락이 포착됐으나, 현재 발생하는 디플레이션은 올해 초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히려 세계 각국 경제 매체와 전문가들은 도시 봉쇄가 끝난 작년 12월 이후 중국의 소비가 되살아나고 중국 공산당의 소비 확대 정책이 더해지면서 내수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줄줄이 발표했다.

스산은 “하지만 소비는 줄고 소비자물가지수도 하락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중국 정부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봉쇄 기간, 상품 판매가 급감하면서 기업의 수입이 감소하고, 정리해고와 급여 삭감이 대거 이루어졌다. 그 결과 사회 전체 수입이 줄었고, 이는 다시 소비감소를 촉발하며 중국 경제를 경기 위축의 악순환으로 끌어들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계의 구매력 위축이 심각하다. 쓸 돈이 없어서 소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인들의 주된 재산 증식 수단이었던 부동산도 거래가 줄면서 중국 소비자들은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6월 중국 부동산 시장은 판매액 기준 25% 감소했고 7월에는 100대 부동산 개발기업의 신축주택 판매액이 전년 동기 대비 33.1% 감소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은 2021년 파산 위기에 몰린 이후 최근 2년간 5800억 위안(약 106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사실상 지급 불능상태에 빠지며 더욱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이달 8일에는 업계 2위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전날 만기 채권이자 300억 원을 지불하지 못한 사실을 공시하며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직면했음을 알렸다. 이 회사는 내년 초까지 줄줄이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등 위기가 중첩돼 있다.

비구이위안 외에도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도 채권 상환을 못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들 업체와 거래 중인 금융사까지 함께 파국을 맞을 경우 위기가 부동산 및 금융 시장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스산은 “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라며 “부동산 개발업은 본질적으로 자본 집약적이며 부채비율이 높은 업종이다. 자금조달을 채권이나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까지 중국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 아무리 빚을 져서 투자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며 “하지만 시장이 반대로 움직여서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문제 되지 않았던 일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경제는 이미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주식시장과 다른 투자 분야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보인다. 경제 전체가 큰 문제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한 마트 | 웨이보

“중국인들, 소비 여력 없고 있어도 소비 주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켄대학 셰톈(謝田·프랭크 셰) 경영학 교수는 중국의 디플레이션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셰 교수는 “지난 1년 반 동안 중국의 위안화 M2 발행량은 44조 위안(약 8천조 원)으로 같은 기간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 M2 발행량을 넘어선 것이며, 같은 기간 전 세계 M2 발행량의 25% 규모”라고 밝혔다.

이어 “그중 올해 1분기에만 15조 위안(약 2700조 원)이 발행됐다. 이렇게 많은 통화를 발행했는데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확실한 것은 CPI와 PPI의 동반 하락은 중국 경제의 심각한 후퇴를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셰 교수는 “PPI는 선행지표로 3개월이나 6개월 후의 문제를 미리 보여준다. 중국 PPI 상승률은 작년 10월 마이너스 전환 후 7월까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추세를 나타냈다. 경기 후퇴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현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중국 CPI 감소에 대해 “위축된 소비 심리를 나타낸다”며 “중국의 일반 시민들은 쓸 돈이 없고, 돈이 있더라도 소비할 의사가 없고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중국 가계는 코로나19 경기 둔화 기간에 막대한 규모로 저축액을 늘렸다. 이를 두고 중국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과 저축’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경기 불안에 따른 리스크에 과민할 정도로 대응해 극도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에 힘을 쏟는다는 의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작년 발생한 위안화 예금은 26조2600억 위안(약 4805조원)으로 전년 대비 6조5900억 위안 증가했다. 개인 저축(가계예금)은 17조840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7조9400억 위안 늘었다.

‘저축 열기’는 제로 코로나가 종료된 올해에도 계속됐다. 올해 1분기(1~3월) 위안화 예금은 15조3900억 위안(약 281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조5400억 위안 늘어나며 증가율 29.4%를 기록했다.

이 중 가계예금은 9조9000억 위안으로 전체 저축 증가분의 64%를 차지했다. 당국이 방역 정책을 완화했지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더딘 경제회복에 중국인들이 소비를 더욱 줄이고 저축에 매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위안화 예금이 전년 동기 대비 1조1200억 위안 감소했으나, 인민은행에 따르면 이는 소비가 아니라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는 은행 예금 대신 재테크 상품 투자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초과 저축’을 소비로 전환하려 애쓰고 있다. 지난 6월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공상은행 등 중국 6개 국유은행은 일제히 예금금리를 종전 0.25%에서 0.2%로 0.05%포인트 낮췄다. 3년 만기와 5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도 각각 0.15%포인트 내렸다.

이는 수출과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글로벌 타임스는 전했다.

루이비통 매장 앞에 대기 중인 중국인 쇼핑객.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에도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중국의 상반기 사치품 소비는 20% 이상 증가했다. | 글로벌 타임스 캡처/연합

통화량 공급에도 소비 부진…사치품 소비 많이 증가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편집장인 궈쥔(郭君)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중국 공산당이 처한 모순”이라고 규정했다.

궈쥔은 “중국은 지난 7월 경제지표에서 수출, 투자, 소비 모두 기대 이하 실적을 나타냈다”며 “중국 공산당은 수출과 투자에서 난관을 만났기에 소비를 경제 회복의 중심축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돈을 풀어도 소비는 늘지 않고 예금만 증가한다. 공산당 당국은 중국인들이 활발히 소비해 주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자산을 축적해 비관적인 미래에 대비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5일 7월 경제지표를 발표하면서 청년(16~24세) 실업률 통계만 발표하지 않았다. 당국은 “경제·사회 발전으로 노동 통계를 좀 더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지난 6월 역대 최고치를 찍은 청년실업률을 감추려는 조치라는 게 중론이다.

WSJ은 이날 “중국의 부진한 경제지표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암시할 수 있을 수 있다”며 중국 정부에 대한 가계의 신뢰가 무너졌을 가능성을 진단했다.

인민은행이 지난 6월 말 발표한 ‘2분기 도시지역 예금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8%가 2분기에 저축을 늘리겠다고 답했으며, 소비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24.5%에 그쳤다.

경기 침체 속에서 중국의 소비 시장은 빈부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국가통계국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상반기 경제 보고서에서 상반기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2% 늘었다. 관영 신화통신은 “비교적 빠른 증가세”, “성장 견인차 구실”이라고 평가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게 해외 관측통의 견해다.

오히려 중국의 내수 확대 정책에 비하면 기대 이하라는 평가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작년 12월 15일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내수 확대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제시하며 “내수 부진이 현재 경제 운영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반면, 소비 침체 속에서도 중국의 럭셔리 브랜드 소비는 오히려 증가하며 대조를 이뤘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발렌시아가 등 럭셔리 브랜드는 2023년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전년 동기 대비 20%대 이상의 매출 증가를 보였다고 밝혔다.

에르메스는 올해 상반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매출이 28% 증가하며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거뒀고, 프랑스 럭셔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 매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3%를 나타냈다며 중국인 소비자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구찌와 발렌시아가를 소유한 케링 그룹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2% 성장하는 데 그쳤지만, 지역별로는 북미에서 23% 감소한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2% 증가해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 증가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

궈쥔은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통화공급 확대로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자 부유층에 속한 공산당 관리들”이라며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권한을 지닌 그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